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재의 파도를 넘어] 미국 LNG 수출 사업 제동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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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파도는 바위를 깎아냈다.
한순간의 파도가 바꿀 수 있는 건 없었지만, 계속된 파도로 바위는 결국 떨어져 나갔고, 파도는 지형마저 바꾸어 버렸다.
화석연료 산업의 확장을 저지하겠다는 정부 결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파도가 화석연료 산업에 맞섰다.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엘엔지 수출 확장 중단을 반대해온 기후활동가들, 화석연료 산업으로부터 선거자금을 조달받는 정치인들을 비판해온 미국의 청년단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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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재 | 기후솔루션 연구원
오랜 시간 파도는 바위를 깎아냈다. 한순간의 파도가 바꿀 수 있는 건 없었지만, 계속된 파도로 바위는 결국 떨어져 나갔고, 파도는 지형마저 바꾸어 버렸다. 그렇게 바뀐 지형은 이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이후에도 파도는 바위에 맞선다. 앞으로도 오랜 시간 그럴 것이다.
바위가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있다. 그 바위의 이름은 화석연료의 한 종류인 천연(메탄)가스다. 가스의 지위는 최근까지도 굳건했다. 석탄 발전과 재생에너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부턴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세계적으로 신규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사업이 폭발적으로 이뤄졌다. 그런 이유로 국내 정치권이나 정부에서 엘엔지 확장에 대한 견제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26일, 엘엔지 수출 1위국인 미국에서 꽤나 큰 결정이 있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엘엔지 수출 터미널의 신규 인허가를 일시적으로 중단한 것이다. 인허가 권한이 있는 에너지부의 심사 기준에 기후환경 영향을 도입하기 전까지 앞으로 약 1년 간은 신규 인허가가 없을 전망이다. 물론 이미 승인이 떨어진 수출 터미널 용량이 현재 용량의 2배 수준이라, 단기적으로 수출 물량은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2030년 이후 중장기 엘엔지 신규 공급량은 이번 결정으로 많이 꺾이게 되었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작년엔 엘엔지 수출 2위국 오스트레일리아에 새로운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담은 ‘세이프가드 메커니즘’ 법안이 통과됐다. 이 법에 따라 신규 가스전 사업자는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0에 맞추기 위해 탄소포집·저장(CCS) 사업을 추가로 하거나 감축 인증서(크레딧)를 사야만 한다. 그만큼 신규 가스전 사업 추진 비용은 비싸진다. 현지 씽크탱크인 오스트레일리아연구소는 국내 기업 에스케이 이엔에스(SK E&S)의 오스트레일리아 바로사 가스전 사업 비용이 세이프가드 메커니즘 통과로 8600억원 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추산하기도 했다.
이런 결정들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화석연료 산업의 확장을 저지하겠다는 정부 결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파도가 화석연료 산업에 맞섰다.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엘엔지 수출 확장 중단을 반대해온 기후활동가들, 화석연료 산업으로부터 선거자금을 조달받는 정치인들을 비판해온 미국의 청년단체들이 있었다. 자신의 삶의 터전을 파괴해가며 이뤄지는 화석연료 개발 사업에 직접 반대 목소리를 내왔던 지역 주민들과 원주민들도 있었다. 기후변화 대응을 요구한 유권자들의 표심이 있었고, 입법을 통해 제도권에서 거듭 문제 제기를 해왔던 정치인들도 있었다.
그렇게 바뀐 지형은 쉬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석탄을 둘러싼 미국의 경험은 이를 잘 보여준다. 2017년 백악관에 입성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석탄 광원은 다시 일터로 돌아갈 것”이라 선언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석탄발전의 폐쇄 속도는 오바마 행정부 2기 때 폐쇄 속도보다 빨랐다. 이번 바이든 행정부의 결정을 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 첫날 신규 사업을 승인하겠다”고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더라도 엘엔지 산업에 장밋빛 전망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바뀐 지형에서 파도는 계속해서 바위를 깎아나갈 것이다. 인허가만 완료됐을 뿐 아직 투자 결정이 끝나지 않은 사업, 금융 조달이 완료되지 않은 사업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가 심해질수록, 그리고 대안인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가 빨라질수록 파도의 세기는 커지고 빈도도 잦아질 것이다.
파도는 그렇게 내일로 나아간다. 엘엔지 확장에 대한 제동은 이제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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