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국내 매독 전수 감시 ‘한 달’
태릉선수촌 의무실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룬 과거 SBS TV드라마 <닥터챔프>에 매독이라는 성병이 나온다. 스타급 운동선수인 고은미(강기화)가 매독에 감염된 남편으로부터 전염돼 치료를 받는다. 고은미는 여의사 김연우(김소연)에게 외부에 알리지 않고 선수촌 내에서 비밀리에 치료해 줄 것을 부탁, 병의 은밀한 성격을 드러내 준다.
기자가 15년 전인 2010년에 방영한 <닥터챔프>를 다시 떠올린 이유는 최근 국내에서 매독이 은밀하게 전파되고 있다는 증표가 상당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활발한 교류를 하는 일본이나 미국에서 이미 '매독 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우리도 '매독 주의보·경보'가 내려질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새해 들어 약 한 달(1주∼4주) 동안 국내 매독 전수 조사 결과, 잠복매독을 포함해 200여 명에서 매독이 진단됐다. 구체적으로 1기 78명, 2기 36명, 3기 11명, 잠복 116명 등이다. 이는 질병관리청(질병청)의 '전수감시 감염병 환자 발생현황'에 드러난 숫자로, 연초부터 상당수 환자 발굴이 이뤄지고 있는 모양새다.
매독의 전 세계적인 확산 추세에 따라, 질병청은 올해 1월 1일부터 매독을 '제4급 감염병'에서 '제3급 감염병'으로 전환해 전수감시 체계로 조정했다. 모든 의료기관은 매독을 진단·발견한 24시간 이내 질병청에 신고해야 하고, 매독 환자와 접촉자 등에 대한 역학조사가 이뤄진다.
지난 2023년 1~11월 우리나라의 매독 환자 신고는 386건에 불과했다. 572곳 의료기관의 표본 감시 결과다. 2020년에는 354건, 2021년 337건, 2022년 401건이 보고됐을 뿐이다. 그런데 전수감시 체계가 가동되자마자 만 1개월도 안돼서 벌써 200명을 넘어섰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금년 한해 2000명 이상의 매독 감염자가 발생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도 자칫하면 일본이나 미국처럼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일본의 경우, 2022년 연간(1월∼12월 19일 기준) 새로운 매독 환자가 1만 3251명을 기록하면서 3년 연속 최대 매독 환자 수를 경신했다. 일본에서 매독 감염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건 지난 2013년부터다. 그해 1000명을 넘어선 매독 환자는 2016년 4000명대, 2017명 5000명대에 접어들었다. 이후 2021년 7978명을 기록했고, 2022년 1만 3000명대로 거의 수직 상승했다.
미국 또한 매독이 70년 만에 최악의 수준으로 퍼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최신 보고서는 매독 감염 건수가 2022년 기준 미국 내 매독 감염 건수를 20만 7255건으로 집계했다. 이는 1950년 이후 최대 감염 건수를 기록한 것이다. 전년보다는 17%, 5년 전인 2018년보다는 약 80% 급증했다. 특히 매독에 걸린 채 태어난 신생아도 3700여 명에 달해, 30년 만에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혈액이나 체액을 타고 번지는 매독은 세균인 매독균 감염으로 발생하는 생식기 및 전신 질환이다. 주로 피부와 점막을 통해 감염과 전염이 일어나는데, 다른 성병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전파 위험성이 매우 높다. 성 접촉뿐 아니라 감염 여성이 임신하거나 임신한 여성이 감염되면 태아에게로 직접 전염될 수 있다. 구강 점막에 상처가 있을 경우 키스 등으로 전염되기도 한다. 감염자와 칫솔이나 면도기를 같이 쓴 경우도 상당히 위험하다.
매독의 원인균은 '트레포네마 팔리듐균'으로, 생식기로 전파돼 성기 주변에 통증이 없는 궤양 형태로 발생한다. 이것이 1기(차) 매독이다. 트레포네마 팔리듐균이 혈액을 타고 전신으로 퍼지면 2기 매독이 발생하는 데, 손바닥 발바닥을 비롯해 전신에 나타나는 붉은 점 형태의 수많은 발진이 나타난다. 2기 매독은 다시 3기 매독으로 악화하거나 잠복매독 상태에서 수년, 수십 년간 증상이 없다가 동맥염, 뇌신경매독 등으로 나타난다. 3기가 되면 신체 장기 및 신경 손상을 일으키고, 뼈에도 상처를 남긴다. 잠복매독은 증상이 없으므로 혈액검사를 통해 발견하는 수밖에 없다.
매독의 치료는 다양하고 무서운 증상에 비하면 간단한 편이다. 페니실린을 주 1회 총 3주간 주사하는 것이 기본이다. 페니실린 부작용이 있는 환자는 쇼크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으며, 이때 신속한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페니실린 부작용이 있다면 항생제를 한 달 이상 복용해야 한다. 감염자의 10% 정도는 치료받아도 재발하므로 치료 후 3개월, 6개월에 각각 혈액검사로 치료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야흐로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성매개감염병' 매독은 위험한 성관계 등 성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이 예방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다. 불건전한 성관계, 즉 익명이나 즉석만남 파트너와 성관계, 성매매를 통한 성관계, 특히 콘돔 없는 성관계 등을 가진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매독 검사를 꼭 받아보길 권한다.
박효순 기자 (anytoc@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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