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흉기난동’ 검사, 재판서 피해자 사연 읊으며 울먹인 까닭은 [법조 인앤아웃]
어린 남동생 법정 호소 역부족에
직접 나서서 유가족 역할 대신해
“생활고 피해자들 범죄 노출 많아
지원제도 홍보로 마음 치유 앞장”
지난달 10일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사가 울먹이며 피해자 김모(사망 당시 22세)의 사연을 읊었다. 이 사건의 수사와 공소유지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 박세혁(40∙사법연수원 43기) 검사다.
검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기록을 검토하고 냉철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검사에게도 유독 아픔이 느껴지는 사건이 있다. 박 검사에게는 이번 사건이 그랬다.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 재판에선 엄벌을 탄원하는 유가족의 목소리가 주목받지 못했다. 김씨가 어머니를 여의고 해외에 있는 아버지 대신 ‘소년 가장’ 역할을 해온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김씨의 아버지와는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20살 남짓의 어린 남동생이 홀로 법정에서 유가족의 목소리를 대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박 검사는 4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직접 나서 유가족의 역할을 대신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라며 이 같이 말했다. 먼저 김씨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한 박 검사는 김씨의 대학 친구들과 유가족이 낸 200여 통의 엄벌 탄원서를 모두 읽었다. 박 검사는 “피해자의 남동생이 ‘형은 저한테 부모 같은, 없어선 안될 유일한 존재였다’고 표현했는데, 저도 남동생이 있는 입장에서 울컥했다”며 “재판 때는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는데, 피해자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고 말했다.
검사의 역할은 범죄자를 재판에 넘기고, 범죄자가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도록 공소유지를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피해자의 입장을 헤아리고, 그에 맞는 도움을 주는 것까지도 검사의 책무다.
박 검사는 광주지검 목포지청과 인천지검에서 2년여간 피해자 지원 전담 업무를 담당하며 피해자 지원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그는 2019년 목포지청 근무 당시 과거 사건을 검토하다가 어머니와 내연남의 아동학대로 인해 실명하고 성기까지 훼손된 아이가 피해자 지원을 받지 못한 사실을 발견했다.
2016년 사건 발생 당시 아이는 고작 다섯살. 친모와 내연남은 이듬해 2월, 각각 징역 6년과 18년을 확정받고 수감됐다. 피해아동을 돌봐주고 있던 아동학대 피해아동 보호기관에서는 피해자 지원 제도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박 검사는 해당 보호기관에 연락해 피해 아동이 지원 받을 수 있는 각종 제도를 안내했고, 피해 아동은 영구장해 지원금과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지난해 끝자락, 보호기관의 원장으로부터 편지 한 통이 왔다. 편지에는 “아이의 온 몸은 수술 자국으로 가득하고, 왼쪽 눈이 실명돼 매일 아침 본인 스스로 의안을 세척해 끼우고 있지만, 그 당시 아이의 편에서 죄를 벌해 준 검사님 덕분에 아이는 현재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며 “공부도 잘해 검사님처럼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꿈을 키워 나가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원장은 “2019년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사랑의 공을 들인 박 검사님이 계셨기에 아이들은 마음껏 꿈을 펼치며 행복하고 건강한 2023년을 아름답게 색칠할 수 있었다”며 두 장짜리 편지에 고마움을 꾹꾹 눌러 담았다. 박 검사는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기념일에 해당 보호기관에 개인 후원을 하기도 했다.
박 검사는 강력범죄를 수사하는 와중에도 피해자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른바 ‘계곡 살인사건’을 수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박 검사는 이은해에게 살해당한 남편 윤모(사망 당시 39세)씨 앞으로 나올 유족구조금을 이은해의 딸이 수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윤씨가 이은해의 딸을 양녀로 입양했기 때문이다. 박 검사는 즉시 인천지검 피해자 지원 부서에 연락해 유족구조금 지급을 보류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직접 가정법원에 입양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박 검사는 “생활이 어려운 피해자들은 범죄에 가장 크게 노출돼 있는데, 피해자 지원제도에 대해선 잘 모른다”며 “공익의 대변인인 검찰이 피해자 지원제도에 더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유경민 기자 yook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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