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합격했을 때 동네에 현수막 걸렸어? ‘서울 사람’이 하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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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서울의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너도 대학 합격했을 때 동네에 현수막 걸렸어?"라고 서울 출신 동기들이 종종 물었다.
동기의 말에는 지방이 고향인 사람이 서울의 대학교에 입학한 성취는 작게는 현수막 크게는 마을 잔치 정도로 축하하거나 자랑해야 마땅하다는 함의가 숨어 있었다.
대입 축하 현수막의 기준이 '인 서울'(in Seoul)이라는 점을 말이다.
서울의 대학에 합격했거나 서울이 아닌 지역인 경우 의치약학 계열에 합격했거나 지역 대학이라면 서울의 대학과 동시에 합격했을 때 축하 현수막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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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주 | 양양군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2000년대 초반 서울의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너도 대학 합격했을 때 동네에 현수막 걸렸어?”라고 서울 출신 동기들이 종종 물었다. 당시에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십여 년이 흘러 양양에서 살면서 그 질문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동기의 말에는 지방이 고향인 사람이 서울의 대학교에 입학한 성취는 작게는 현수막 크게는 마을 잔치 정도로 축하하거나 자랑해야 마땅하다는 함의가 숨어 있었다.
양양 역시 여느 지방처럼 아직도 현수막 광고 힘이 세다. 상업 광고는 물론이고 개인이나 단체가 거는 축하 현수막도 많다. 공무원이 진급하거나 새로운 교장이 부임하거나 로터리 클럽 회장이 새롭게 선출되면 가족 친지, 동창, 친구들이 축하 현수막을 건다. 대입 축하도 마찬가지다. ‘고모 일동’ 등 친지는 기본이고 수험생 부모들인 배드민턴 동호회원 명의로 축하하는 때도 있다. 어느 해인가 현수막을 보다가 깨달았다. 대입 축하 현수막의 기준이 ‘인 서울’(in Seoul)이라는 점을 말이다. 서울의 대학에 합격했거나 서울이 아닌 지역인 경우 의치약학 계열에 합격했거나 지역 대학이라면 서울의 대학과 동시에 합격했을 때 축하 현수막이 걸렸다. 뿌리 깊게 자리한 학벌주의가 드러나는 모습이지만 지켜보는 게 심란했던 이유는 좀 더 복잡했다.
지방의 아이들이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면서 고향을 떠나 좋은 일자리가 있는 서울에 정착해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은 지방소멸의 다양한 원인 중 하나이다. 지역의 거점 국립대도 입학 정원 미달을 걱정하고, 생존을 위해 대학 간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구성원의 마음에 생채기가 생긴다는 소식도 종종 들려온다. 동시에 여전히 지방 출신이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자의든 타의든 더 많은 정보와 기회를 접하고 더 치열한 경쟁이 몸에 밴 서울 학생보다 더 높은 점수와 더 풍성한 생활기록부를 획득하기 쉽지 않아서다. 이곳에서 만난 한 고등학교 선생님은 수시 전형이 아니라면 양양 아이들이 대학 진학하기가 훨씬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3루에서 태어났는데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안다”라는 말이 있다. 서울 아이들이 3루에서 태어났다면 지방 아이들은 3루타를 쳐야 한다. 3루타를 치기는 매우 어렵고, 그래서 그 어려운 성취를 현수막으로 자랑하고 축하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간다. 한편으로 이 성취 뒤에서 여러 이유로 성인이 된 후 서울로 가지 않는 아이들도 생각난다. 지역 불균형과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방법론으로 청년 유입이 많이 거론된다. 하지만 청년 유입을 활성화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청년 유출을 막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지역에 남았다는 이유로 패배자라는 인식이 덧씌워지곤 한다. 일자리의 절대 수가 부족하고 양질의 일자리는 더욱 부족하고 급여나 복지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현실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뭔가 문제가 있어 지방에 남았다는 세간의 인식이 그들을 움츠러들게 한다.
근무하고 있는 센터에서 서울에서 양양으로 온 젊은 귀촌인과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만나 진로 탐색을 하는 프로그램을 5주 동안 진행한 적이 있다. 지방에서는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서 떠나는 것을 막고 싶었고, 나아가 서울의 대학에 진학해 공부한 후에도 자기 경험에 근거한 판단으로 서울이 아닌 곳에서 일하고 사는 것을 삶의 선택지에 넣어볼 수 있길 바랐다. 대입 축하 현수막은 서울에서도 위화감 조성 등 이유로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지방의 현수막은 더 겹겹이 쌓인 서열화의 무게를 안고 있기에 바라보는 마음도 무겁다. 줄어드는 학령 인구로 해마다 합격 축하 현수막이 줄어들어 언젠가 아예 볼 수 없는 날이 오면, 이 씁쓸한 모습마저도 그리워질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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