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언론 보도
연예인은 자기가 창출한 이미지에
꼭 맞추어 살아가야 하며
그에 어긋나면 위선이란 전제 아래
사생활 비밀을 대중에 공개하는 건
악한 언론권력의 횡포다
지난해 11월 배우 고 이선균이 수사를 받은 사건에 관한 KBS 텔레비전 보도 중 그가 어느 유흥업소 여성과 나눈 대화의 녹음이 방송됐다. 그런데 그중 첫 부분 대화는 낯뜨거운 내용이라서 듣기에 불편했다. 그걸 내보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생활에 관한 헌법 조항은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다. 연예인도 국민이니까 이 조항대로라면 당연히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연예인의 사생활에 관한 기사를 내거나 방송을 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이렇게 공개를 허용할 때 등장하는 개념이 ‘알 권리’다. 그럼 연예인의 사생활은 어디까지 알 수 있는 것인가. 연예인에 관한 사건은 아니지만, 2006년에 나온 대법원 판결은 사생활의 비밀 침해가 위법한 경우를 “공표된 사항이 일반인의 감수성을 기준으로 하여 그 개인의 입장에 섰을 때 공개되기를 바라지 않을 것에 해당한다고 인정되고 아울러 일반인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서 그것이 공개됨으로써 그 개인이 불쾌감이나 불안감을 가질 사항 등에 해당하여야 할 것”이라고 설시했다.
명예훼손죄나 사생활 침해에 대한 책임의 법해석론에서는 연예인을 ‘공적 인물’ 중 하나로 본다. 공적 인물이란 본래 영미법에서 나온 개념으로서 공직자에 준하는 정도의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는 사람을 말하는 것쯤 되는데, 연예인과 운동선수 기타의 유명인이 포함된다. 우리 판례에서는 이 용어를 공직자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구별하는 것이 옳다. 공직자는 그의 사생활 중 자질·도덕성·청렴성에 관한 사실이 공개되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적 인물의 사생활 공개가 허용되는 범위는 그보다 좁게 보아야 한다.
대법원은 공적 인물에 대해서 ‘통상인에 비하여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제한되어 그 사생활의 공개가 면책된다’는 법리를 세워놓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 중에서 널리 알려진 법조인, 언론인, 종교인, 교수, 재야인사, 영화감독 등이 공적 인물이라고 하여 문제된 예가 있기는 해도, 연예인이 직접적으로 공적 인물로 적시된 예는 아직 없다. 이 점 하급심 판례와 다르다.
연예인이 공적 인물이며 그 사생활에 대한 정보가 알 권리의 대상이 된다는 주장의 이론적 근거는 무엇일까. 연예인은 대중의 관심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또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며 이때 대중이 알게 되는 것은 필경 연예인의 이미지나 페르소나인데, 만약 사생활에서 연예인의 참모습이 이미지 등과 다르다면 이는 대중을 속이는 것이므로 당연히 공개되어야 하며, 연예인은 그런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을 감수하고 그 직종을 택한 것이라는 설명이 유력하다. 내가 보기에 이 설명은 얼핏 ‘이익 있는 곳에 책임 있다’는 법리에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부당하게 사생활을 침해당하고도 억울해하지 않을 책임 같은 것은 없다. 또한 나는 연예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당연히 사회적 책임까지 수반하는 것이고 이를 감수하면서 연예인이 된 것인지에 관해서도 의문이 있다. 어떤 연예인들은 스스로를 공인이라 칭하는데, 이들은 과연 그 말의 무게를 짊어질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일까. 연예인이 공인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침해받고 공개될 범위는 늘어날 것이다.
법원은 언론이 공적 인물의 사생활을 보도할 수 있는 근거를 공공의 이익에서 찾고 있다. 고인의 경우처럼 사생활에서 범죄의 혐의를 받을 때 이것이 공표되는 데에는 공공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연예인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일반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리다. 법이 보호하는 비밀이란 반드시 감추고 싶은 악사추행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에게 알려지면 당사자가 난처하게 되는 모든 사실을 말한다. 연예인의 연애, 유흥업소 출입 따위의 사실은 사생활의 내밀한 부분이다. 이에 관한 보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리 없다.
인간에겐 누구나 약점과 과오가 있다. 누구도 완벽하게 도덕적이지 않고 또 도덕적일 수 없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연예인은 자기가 창출한 이미지에 꼭 맞추어 살아가야 하며 그 이미지에 어긋나면 위선이라는 전제 아래 사생활의 비밀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은 악한 언론권력의 횡포다. 고인이 유명을 달리한 후인 지난 1월12일 문화예술인연대회의의 성명 발표에서 가수 윤종신은 문제의 녹음파일 공개에 대해 “KBS가 공영방송의 명예를 걸고 오로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보도였다고 확신할 수 있나”라고 물었다. 이런 물음 앞에서도 공공의 이익을 외칠 것인가.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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