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 기고] 진실위는 ‘DJ 수장 시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기자 2024. 2. 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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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5일자 경향신문에 영화 <길위에 김대중>에 대한 손호철 교수의 칼럼이 실렸다. 손 교수는 납치사건 당시 김대중이 살해당하기 직전에 미국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묘사한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며 국정원진실위(진실위) 보고서의 내용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론한다.

손 교수는 김대중 납치는 살해 시도가 아니라 단순 납치이며 미국과 일본의 추적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미국의 자료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건 당시 미국의 대한정책 책임자인 주한 미국대사 필립 하비브와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 도널드 레너드는 김대중 구명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하비브의 구체적인 활동은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으로서 이 사건 정보수집을 주도한 도널드 그레그가 수차례 밝혔으며 자신의 회고록에도 ‘하비브의 영리하고 빠른 개입이 그를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썼다. 레너드는 1984년 일본에서 조직된 ‘김대중씨 납치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에 국무부의 사건 관련 대응에 대해 증언했다. 종합하면 이들은 미국 정보망을 통해 확보한 정보에 근거하여 김대중의 생명이 위태롭다고 판단했고 김대중의 구명을 위해서 기민하게 대응했다.

김대중의 증언은 이들의 설명을 뒷받침한다. 김대중은 공작원들이 칠성판에 자신의 몸을 결박하고 몸에 돌을 달았으며 ‘솜을 넣어야 물 위에 떠오르지 않는다’ ‘상어밥’ 등의 말로 위협했다고 증언했다. 김대중은 납치 5일 만에 생환한 직후 했던 인터뷰에서부터 서거 전까지 이 내용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김대중의 증언은 수장 시도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그럼에도 진실위는 김대중이 자신을 갑판 위로 끌어올리는 행위가 없었음을 인정했다는 것을 근거로 ‘직접적인 수장 시도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갑판 위로 올렸는지 여부는 수장 시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수장 과정을 2단계로 구분하면 김대중에 가한 행동은 1단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직접적’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김대중의 주장을 사실상 기각하고 있다. 배 위 김대중의 상태는 김대중과 공작원들만 알 수 있는데, 무슨 근거로 김대중의 증언을 배척할 수 있는가? 더군다나 진실위는 김대중 증언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다. 그의 증언을 보면 가해자들은 김대중을 살해하고 시신을 찾지 못하도록 해서 영구미제 실종사건을 의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음에도 진실위는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

이 사건처럼 반인권적인 불법공작은 객관적 자료를 통해 사실관계를 명백히 입증하는 게 매우 어렵다. 우리는 아직도 광주항쟁 당시 발포명령자가 누군지 모른다. 객관적 물증이 없고 자백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진실위는 그전에 하지 못했던 국내 정보기관 자료와 관계자 조사를 했다는 점에서 획기적 의미가 있지만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미국과 일본의 자료에 대한 종합적 분석이 필수다. 그 점에서 진실위 조사는 제한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래서 손 교수가 진실위 조사만을 근거로 영화 <길위에 김대중>의 고증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것은 문제가 있다.

장신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사료연구 담당

장신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사료연구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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