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식구
제 몸이 의자인지도 모르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의자들과
탁자인지도 모르고 그 가운데 넙적
엎드려 있는 탁자와 장롱인지도 모르고
속에 온갖 것 담고 투박하게 기대 있는 장롱과
침대인지도 모르는 침대와 TV인지도 모르고
중얼거리는 TV와 벽인지도 모르고 허공에
칸을 질러대는 벽들과, 그 벽 속의 물소리와
지붕인지도 모르고 그 위에 수굿이 덮혀 있는
지붕과 그 밑 조그만 화분에 발 오그리고
아슬히 피어나는 제 몸이 꽃인 줄 모르는 꽃들과
그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저 들숨 날숨의
그 속에 캄캄하게 뜨고 지는 햇덩이와
새벽녘 저 혼자 후둑후둑 지는
제 몸이 별인지도 모르는 별들과
그것들 한아가리에 넣고 언젠가 콱
입 닫을 악어 한 마리!
이경림(1947~)
이 시는 “모르는” 것들로 빼곡하다. 시인은 인간의 정체성이나 실존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제 몸이” 제 몸인지도 모르는 의자, 탁자, 장롱, TV, 지붕, 꽃, 해, 별들에도 던진다. 자연은 스스로 빛나지만, 사물의 정체성은 누군가 ‘이름’을 붙여주고, 쓸모에 맞는 장소에 두었을 때, 비로소 고유한 실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폐기될 운명도 함께 갖는다.
시인은 사물과 자연까지 포함하여 ‘식구’의 개념을 확장했다. 우리는 모두 멀리 떨어져 있는 잔별이었다가 명절이면 둥근달처럼 모여 앉는다. 밥그릇, 숟가락, 교자상, 벽에 박힌 못, 찢어진 신발도 모두 한식구가 된다. 오랜만에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밥상에서 식구들이 밥을 먹는다. 등 뒤에 우리가 만든 거대한 괴물 같은, “악어 한 마리” 못 본 체하면서.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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