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프로, '너무 이른' 혁신?…콘텐츠 부족, 디지털 중독 위험까지
[편집자주] 애플의 새로운 헤드셋 기기 '비전프로'가 2일(현지시간) 미국에서 공식 출시됐다. 과거 구글이 실험했던 '구글 글래스', 메타가 상용화 한 '퀘스트3'에 이어 삼성전자도 MR(혼합현실) 기기를 준비하면서 현실과 디지털 세상의 소통 방식을 재정의하는 빅테크의 '공간컴퓨팅 기기' 경쟁이 뜨거워지는 흐름이다. PC와 스마트폰에 이어 디지털 디바이스 혁신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 공간컴퓨팅 혁명의 현 주소와 가능성을 짚어본다.
그러나 당분간 비전프로에서 즐길 수 있는 디지털 콘텐츠는 크게 제한적일 전망이다. 당초 애플은 100만개의 애플리케이션(앱)을 비전프로 맞춤형으로 제공할 것이라 자신했지만, 실제 NBA를 포함해 600개의 앱만 준비됐기 때문이다.
팀 쿡 CEO는 "개발자들의 창의성은 놀랍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덧붙였지만, 개발자들은 여전히 비전프로 전용 앱의 제작을 주저하는 표정이다. PC와 스마트폰에 이어 비전프로를 새로운 컴퓨팅 디바이스의 표준으로 만들겠다는 애플의 야심은 킬러 콘텐츠의 부재로 초반부터 암초에 부닥친 모습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구글의 유튜브는 "애플 비전 프로용 새로운 앱을 출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세계 1위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 글로벌 최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인 넷플릭스마저 '비전 프로를 위한 앱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비전프로가 제공하는 공간컴퓨팅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최우선 분야가 영화·드라마·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였던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악재다. 메타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대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비전프로 전용 앱을 출시하지 않기로 했다.
이들 빅테크의 비전프로용 앱 출시 거부는 경쟁사인 애플에 득이 될 일은 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애플 생태계의 심화를 초래할 수 있는 비전프로의 흥행을 견제해야 하고, 더욱이 구글은 삼성과의 협업을 통해 MR(혼합현실 기기)을 개발 중이다. 메타는 '오큘러스'와 '퀘스트3'로 먼저 헤드셋 기기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만큼 미래의 경쟁자를 도울 이유가 전혀 없다는 분석이다.
높은 앱 개발 난이도 역시 개발자들에게는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팀 쿡 CEO는 1일 애플의 실적발표에서 "비전프로에는 엄청난 양의 기술이 담겨있다"면서 "손 추적과 공간 매핑 등 모든 것이 AI(인공지능)에 의해 구동된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비전프로의 고난도 조작 방식을 모두 만족하는 앱을 만들기까지 현실적으로 개발자들에게 난관이 많다는 게 외신들의 평가다.
애플의 제한적인 초기 생산량도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다. 비전프로의 사전예약 판매량은 열흘 만에 20만대를 넘어선 것으로 전해졌지만, 생산 지연으로 수많은 예약자가 실제 제품을 손에 쥐기까지 1개월 넘도록 소요될 전망이다. 앞서 시장분석기관 트렌드포스는 올해 비전프로 출하량이 60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베스트셀러'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물량이다.
일각에선 비전프로의 흥행으로 공간컴퓨팅이 대중화한다면 '디지털 과몰입'이라는 새로운 부작용이 대두될 것으로 예상했다. ABC뉴스는 "사람들이 헤드셋이나 고글을 통해 보는 삶이 더 흥미롭다고 믿기 시작한다면, 또 다른 기술의 불안한 측면을 드러낼 수 있다"며 "이는 아이폰 출시 이후 발생한 고질적인 화면 중독을 더욱 악화시키고, 디지털 의존성의 심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변휘 기자 hynew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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