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외교차관, 비공개 ‘깜짝’ 방한…양국 관계 관리 ‘첫 발’[종합]

2024. 2. 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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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출범 첫 러 당국자 방한…안보실·외교 당국자 등 만나
한러 북핵수석대표 협의 개최…“북핵 문제 소통, 양국 이익”
푸틴 방북·북러 협력 등 민감한 시기 주목…한러 관계 중시
러 “尹 발언 편향적” 논평에 양국 충돌 ‘돌발상황’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교부 아시아태평양차관이 비공개로 방한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러시아 당국자가 공식 방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전쟁·북러 밀착협력으로 냉랭했던 한러 관계에서 양측이 관계 관리에 대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부는 4일 루덴코 차관의 방한을 공식 발표했다. 루덴코 차관은 지난 2일 김홍균 외교부 1차관과 정병원 차관보와 만났고, 이어 김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한러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개최했다.

정 차관보와 루덴코 차관은 양국간 현안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정세에 대해 협의했다. 외교부는 “우리측은 특히 러북(북러) 군사협력에 대한 엄중한 입장을 전달하고, 러측의 책임있는 행동을 촉구했고 러시아 내 우리 국민과 기업들의 정당한 권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러측의 협조를 당부했다”고 밝혔다.

한러 북핵수석대표 협의에서 김 본부장은 한반도와 유럽의 안보를 위협하는 러북 군사협력에 대한 우리 정부의 엄중한 입장을 전달하고, 러시아가 이를 즉각 중단하는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상 제반 의무를 철저히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외교부는 또한 “한러 양측은 북핵 문제 관련 소통을 지속하는 것이 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전했다. 이날 면담과 협의는 양국 간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가 집중됐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지난해 9월 방한 연기 후…북러 고위급 교류 속 전격 방한 성사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Georgy Zinoviev) 주한러시아 대사가 22일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에서 코리아헤럴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루덴코 차관의 이번 방한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한러 외교부 장관이 다자회의를 계기로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은 있지만, 러시아의 당국자가 공식 방한한 것은 윤 정부 출범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6월 주러시아대사였던 장호진 당시 외교부 1차관이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티토프 러시아 외교부 제1차관과 루덴코 차관을 만난 적 있다. 장 차관은 지난해 12월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됐다.

루덴코 차관의 방한은 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 이후 한 차례 추진됐었으나 연기된 바 있다. 이번 방한이 지난 1월4일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신임 주한 러시아 대사가 부임한 직후 이뤄지면서 신임 대사에 힘을 싣고 한러 관계 관리에 대한 의지와 성의를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지노비예프 신임 대사는 한국과 북한, 중국, 몽골을 담당하는 제1아주국장을 역임한 ‘아시아통’으로, 균형잡힌 시각에 합리적인 스타일의 외교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노비예프 대사에 “러시아와 한국의 협력이 양국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파트너십 궤도로 복귀할지는 한국에 달려 있다”며 관계 유지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었다.

특히 북러 간 고위급 교류가 활발한 민감한 시기에 방한이 이뤄진 점도 주목된다.

루덴코 차관은 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 측이 원한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방러 관련)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었다. 당시 추진했던 루덴코 차관의 방한이 연기된 이후 10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의 방북, 지난달 최선희 북한 외무상의 방러 등 북러는 고위급 교류를 이어왔다. 오는 13일에는 북한 대표단이 러시아를 방문해 연방의회 하원(국가두마)을 찾을 계획이고, 푸틴 대통령의 방북도 북러 간 논의되고 있다.

루덴코 차관은 이번 방한에서 지난해 북러 보스토치니 정상회담 결과를 공유하고, 최근 북러 간 고위급 교류 등에 대해 설명했을 것으로 보인다.

“尹 발언 편향적” 러 외무 대변인 발언에 양국 충돌도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57차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다만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편향적”이라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의 논평으로 한러 양국이 충돌하는 돌발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정 차관보는 루덴코 차관과의 회담 다음날인 3일 오후 지노비예프 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지난 1일 “(한국의) 북한에 대한 공격적인 계획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과 한국, 일본을 포함한 그 동맹국들의 뻔뻔스러운 정책으로 한반도와 그 주변에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그 발언은) 특히 혐오스럽다”고 말한 것에 엄중 항의하기 위해서다.

앞서 윤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제57차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북한 정권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 선제 사용을 법제화한 비이성적 집단”이라며 “오로지 세습 전체주의 정권 유지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민족조차 부인하는 반민족·반통일적 역사에 역행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 차관보는 “러시아측이 진실을 외면한 채 무조건적으로 북한을 감싸면서 일국 정상의 발언을 심히 무례한 언어로 비난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우며, 한러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별도의 입장문을 내고 “자하로바 대변인의 발언은 일국의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으로는 수준 이하로 무례하고 무지하며 편향돼 있다”며 “이러한 발언은 북한의 위협적인 수사와 지속적인 무력도발이 한반도와 역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명백하고도 객관적인 현실을 도외시한 것으로써, 국제사회의 규범을 성실하게 준수하는 국가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혐오스러운 궤변”이라고 지적했다.

한러 양국이 관계 관리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북핵 문제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전향적인 태도를 촉구하는 가운데 러시아의 상대국 정상에 대한 외교결례적인 발언은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엄중하게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루덴코 차관은 방한 기간 국가안보실 고위관계자와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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