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과 비상업 경계 자유로이 넘나든 예술가”···박영하 디자이너가 본 바자렐리
박영하 디자이너가 말하는
빅토르 바자렐리 작품 세계
“디자이너로서 바자렐리의 조형적 스타일을 좋아하고 그의 장인정신을 존경합니다. 생성형 AI(인공지능)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창작자 영역이 모호해지는 시대에, 철저한 수학적 계산과 광학적 이론을 토대로 한 바자렐리의 수작업들은 희소가치가 매우 높다고 생각됩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빅토르 바자렐리 : 반응하는 눈’ 전시회장에서 지난달 31일 박영하 디자이너가 말했다.
박영하 디자이너는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카림라시드 스튜디오 뉴욕 본사 책임디자이너로 일했으며, 스타벅스 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며 디자인을 총괄했다. 상업과 비상업의 경계를 드나들며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여온 그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이자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33년 만에 열리는 바자렐리 전시 개최를 맞아 박영하는 바자렐리의 특징인 착시현상을 이용한 옵아트적 요소와 박영하의 장기인 타이포그래피를 결합한 아트상품을 선보였다. 박영하는 이날 열린 한국-헝가리 친선협회의 특별관람에서 디자이너 관점에서 작품을 해설해주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바자렐리와 옵아트가 그래픽 아트와 상업 디자인, 패션 업계와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해요. 세계적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 역시 바자렐리를 존경한다고 했으며, 실제 그의 작업에서도 옵아트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바자렐리의 체스판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요,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한 체스판과 아주 닮았기 때문입니다. 라시드가 바자렐리로부터 받은 영향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죠.”
철저한 계산과 광학이론 토대로
코드 짜듯 알고리즘·순열 만들어
자신만의 조형언어 구축한 ‘장인’
옵아트는 옵티컬아트(Optical Art)의 줄임말로 기하학적 형태와 색채 등을 이용하여 사람의 눈에 착시를 일으키는 예술의 한 장르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출발했던 빅토르 바자렐리는 도형과 색채만을 이용한 자신만의 조형적 언어를 발전시켜나가며 ‘옵아트’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바자렐리는 컴퓨터가 없거나 상용화되지 않았던 시기, 코드를 짜듯 알고리즘과 순열을 만들어 작품을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박영하는 “바자렐리는 단 한 번도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복잡한 작품을 만들었다. 컴퓨터로 모든 것을 만드는 시대에, 바자렐리의 작업은 사람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장인정신을 보여준다는 면에서도 소중하다”고 말했다.
알고리즘과 순열을 이용한 작품 제작은 예술의 민주화에 대한 바자렐리의 철학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박영하는 “바자렐리는 등록금을 받지 않는 디자인 학교를 설립하려고 했으며, 대중적 재생산이 가능한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며 “카림 라시드 역시 실용적인 디자인 제품을 합리적 가격으로 널리 공급해 모든 이가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디자인 민주주의’ 철학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바자렐리는 상업적 디자이너에서 작가로 전향해 성공을 거둔 뒤에도 디자인과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72년 르노 자동차의 엠블럼을 디자인했으며, 전시장에선 데이비드 보위의 앨범 커버 등 바자렐리의 작품을 이용한 다양한 디자인 제품을 함께 볼 수 있다.
착시현상 이용한 옵아트적 요소에
타이포그래피 결합한 작품 선보여
바자렐리 전시를 기념해 박영하는 움직임에 기반한 키네틱아트적 요소와 타이포그래피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바자렐리는 50년대 흑백 대비를 통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평면에 움직임을 부여하는 작업을 선보였죠. 이는 움직임을 본질로 하는 키네틱아트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 점에 착안해 작품을 보는 각도에 따라 화면이 변하는 키네틱아트적 요소를 작업에 활용했어요. 또 A를 상하로 뒤집으면 ㅂ이 되고, S를 좌우로 뒤집으면 ㄹ이 되는 등 영어와 한글의 형태적 유사성에 기반한 착시효과를 이용했습니다. 재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바자렐리는 상업적 디자인 작업과 함께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박영하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바자렐리는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발견하고 옵아트 선구자가 되기까지 기존의 관념과 질서에 도전했으며 상업과 비상업의 경계를 넘나들었습니다. 저의 목표 또한 저만의 조형 언어를 발견하고 구축해 그 경계에서 자유롭게 노는 것입니다.”
박영하의 아버지는 원로 조각가 박충흠으로, 그에겐 ‘예술가의 피’가 흐르고 있다. 박영하는 “개인적 작업은 삶의 원동력이 되고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며 “상업적 디자인을 하면서도 박영하 개인, 작가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박영하는 현재 서울 마포구 잇다프로젝트에서 개인전 ‘현상유희’를 열고 있다. 박영하가 지금까지 해온 개인적 작업들을 선보이는 전시다.
https://www.khan.co.kr/culture/art-architecture/article/202312261111001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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