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법관 인사이동과 사법부 독립

2024. 2. 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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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2월이면 법관 정기인사가 있다.

우리나라처럼 법관의 의사를 묻지 않고 인사권자의 재량으로 법관 근무지를 정기적으로 이동하는 나라는 민주국가에서 찾기 어렵다.

그러나 대다수 법관이 서울 등 대도시 지역 근무를 희망하고 법관 정기인사 관행이 뿌리내린 현실에서 갑자기 법관 인사이동을 멈출 수는 없다.

그러나 재판부 교체 주기를 1년에서 2년 이상으로 늘린다고 해서 법관 인사이동에 따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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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2월 법관 대규모 인사
재판부 교체로 곳곳 몸살사태
유럽은 판사 인사이동 제한둬
韓은 법원관할 확대가 현실적

해마다 2월이면 법관 정기인사가 있다. 인사가 있으면 재판부가 바뀐다. 재판부가 바뀌면 재판은 사실상 원점에서 다시 시작된다. 새 재판부는 전임 재판부가 진행한 재판을 서류로 확인한 다음 재판을 이어간다. 수십 건의 사건 기록을 다시 읽고 재판을 이어가야 하니 재판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전임 재판부를 상대로 열심히 변론하고 증거를 설명하던 당사자와 변호사는 새 재판부를 상대로 그동안 해온 노력을 다시 되풀이해야 한다. 이런 낭비가 있을 수 없다. 우리나라처럼 법관의 의사를 묻지 않고 인사권자의 재량으로 법관 근무지를 정기적으로 이동하는 나라는 민주국가에서 찾기 어렵다. 법관법에 관한 유럽 헌장(European Charter on the Statute of Judges)은 원칙적으로 판사의 동의 없이 근무지를 바꾸면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판사 직급이 여러 단계로 나뉜 프랑스에서는 판사를 승진 발령하는 때에도 근무 장소를 변경하려면 해당 판사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법관 인사이동을 이처럼 제한하는 것은, 판사가 인사이동의 대상이 되면 재판의 독립이 침해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판사가 인사에 신경 쓰게 되면 '헌법과 법률과 양심'이 아닌 '인사권자의 입맛'에 맞는 재판을 할 우려가 있다. 과거에는 인사권자의 뜻에 반하는 재판을 한 판사가 좌천성 인사를 당한 일이 드물지 않았다. 인사권자가 판사의 재판 경향이나 정치적 성향을 인사에 반영하여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유럽과 같이 판사의 인사이동을 제한하면 사법부 독립도 강화되고 인사이동에 따른 재판 지연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법관이 서울 등 대도시 지역 근무를 희망하고 법관 정기인사 관행이 뿌리내린 현실에서 갑자기 법관 인사이동을 멈출 수는 없다. 대법원은 최근 재판부 교체 주기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바람직한 방안이다. 그러나 재판부 교체 주기를 1년에서 2년 이상으로 늘린다고 해서 법관 인사이동에 따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법관 인사를 최소화하면서 인사이동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원의 관할 구역을 확대하면 된다. 미국은 50개 주에 89개의 연방지방법원이 있다. 인구가 많은 주에는 3개 또는 4개의 연방지방법원이 있지만 1개의 연방지방법원만 있는 주도 많다. 우리나라보다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는 알래스카, 몬태나, 뉴멕시코, 애리조나, 네바다, 콜로라도, 오리건, 와이오밍, 미네소타주에도 연방지방법원은 1개만 있다. 우리나라에는 18개의 지방법원이 있다. 면적만 놓고 보면 이렇게 많은 지방법원을 둘 이유가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사법전산망과 전자소송 시스템을 활용하면 전국을 관할하는 하나의 법원만 있어도 된다. 소송 당사자는 전산망을 이용하거나 가까운 법원을 찾아가 소장 등 서류를 제출하면 되고 관할 법원이 어디인지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편리하다. 접수된 사건을 전국 법관에게 골고루 배당하면, 법관의 업무 편차가 없어지고 상당한 수준의 법관 증원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당사자나 증인은 가장 편리한 법원에 출석하여 영상재판 시스템을 이용해서 변론하고 증언하면 된다. 판사와 직접 대면이 필요한 사건은 해당 지역 소재지 법원에 배당하면 된다.

현재 대법원과 특허법원은 전국에 하나만 설치되어 있지만 문제없이 잘 운영되고 있다. 고등법원이나 지방법원의 관할을 하나로 통합하더라도 특별한 문제가 없다. 건물 등 물적 시설은 전국에 있는 시설을 그대로 이용하고 누구나 원하는 곳에 찾아가 재판을 받으면 된다. 시군법원이나 등기소 시설까지 이용하면 국민 편의는 배가된다. 과감한 결단과 법률 개정만 있으면 된다.

[강일원 변호사(전 헌법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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