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보수 스스로 놓은 덫, 우파 포퓰리즘의 출현
이재성ㅣ논설위원
포퓰리즘처럼 혼란스럽고 자의적으로 남용되는 정치 용어도 드물 것이다. 19세기 미국 인민당(People’s Party) 당원들이 반엘리트주의자라는 의미에서 스스로 포퓰리스트(인민주의자 또는 대중주의자)라고 부른 데서 비롯한 포퓰리즘은 100년이 넘는 역사만큼이나 다채로운 변천을 거쳐 이제 미국에서조차 인기영합주의라는 경멸적인 의미로 통용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보수가 진보를 비난할 때 요긴하게 쓰였다. 진보의 복지강화론을 비판하면서 ‘재정에 대한 고려 없이’ 퍼주기만 하려는 정치적 경향을 꾸짖는 ‘우국충정’의 언어였다. 14년 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조례 철회를 요구하면서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울부짖었던 장면이 역사에 남았다. 그러나 오 시장의 사퇴와 무상급식 전면 도입 이후에도 나라는 망하지 않았고, 이와 무관하게 경제는 더 발전했지만, 진보를 향한 보수의 포퓰리즘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이어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애용하는 맥락도 그 역사적 자장 안에 있다. 그에 따르면 코로나 극복을 위한 방역 예산이나 안전한 에너지 확보를 위한 탈원전, 식량안보와 농가의 안정적 재생산을 위한 양곡관리법이 모두 포퓰리즘이다. 하지만 본인이 추진하는 부자감세는 모두 민생이다. 내가 하면 민생이고 남이 하면 포퓰리즘, ‘내민남포’다.
역설적으로 윤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기여한 게 하나 있다면, 진보와 보수가 합의할 수 있는 포퓰리즘에 대한 정의의 교집합을 확인하게 한 것이다. ‘재정에 대한 고려’가 그것이다. 보수언론조차 윤석열 정부의 총선용 감세를 소극적이나마 비판하는 이유는 최악의 세수 펑크에도 감세방안만 늘어놓을 뿐 재정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진보와 보수 모두로부터 비판받는 우파 포퓰리즘의 창시자로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좌파 포퓰리즘이 서민에게 돈을 써서 퍼주는 것이라면, 우파 포퓰리즘은 부자에게 세금을 줄여줘서 퍼주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공리주의 관점으로 보면 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전자가 더 정의롭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좌파 포퓰리즘은 빈부격차를 줄였다.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이나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정권이 그랬다. 흔히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경제가 망한 게 포퓰리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아르헨티나는 페론이 사망한 뒤 우파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면서 경제가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고, 베네수엘라의 쇠락은 미국의 경제 제재와 유가 폭락이 더 큰 원인이었다. 두 나라의 포퓰리즘이 비판받는 지점은 산업을 키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 점에서는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깎은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재정에 대한 고려가 포퓰리즘 여부를 가르는 시금석이긴 하지만, 그 기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황당 포퓰리즘이라고 놀림받았던 허경영씨의 출산 공약이 몇몇 지자체들에서 현실화하기 시작한 것이 좋은 예다. 기본소득이 우리 사회의 과도한 경쟁 압력을 낮추고, 좀 더 여유로운 환경에서 창의적인 산업과 문화를 꽃피울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선 좌파 포퓰리즘이 실행된 적이 없다. 무상급식조차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비난받는 보수 헤게모니 국가에서 좌파 포퓰리즘이 가능했을 리 없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오히려 신자유주의라는 비판을 받았고, ‘강부자 정권’이란 별명을 얻었던 이명박 정부 초기를 제외하면, 박근혜·문재인 정부를 통틀어 증세가 진행됐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 일변도 정책이 재앙적인 이유는 증세의 ㅈ 자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상식적인 보수라면 내심 당황스러울 것이다.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출현한 우파 포퓰리즘이 실은 보수언론과 정당이 제조해서 판매한 세금폭탄론의 자식이어서다. 종부세를 비롯한 세금을 죄악시해서 진보를 비난할 때는 잘 써먹었는데, 감세가 경제를 살린다고 진심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윤석열이라는 신자유주의 근본주의자를 통해 우파 포퓰리즘의 탄생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포퓰리즘이라는 형용모순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처음 알게 됐다. 재정을 망가뜨려 경제를 파괴하고 빈부격차까지 키우는 우파 포퓰리즘이야말로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보수가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가 ‘망국’ 아니었던가.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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