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경제수다방] 신토건공화국, 지하화사업

기자 2024. 2. 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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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 파리 시장인 안 이달고는 프랑스 사회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크리스마스 기간 코로나19 격리 때 서점을 필수 상업시설로 지정해달라는 논쟁을 했던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오랫동안 파리는 패션 등 유행을 선도했는데 지금은 이달고 시장과 함께 도시 생태 논쟁을 주도하는 중이다.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의 파리 시내 주차비를 3배 정도 올리는 방안이 주민투표에 부쳐질 것이다. 내연차는 물론이고 전기차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파리는 외곽 순환도로의 제한 속도도 낮출 예정이다. 파리는 오는 7월 파리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도시 패러다임에 대한 새로운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다. 대중교통 중심으로, 자동차 운행이 불편한 방식으로 가는 게 파리가 생각하는 미래다.

한국에선 지금 도로와 철도의 지하화가 유행이다. 여당 비대위원장은 물론, 야당 대표도 도로든 철도든 전부 지하로 넣겠다고 연일 총선 공약을 제시한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없고 누가 더 많이, 더 빨리 할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되었다.

‘시빌(civil)’ 엔지니어링은 로마 시대 때부터 시민들에게 복무하는 기술이었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시민이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토목으로 불리게 되었다. 여기에 건설 분야까지 합쳐서 토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일본이 토건공화국으로 알려지게 된 건, 1990년대 경제위기를 토건으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점점 더 토건의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토목은 재정 사업이기 때문에 건설사만의 힘으로 토건공화국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국회 혹은 지방의회에서 토건 사업을 밀어주는 정치인들을 ‘토건족’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민주주의도 토건 앞선 잠시 정지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함께 만들어진 경제기관이 대장성이었다. ‘일본의 곳간’이라는 이름답게 전후 일본의 경제 재건을 이끌던 강력한 기관이었다. 2001년 토건공화국에 대한 시민사회의 견제가 대장성에 집중되면서 결국 해체되었다. 금융 등 경제 권한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었다. 2010년 오자와 전성기 때 일본 민주당이 자민당을 제치고 잠시 집권했다. 그때 콘크리트가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하자는 얘기들이 선거 공약으로 나왔다.

일본 경제를 기본 골격으로 만든 한국에서도 토건경제론은 유효하다. 어떤 측면에서는 일본보다 더욱 강력하다. 여야가 없고, 한국 민주주의도 토건 앞에서는 잠시 정지한다. 합의가 아주 잘된다. 대표적인 국회 개혁 사항이 소위 ‘쪽지 예산’인데, 예산안 통과를 미끼로 마지막에 밀어넣는 국회의원의 민원성 예산이 대부분 지역 토건 예산이다.

한국 토건의 클라이맥스는 지금까지는 건설회사 사장이 직접 대통령이 된 MB(이명박)의 경우일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가 촛불집회 때 4대강 사업으로 둔갑을 했고, 온 국토가 공사장이 되었다. 그야말로 한국은 토건공화국이었다. 민주당도 이때는 탈토건을 외쳤다.

지하도시로 대표되는 지하화는 토건의 새 먹거리다. 건설사 입장에선 이미 땅 위는 다 찼으니까, 당연히 아직 미개발지인 지하 세계를 차세대 사업지로 삼고 싶어 한다. 한번 시작하면 향후 20~30년간 천문학적 공사 물량이 확보된다. 그렇지만 그건 건설사 입장이고, 정부 입장은 좀 다르다. 사람이냐 시멘트냐, 복지냐 토건이냐, 제한된 예산 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이럴 때 경제성 평가를 하는데, 지하화는 없던 도로나 철도가 새로 놓이는 게 아니라서 추가적 수요가 많이 생기지는 않는다. 게다가 지상 도로 등 기존 시설보다 관리비는 증가해 편익은 별로 안 늘고 비용은 꽤 높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경제성 평가를 통과하기 어렵다. 그래서 더욱더 정치인들의 정치적 결단에 기대게 된다. 주민 숙원 실현, 주민 불편 해소 등의 이유를 들지만,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을 정치적 결단으로 대신하려는 게 지하화 사업의 정치적 속성이다. 파리가 새 도로와 교통 인프라 건설 대신 대형 SUV 주차료를 높이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그 돈만큼 복지 지출을 늘릴 여력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68명으로 한국(0.7명)의 2배 이상이다. 토목 기술이 없어서 그런 걸 안 하는 게 아니다. 대표적인 지하도시인 파리 외곽의 라데팡스를 만들었던 나라다.

토건 경쟁, 국민경제엔 위기 신호

한동훈과 이재명, 두 사람이 지하 토건으로 경쟁하는 것은 건설사에나 좋지, 국민경제에는 심각한 위기 신호다. 한 해 출생아 수 20만명 벽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데, 앞으로 수십년 동안 지하만 파고 있다간 우리는 다 망한다. 지하 세계로 향하는 ‘신토건공화국’이 만들어지는가? 토건족 한동훈, 토건족 이재명, 둘 다 토건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중앙 정치에서 가장 비중 있는 두 지도자가 토건 정치부터 배우는 현실, 여기에 무슨 한국의 미래가 있겠나. 한국에서 아이가 태어나든 말든 땅만 죽어라고 파자는 지도자들에게서 무슨 의미 있는 정책이 나오겠나.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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