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은 총재의 행보…선진국 중앙은행이 왜 주목하나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물가안정만 둘 수 없어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기준금리 갈수록 무력화
"금융중개지원대출 등
비전통적 수단도 유용"
한은 총재의 발언에
각국 중앙은행 관심
인공지능(AI) 시대가 현실로 닥치면서 각국 중앙은행은 ‘어떻게 통화정책을 수행할 것인가’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분명한 것은 네트워킹 효과와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AI 시대에서는 중앙은행의 목표를 ‘물가 안정’에만 둘 수 없다. 기준금리 변경 등과 같은 종전의 통화정책 수단이 무력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통화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다른 경제주체도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정보의 비대칭성’을 전제로 한 중앙은행의 시장 선도 기능은 약화한다. 중앙은행과 시장 참여자 간의 관계가 ‘수직적’이 아니라 ‘동반자적’으로 변한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 위상과 총재의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각국 국민이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새로움과 복잡성’에 따른 위험이 증가하고, 화폐개혁 논의가 지속되고 있는 점이다. 유사 금융행위와 금융사고도 늘어난다. 이런 환경에 맞춰 금융감독을 옴니버스 방식 등으로 접근하지 못하면 각국 국민의 화폐 생활에 일대 혼란이 초래될 확률이 높다.
한국은행의 고민은 이달 1일 열린 2024 경제학 공동학술회의에 참석한 이창용 총재가 “금리정책을 사용하기가 어려워지는 여건에서는 금융중개지원대출도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다소 생소한 발언을 통해 드러났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이란 한은이 시중은행에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면 이를 은행이 중소기업 등에 대출해주는 수단을 말한다.
AI와 같은 뉴노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통화정책 수단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준금리를 변경하는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시중 유동성을 조절하는 정책이다. 적용 범위에 따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보편적 수단과 특정 부문만을 겨냥하는 선별적·질적 수단으로 구분된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은 후자에 해당한다.
1980년대 초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이후 통화정책 주수단으로 사용해온 기준금리는 갈수록 무력화되고 있다. 기준금리 변경 방식이 효과가 있으려면 두 가지 전제조건이 따라야 한다. 하나는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간 체계’(interest system)가 잡혀 있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통화정책 전달경로’(transmission mechanism)가 작동해야 한다.
금리 체계가 흐트러져 중앙은행이 의도한 효과보다 위기를 초래한 대표적인 사례가 ‘그린스펀 수수께끼’ 현상이다. 2004년 당시 앨런 그린스펀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에 낀 거품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하지만 때맞춰 중국이 미국 국채를 대거 사들이자 시장금리(10년 만기 국채금리)가 내려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금리 인상 과정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발생했다. 작년 7월 이후 Fed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렸지만 시장금리는 2배 이상 급등했다. ‘파월 수수께끼’라고 불리는 이 현상으로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이 오히려 국가신용등급 강등, 신용불량자 속출, 경기 침체 우려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통화정책 전달경로가 작동하지 않은 지는 오래됐다. 초불확실성 시대를 맞아 민간은 저축, 기업은 현금 보유 등으로 금융과 실물 간 연계성이 추세적으로 떨어져 왔기 때문이다. 뉴노멀, 뉴애브노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 커져 통화정책 전달경로가 복원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일반적·보편적 통화정책 수단인 공개시장 조작은 주요 활용 도구인 국채의 기능이 종전만 못 하다. 국가채무 누적 등으로 안전자산으로서 위상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빅테크 주식 등으로 보완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중앙은행의 외부성으로 시장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대안화폐 진전 등에 따라 본원통화의 통화 유통속도, 통화 승수는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통화정책의 무력화’ 문제다. 오히려 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이 위기를 초래하다 보니 비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으로서는 이마저도 여의찮다.
중앙은행이 손 놓고 있어야 하는가? 이 총재의 금융중개지원대출 발언은 선별적·질적 통화정책 수단을 검토한다는 면에서 각국 중앙은행 총재가 주목하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한은은 뉴노멀 통화정책 여건에 맞춰 중앙은행 목표 수정, 새로운 통화지표 개발, 중간 표적변수 개발,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간 체계 재구축, 통화정책 전달경로 유효성 점검, 통화정책 관할 범위 확대, 디지털화폐(CBDC) 도입, 그리고 경기 예측력 제고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줄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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