[여명]왜곡하는 뇌의 오류에서 벗어나려면

홍병문 기자 2024. 2. 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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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문 문화부장
인간의 뇌, 사실과 다른 왜곡된 판단도
자신의 신념과 믿음으로 잘못된 해석
진영 논리 따르면 해석 용이해지지만
진실을 찾는데 되레 방해 될 수도
확증·희망 편향 벗어나 올바른 선택해야
홍병문 문화부장
[서울경제]

인간의 뇌는 완벽할까. 인간의 뇌가 한계가 있다고 하지만 적어도 지구상에는 인간보다 더 뛰어난 능력의 뇌를 가진 생명체가 없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생명체가 아니라 그 대상을 기계나 인간의 창조물로 넓히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챗GPT의 등장 때문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뇌를 넘어서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생성형 AI가 인간을 위협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그럼에도 AI가 인간의 뇌를 넘어서기까지는 많은 도전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럴싸한 거짓말을 태연히 지어내는 ‘할루시네이션(환각) 오류’는 AI의 분명한 한계를 보여준다. AI만이 오류나 한계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뇌 또한 여러 오류와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심리학자들은 상기시켜 준다. 재미있는 사례가 바로 뇌의 착각 현상이다.

시각의 착시 현상은 대표적인 뇌의 오류 사례들이다. 인간의 뇌는 외부 여러 가지 정보를 지각하는 과정에서 왜곡하거나 오류를 범한다. 심리학 교양서적에서 자주 소개되는 ‘아가씨와 노파’의 그림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19세기 말 독일 엽서에 등장한 이 그림은 영국 만화가 윌리엄 엘리 힐이 살짝 변형해 1915년 미국의 유머 잡지에 ‘아내와 장모’라는 제목으로 게재해 인기를 끌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윈 보링이 논문에 이 그림을 소개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똑같은 그림을 놓고 어떤 사람은 젊은 여성이, 어떤 사람은 나이 든 여인의 모습이 먼저 보인다.

만화가 윌리엄 엘리 힐이 그린 ‘아내와 장모’.

세계적인 음악심리학자 다이애나 도이치가 쓴 ‘왜곡하는 뇌’라는 책은 음악과 말을 지각할 때 뇌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오류 현상에 대해 설명한다. 도이치 교수는 인간의 뇌는 귀에 실제로 전달된 선율과는 다르게 멜로디를 인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음악만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문장 가운데 어떤 것들은 음높이가 없는데도 멜로디로 인식하기도 한다. 우리가 지각한 것과 실제는 다르다는 의미다. ‘마에스트로(거장)’라고 불리는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동일한 음패턴을 듣고 음의 이동하는 방향이 높아지는지, 낮아지는지 다른 의견을 보인다고 한다.

다이애나 도이치의 ‘왜곡하는 뇌’.

이런 뇌의 한계는 실험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제한적인 현상일까. 일상생활에서 인간은 여러 왜곡과 오류를 범한다. 인간의 뇌는 여러 사회현상이나 감각 정보를 받아들일 때 편리한 방식으로 처리하며 사실을 왜곡해 받아들이기도 한다고 심리학은 설명한다. 눈과 귀로 확인한 사실이기 때문에 철석같이 올바른 진실이라고 믿지만 뇌의 왜곡된 활동 결과일 수 있다는 의미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 모든 사실을 철저하게 의심하는 노력을 펼쳤다. 자신의 눈과 귀로 본 것들이라 해도 자신의 신념과 믿음으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 회의주의자들은 ‘호모 두비탄스(homo dubitans)’, 즉 ‘의심하는 인간’을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대안으로 여겼다.

4·10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물론 미디어와 사회 속에서 온갖 정보와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진영 논리에 따라 사물과 정보를 한쪽으로 해석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진영 논리는 외부 정보의 해석을 용이하게 하지만 진실을 찾는 데 장해물이 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순방 발언 논란에서 보듯 누군가는 진영 논리 혹은 신념에 따라 ‘바이든’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날리면’으로 듣는다.

여인과 노파의 착시 현상은 진영 논리에 매몰된 우리에게 놀라운 시사점을 준다. 우리의 뇌는 젊은 여자와 노파를 동시에 보지 못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당신이 젊은 여자를 본다면 노파는 시야에서 사라진다. 인간의 뇌가 가진 한계를 깨닫고 정치·사회 현상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왜곡하는 뇌’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총선을 앞둔 우리 사회(유권자)가 확증 편향, 희망 편향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한다.

홍병문 기자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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