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다하다 목숨 잃어도… 예우 못 받는 ‘잊혀진 희생’ [창간35-‘순직’ 국가의 기억]
해병대에 복무하다 허리 부상
제때 치료 안 된 채 의병 전역
상이등급 못 받고 수 차례 탈락
매년 軍서 사망 군인 100여명
순직 문턱 높아… 기준 세워야
軍복무 중 숨져도 소수만 순직 인정… “아픔은 유족만의 몫”
전역 후 후유증 시달린 故 배봉석 일병
요리사 꿈 접고 우울증 앓다가 생 마감
母 “내 소원은 국립묘지 보내는 것” 눈물
12·12 군사반란 당시 숨진 김오랑 소령
반란군 맞서다 사망했는데 ‘순직’ 처리
우발적 사고 둔갑… 뒤늦게 ‘전사’ 인정
8년 전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낸 심인옥(66)씨.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갈 때면 자기도 모르게 주방을 둘러보곤 한다. 언젠간 호텔 조리사가 되겠다던 아들 고(故) 배봉석 일병이 떠올라서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해병대에 입대한 배 일병은 2사단 취사병으로 복무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요리학원에 다녔던 취사병 생활은 고되지만 꿈에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그런 그가 일병이 됐을 무렵 식자재 창고에서 무거운 철자재를 옮기던 중 ‘뚝’ 하는 소리가 허리에서 들려왔다.
전역 후 허리 통증도, 우울증도 악화했지만 보훈심사에서 상이등급을 받지 못하고 수차례 탈락했다. 군의 관리 부실 등과의 연관성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무력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심씨는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장 큰 이유가 국가의 외면이었다고 호소했다. 배 일병은 생전 공상을 인정받게 해달라고 싸웠는데 국가의 외면 탓에 심씨가 아들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해달라고 싸우게 됐다. 기자와 만난 심씨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내 소원은 봉석이를 국립묘지에 보내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요구들이 이어지자 군 복무 중 임무를 수행하다 부상이나 병을 얻은 뒤 해당 사유로 전역 후 사망해도 전사자나 순직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군인사법 개정안이 만들어졌고 지난해 11월 공포됐다.
사전을 보면 순직은 ‘군인, 경찰, 공무원이 직무를 다하다가 목숨을 잃음’을 뜻하는 말이다. 정부는 전투 중 산화한 전사자뿐 아니라 순직한 이들의 죽음을 기리고 남은 이들을 지원해야 할 책임이 있다. 국가가 기억해야 하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매년 군에서 100여명 가까운 군인이 사망하지만 많은 이들은 순직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행여 순직으로 인정받아도 제대로 된 예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 오랫동안 외면받아 온 죽음이 있다. 12·12 군사반란 당시 정병주 특수전사령관을 지키다 반란군의 총탄에 숨진 김오랑 소령(1990년 중령 추서)이다. 그의 평전 ‘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오랑’의 저자 김준철씨는 4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방부 정신전력 교재에 김오랑의 군인정신이 기록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두가 반란군에 동조하거나 피신했을 때 사령관 비서실장이었던 김 소령만 목숨을 걸고 자신의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김씨는 “군인으로서 임무에 충실했던 것이고 군인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후배들에게 보여준 사례”라고 설명했다.
김씨 역시 1990년 학생군사교육단(ROTC) 28기로 임관해 특전사에서 복무했다. 복무 당시에는 선배인 김 소령을 알지 못했지만 20여 년 전 무릎 부상으로 전역한 뒤 인터넷에서 ‘김오랑 추모회’라는 단체를 우연히 발견했고 그의 생애에 빠져들게 됐다고 한다. 이후 12·12 관련자들의 증언과 진술 자료 등을 모아 평전을 쓰게 됐다. 책에는 45년 전 김 소령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1979년 12월12일 밤 김충립 당시 보안사 보안반장이 홀로 남아 권총에 총알을 장전하던 김 소령을 발견하고 이유를 묻자 ‘보안사에서 사령관님을 잡으러 올 것 같아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반란군이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하려고 들이닥칠 것을 알면서도 사령관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김씨는 12·12 당시 반란군에 맞서다 희생된 정선엽 병장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정 병장은 당시 서울 용산 국방부 지하벙커에서 근무 중 국방부를 장악하려는 반란군의 총탄에 전사했다. 김씨는 “영화에서는 정 병장이 너무 지나가듯 등장해 아쉬웠다”며 “병사라 조명을 많이 못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의 희생을 기리고 군인정신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국가가 함께 기억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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