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그리움만 쌓이네

2024. 2. 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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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강이 보고 싶었다.

졸업한 뒤로 나는 강과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강이라니.

강! 나는 들뜬 목소리로 정말 오랜만이지 하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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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강이 보고 싶었다.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강과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했지만 그뿐이었다. 졸업한 뒤로 나는 강과 만난 적이 없었다. 안부를 전한 일도, 그 흔한 SNS 메시지 한 번 주고받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강이라니. 나는 당혹스러우면서도 간절한 마음을 담아 고교 동창생인 오에게 고백했다. 못 견디게 강이 그립다고 말이다. 오는 나보다 더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네가 강이랑 친했던가?" 당시 문학동아리는 실기와 면접을 거쳐 한 학년당 꼭 여섯 명만 뽑았고, 강과 나는 그 여섯에 속해 있었다. 그러니 친했던 게 틀림없다고 나는 말했다. "일곱 명이었어." 오가 찡그린 얼굴로 정정했다. "한 학년에 일곱 명."

강은 자그마한 체구에 발이 빠른 친구였다. 잘 웃고 누구와든 잘 어울렸으며 다른 사람 흉보는 것을 유난히 싫어했다. 강은 책상에 바짝 엎드린 채 노트 마지막 장에 시(詩)를 쓰곤 했는데 글자가 크고 자간이 넓어 어딘가 엉성하고 볼품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글자 각각의 획만은 더할 나위 없이 반듯했다. 선배들은 강의 시를 두고 인간적이고 따뜻하지만 도무지 시 같지는 않다고 평하곤 했다. 그러면 강은 잠시 시무룩해 있다가 빈 종이 위에 새로운 글자들을 써내려갔다. 내 눈에 그것은 틀림없이 시였다. "강에게 전화해볼래?" 고심하던 오가 내게 번호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그런데 네가 기대하는 거랑 반응이 다를 수도 있어."

내 기대는 대단치 않았으므로 나는 오의 말을 흘려들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강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 나는 들뜬 목소리로 정말 오랜만이지 하고 외쳤다. 강은 예전처럼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나를 반기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강은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침묵했다.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 인간적인 따뜻함이라곤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목소리로, 강이 내게 물었다. "누가 내 번호 알려줬어? 왜 전화한 건데?" 왜냐니. 이 순도 높은 그리움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난감함과 함께 조금씩 불쾌감이 솟기 시작했다. "내가 괜히 전화했나 보다." 강은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마음이 한껏 상한 채 전화를 끊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기는 모두에게 최악이었으므로 딱히 억울할 게 없었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시시콜콜한 즐거움을 찾아냈고 나 또한 그랬다. 내겐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이 다채로운 색과 열기를 내뿜는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강에게는 아니었던 걸까. "예전에 우리 동기 하나가 다단계에 빠져 곤욕을 치렀잖아. 휩쓸린 사람도 있었고." 오는 그 동기 때문에 강의 경계심이 유난해진 것 같다며 혀를 찼다. "그러니 보고 싶단 말도 곧이곧대로 들리지가 않는 거야." 알 것도 같았다. 나 역시 순도 높은 그리움의 세계보다 순도 높은 불신의 세계 속에 살고 있으니까. 타인을 환대할 수도, 스스로 환대받을 수도 없는 세계를 떠올리자 서럽고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책상에 바짝 엎드린 강은 이제 무엇을 쓰고 있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이제 시는 아닐 것만 같았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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