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윤석열式 대도무문`에 길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도 신년기자회견을 건너뛰었다. 기자회견 자체를 2022년 8월 이후 않고 있다. 취임 초 즉석 질의답변(도어스테핑)으로 국정의 궁금증을 풀어줬던 모습과 상반된다. 불상사로 도어스테핑이 중단된 후 윤 대통령은 간담회나 시장, 기업 등 현장을 찾는 방식으로 기자회견을 대체하는 길을 택했다. 그런데 그건 그것대로 필요하고, 언론과 기자회견은 또 그것대로 필요하다.
7일 방송된다는 KBS와의 대담도 기자회견을 대신할 순 없다. 생방송도 아니고 녹화한 것을 3일이나 후에 방영한다니 '싱크로시대'에 거꾸로 간다는 인상이다. 대체 왜 이런 옹색한 방식을 택했는지 갑갑하다. "정해진 각본대로 사전에 녹화한 대담으로 신년기자회견을 때우겠다고 한다"는 민주당의 주장을 받아칠 논리가 궁색해 보인다.
윤 대통령이 구차해 보이는 방식을 택한 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아마 김건희 여사가 '백'을 받은 일과 관련 있을 것이다. 백과 관련한 전후 과정은 다 알려져 있어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지만, 이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과 그 일을 연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이 내리는 국정과 관련한 결정의 정당성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령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 행사가 '백 해프닝'으로 인해 야당에 의해 공세 거리가 되거나 법안 이해당사자들이 불복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야당이 노리는 점이 사실 이것이겠지만 말이다.
백 해프닝으로 대통령의 지도력 공백, 적어도 지도력 약화는 대통령이 시급한 결정을 미루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할 수 있다. 이는 국가의 커다란 손실이다. 사실, '백 사건'은 작은 일이다. 기획 모략한 자들을 사회적으로 비난하고 매장하면 끝날 일이었다. 아무런 이해를 갖지 않는 제3자가 보아도 인간의 선의를 정반대로 갚은 야수들의 짓이다. 그 전후 사정을 유심히 살폈거나 정확한 설명을 들은 국민이라면,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백 사건이 이렇게까지 발전한 것은 처음에 대처를 잘못했기 때문이다. 유튜브 방송으로 처음 알려졌을 때 사건의 자세한 내막을 대통령실이 즉시 공개하고 설명했더라면 이렇게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기자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은 고도의 정무적 행위를 한다. 언제 어디서든 선물을 받는 일이 많다. 받은 선물은 개인의 것으로 귀속되지 않는다. 이 때 선물은 고위공직자가 받는 것과 성격이 다르다. 대통령이나 그 부인은 국민이 주는 선물을 쉽게 거부할 수 없다. 궤변이라고 할지 모르나, 그렇기 때문에 관련 규정이 있는 것이고 그에 따라 처리한다. 대통령은 특권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국가원수'로서 국민 통합의 기능을 수행함에 있어 예외적인 경우를 적용받는다.
더군다나 백 사건을 계략한 자들은 교모하게도 대통령 부인의 선물 수수 규정을 따져볼 수밖에 없도록 비교적 고가의 백으로 정하고 받는 모습을 몰래 촬영해, 1년여 후 총선을 앞둔 시점에 공개했다. 그들은 김 여사가 선물을 받지 않을 수 없도록 김 여사의 선친과 연고를 각색하고 과장하는 등 갖은 수법을 다 동원했다.
대통령실이 이런 저간의 사정을 즉시 밝히지 않은 것은 큰 패착이다. 이미 모략자들의 프레임에 따라 이 사건이 대중에 주입된 상황에서 돌이키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사실을 적극 설명했어야 했다. 이번 대담 녹화방송 방식도 그 연장선에서 보면 현명치 못하다.
실정이 없지 않으나 YS(김영삼 대통령)는 소통에 남다른 열정이 있었다. 잘못된 사실을 교정하려는 데는 즉각적이었고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글귀를 좋아했다. 바른 길은 술책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그런 그도 아들의 비리 연루로 임기 후반에 리더십을 많이 상실했고 국정의 '그릿'(grit)이 많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대통령은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 검찰총장 재직 시 문재인 정권의 부당한 압력에 정면으로 '맞짱뜬' 기개는 어디갔나. 백 해프닝도 정면 돌파해야 한다. 사실은 강하다. 김 여사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대통령이 위축되면 국민들이 손해다. '윤석열 식 대도무문'을 보여주기 바란다.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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