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좀비 축구
“한국 축구는 90분부터 시작합니다~.”
카타르 아시안컵 8강전 한국-호주전이 열린 지난 3일 새벽, 전광판 시계 96분(후반 추가시간 6분)에 주장 손흥민이 페널티킥을 얻자 중계 캐스터가 외친 말이다. 황희찬의 벼락같은 페널티킥 골로 1-1 동점. 조규성이 99분에 동점골을 터뜨린 사흘 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16강전에 이어 두 경기 연속 기사회생한 한국은 연장전 14분(104분) 손흥민의 그림 같은 프리킥 골로 2-1 승리를 거두고 4강에 올랐다. 이렇게 막판 벼랑 끝에서 뒤집기로 또 살아난 한국 축구를 두고 ‘좀비 축구’라는 별명이 새로 붙었다.
좀비는 죽이고 또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괴물이다. 한국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부터 따지면 네 경기 연속 후반 추가시간에 득점하며 무서운 뒷심을 발휘했다. 그중 3골은 극적인 동점골이었다. 이러니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좀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란에 96분에 골을 내주고 역전패해 8강에서 탈락한 일본의 한 매체는 “한국은 사투 속에서 기어이 전진했다”며 “죽을 것 같은 위기에서도 살아남는 좀비 축구”라고 했다.
좀비 축구는 강하다. 결국에는 이겨서 강함을 증명했다. 끈질긴 정신력과 체력을 바탕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지를 보였다. 혼신을 다해 뛰면 언제든 기회가 있고, 끊임없이 두드리면 언젠가는 골문이 열린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손흥민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선수들의 믿음과 정신력이 더 단단해지며 하나로 뭉쳐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연장전을 두 경기 연속 뛴 적은 없지만, 나라를 위해 뛰는데 힘들다는 건 핑계일 뿐”이라고 말했다. 같은 위기가 또 닥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흐름과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도 좀비 축구의 수확이다.
‘코리안 좀비’로 불린 종합격투기 선수 정찬성은 “파이터에게, 맞아도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좀비만큼 멋진 별명은 없다”고 했다. 좀비 축구는 한국 축구의 끈기와 저력에 대한 찬사다. 하지만, 아무리 짜릿하고 놀라워도 체력과 정신력을 쥐어짜내는 좀비 축구를 매 경기 할 수는 없다. 오는 7일 0시에 열리는 요르단과의 4강전부터는 90분 안에 이기고 끝내면 좋겠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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