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도 망할 순 없다
[세상읽기]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왜 정치인은 과거의 실패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는가? 알면서도 눈앞의 이익을 위해 외면하는 것인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묻고 싶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제시한 저출생 대응 공약이 시행되면, 저출생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나. 만약 한 위원장과 이 대표가 돈 없고 ‘빽’ 없는 청년이라면, ‘이제 아이를 낳아도 되겠다’고 생각하겠나.
두 당의 저출생 대응 공약은 과거에 비해 세련되고 구체적이다. 분명히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정책들이다. 그러나 출산과 양육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 반드시 저출생 현상을 완화한다는 보장은 없다.
한국 사회는 2005년 합계출산율(TFR)이 1.08로 낮아진 ‘쇼크’를 겪으면서, 정권의 이념과 관계없이 저출생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제도화했다. 전문가들도 양육자가 일과 생활을 양립할 수 있게 해주고,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충분하지만 아동보육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확대하며, 아동수당 등을 도입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일부 정책의 성과는 눈부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0~2살 아동의 보육시설 이용 비율을 보자.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이용률은 무려 62.6%에 달해 오이시디 회원국 중 3위를 기록했다.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의 이용률인 47.6%, 37.0%, 55.3%보다도 월등히 높다.
그러나 합계출산율은 점점 더 낮아졌다. 이변이 없는 한 2023년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류 역사상으로도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러자 대부분 언론은 200조~300조원을 쓰고도 상황이 더 악화했다고 정부를 비난했다.
정부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쓴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돈의 일부는 아동보육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육아휴직을 확대했으며, 남성의 육아 참여와 아동수당 등을 제도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더욱이 이런 일들은 저출생 현상과 관계없이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었다. 여성의 독박육아는 정당화될 수 없고, 모든 아동은 양질의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수백조를 쓰고도 출생률이 점점 더 낮아졌다는 역설적인 현실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분명하다. 수십년 지속되고 있는 저출생 현상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돈을 더 쓴다고 완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다시 설치하면서 저출생 대응 정책의 기조를 ‘출산 장려’에서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이유였다.
우리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한국 사회는 성, 학력, 학벌, 지역 차별이 만연하며 돌봄의 책임이 여성에게 강제되는 사회이다. 한번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면 평생을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사회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청년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세습 능력주의’ 사회이다.
청년들은 “헬조선에서 겪는 고통을 자식에 대물림하기 싫어서”, “힘든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도 부모로서 죄짓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했다. 세습 기득권층을 위해 “노예 만들어줄 일 있냐”며 출산을 거부한 청년들의 이야기는 왜 지난 20여년 동안 출산장려정책이 저출산 현상을 완화하는 데 실패했는지를 아프게 확인시켜준다. 지난 20여년 동안 실패를 통해 우리가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새 제도를 도입하고 돈을 더 쓰겠다는 공약만 발표했다. 심지어 국민의힘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인구부를 신설하겠다고 공약했다. 여성가족부를 출산장려부로 생각했던 것인가? 할 말이 없다.
새 제도를 만들고 돈을 더 쓰는 것만으론 저출생 현상을 완화할 수 없다. 저출생은 한국 사회가 심각한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불평등, 차별, 부의 세습과 같은 근본적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구조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늘리고, 안정적 주거를 보장하며,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에게 세습되는 악순환을 끊는 구조적 대안을 공약하는 것은 그 시작이다.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과거의 실패로부터 배워야 한다. 이번에도 망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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