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 눈썰매장의 특별한 하루···장애인을 위한 ‘전용 썰매장’[현장에서]
“눈썰매장이나 워터파크 같은 곳은 장애인들이 배려받기가 특히 어려워요. 이렇게 장애인들만 이용할 수 있는 썰매장에 오니까 그래도 마음 편하게 놀 수 있네요.”
지난 1일 서울 노원구 주민 이민희씨(40)는 지적장애가 있는 16세 아들을 데리고 서울과학기술대 종합운동장에 마련된 ‘노원 눈썰매장’을 찾았다. 노원구가 관내 장애인들을 위해 눈썰매장을 개방한 날이었다.
노원 눈썰매장은 지난달 31일 한 달간의 운영을 마치고 폐장했다. 노원구는 눈썰매장을 철거하기에 앞서 장애인들을 이날 하루 초청하기로 했다. 장애인들도 눈썰매와 빙어잡이 등 겨울철에만 할 수 있는 야외활동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날 눈썰매장을 찾은 장애인 주민들은 모처럼 즐기는 야외활동에 상기된 모습이었다. 장애인 돌봄기관 종사자들과 보호자들은 겨울철 야외 놀이를 즐기게 해주고 싶어도 쉽게 나설 수 없었던 어려움을 떠올리며 눈썰매장 이용에 만족했다.
이씨는 “아들이 겨울에 썰매타는 걸 좋아해 이 눈썰매장에도 3주 전 왔었지만 그 때는 (아들이) 썰매를 잘 타지 못했고, 화장실 이용도 쉽지 않았다”며 “빙어낚시나 전통놀이 체험을 할 때도 아들이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인데 다른 사람들 눈치가 보여 빨리 비켜줘야 했다”고 했다. 이어 “오늘은 썰매장 내 동선이 여유있게 배치되고 너무 붐비지도 않아서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연차를 내고 다운증후군이 있는 아들과 썰매장을 찾은 이순형씨(60)도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행동이 좀 느려서 (비장애인) 아이들과 있으면 치이고 넘어질까 걱정이 된다”며 “장애인 가족 초청이 있을 때마다 가급적 참여하려고 한다”고 했다.
지적장애인 이희정씨(49)는 장애인 보호작업장 식구들과 눈썰매장을 찾았다. 어릴 적부터 노원구에 살았다는 이씨는 10세 무렵 논밭에서 썰매를 타던 것이 마지막 눈썰매의 기억이다. 이날 오랜만에 썰매를 즐긴 이씨는 “썰매를 타고 내려오니까 마음이 편하고, 시원하고 재밌다”며 “내년에도 또 오고 싶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들은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는 반가움도 이날 만끽했다. 주로 복지관이나 보호시설 등 정해진 곳에서만 머무르다 보니 다른 지역에 있는 지인들을 만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날 눈썰매장에는 노원구 내 각 지역과 기관에서 450여명이 모였다. 여기저기서 반가움 가득한 인사소리가 들려왔다.
이순형씨의 아들 박장호씨(25)는 다른 복지관에서 지내는 친구를 이날 몇 년 만에 만났다. 반가움에 친구를 얼싸안고 춤을 췄다. 박씨는 “친구를 만난 게 제일 재밌다”고 했다.
지적장애인 임지은씨(36)도 예전 기관에서 알던 사회복지사를 이날 오랜만에 만나 함께 빙어잡이를 했다. 임씨는 “빙어를 두 마리 잡고, 선생님도 만나서 좋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같은 장소에서 ‘노원 워터파크’가 열렸다. 노원구는 워터파크에도 날짜를 하루 지정해 장애인 가족들을 초대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도 물놀이를 즐길 수 있게 리프트 시설 등이 마련된 바 있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장애인분들도 겨울철 눈썰매의 즐거움을 함께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초청했다”며 “장애인도 일상생활을 불편함 없이 누리는 장애인 친화도시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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