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중대재해법 문제 핵심은 ‘유예’ 아닌 ‘개정’이야
모호한 규정들도 구체화해야”
(시사저널=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여야가 최근 50인 미만 기업들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놓고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핵심은 시행 유예가 아니라 근본적인 법 개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법이 지금 내용 그대로 실시될 경우 적용 시점 여부를 떠나 실효성도 떨어지고 현장에서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산업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도록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2년 1월27일 도입됐다. 처음엔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50인 미만, 5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선 2년간 유예기간을 뒀다.
'중대재해법 유예' 합의 못 한 여야 책임 공방
정부·여당의 경우 50인 미만 기업들에해당 법에 대해 준비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더 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유예기간을 이미 2년 뒀는데 추가로 둔다는 것이 해결책이 되겠냐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재계 및 법조계에선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의 차이를 고려했을 때 단순히 법 적용을 미루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법 자체를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고 입 모아 말한다. 법의 내용이 그대로라면 언제 적용되든 결국 현장에선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우려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현실적으로 의무 자체를 대기업과 차등을 둬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현재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조치들에 대해 대기업들도 다 지키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들에도 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법무법인 세종의 중대재해대응센터장을 맡고 있는 노동법 전문가 김동욱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요구하는 것은 결국 돈 들여서 조직을 만들고, 조직이 문서를 만들어 보고하게 하는 것이 핵심인데 만들 문서가 너무 많고 보고할 것들도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하고 이를 지키면 면책해야 현실적으로 사고가 줄지, 대기업들도 하기 힘든 수준의 의무를 그대로 규정하면 의무 조치에 대한 의지 자체를 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임이자 의원은 "내가 직접 현장을 가서 보니 사장님이 직접 생산라인에서 일도 하고 경영활동도 하고 영업도 직접 하는데 50인 미만 기업을 대기업하고 같은 잣대로 보면 곤란하다"며 "그런 기업들은 대표이사가 구속되면 모든 것들이 올 스톱되기 때문에 처벌이 능사라고 접근하면 안 된다"고 전했다.
지난해 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1053개 기업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이행 실태를 조사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사에 따르면, 법 의무 준수가 어려운 이유로 '전문인력이 없어서(41%)' '의무 내용이 너무 많아서(23%)'가 가장 많이 꼽혔다. 소규모 기업은 안전관리자 등을 선임할 의무가 없다. 인건비 부담 및 인력난 등으로 현실적으로 채용할 수도 없어 사업주가 직접 업무를 챙겨야 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컨설팅 지원 등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법 개정 없는 지원만으론 리스크가 계속 이어질 우려가 크다는 분석이 있다. 50인 이상 사업장들도 대형 로펌에서 직접 컨설팅을 받아도 의무 준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마저도 몇몇 대기업을 제외한 영세한 기업들은 노무사들에게 컨설팅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50인 미만 기업들의 경우 어려움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전승태 경총 산업안전팀장은 "산업안전보건법도 50인 미만 기업들에 대해선 의무 차등을 두는데 중대재해처벌법은 인력 배치 및 전담조직 부분을 제외하면 50인 미만 기업들이 지켜야 할 사항들도 거의 다른 게 없다"며 "결론적으로 컨설팅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받는다고 해서 의무사항을 다 준수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다 로펌들만 배 불릴라"
50인 이상 기업들에 적용할 때도 지적이 나왔던 법의 모호성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는 특히 여야 합의 후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전승태 팀장은 "산업안전보건법은 대체로 명확한데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령 문구 말고는 모호하고 이마저도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지 불명확하다"며 "'필요한 예산'을 집행하라고 돼있는데 얼마만큼 해야 한다는 것이 없고, '충실하게 업무를 수행했는지에 대해 평가 기준을 마련하라'고 했는데 '충실한 업무 수행'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도 규정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시행령에는 용역 위탁 시 업체의 산재 예방 능력이 있는지 평가해 도급을 주라고 돼있는데 평가를 어느 수준으로 기준을 잡고 어느 수준 이상일 때 계약하는지도 없고, '급박한 위험' 시 대피 등을 하라고 하는데 이와 관련해서도 구체적 기준이 없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시행령에 규정하고 있는 의무를 실시했다고 해도 사고가 터지면 처벌받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김동욱 변호사는 "시행령 4조 3호를 보면 반기마다 한 번씩 위험성 유해 요인을 평가하고 개선하라고 돼있다"며 "이럴 경우 사업주가 A라는 기계에 협착 위험이 있다는 걸 알았는데도 개선을 안 해서 사고가 나면 처벌하는 것이 당연한데, 인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가능성을 못 잡아낸 경우에도 사람이 사망했으니 제대로 안 한 것이라고 간주하고 처벌하는 것이 현재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시행령에서 규정한 대로 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결국 도입 당시부터 계속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던 법 내용 및 집행과 관련해 불확실성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소규모 사업장들의 경우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유일호 대한상공회의소 고용노동정책팀장은 "아직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아 심각성 인지가 덜 되고 있지만 실제로 우려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수습이 늦어질 수 있다"며 "처벌이 아닌 영국처럼 경제적 제재 등으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전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오는 4월말까지 모든 50인 미만 기업들에 대해 산업안전 대진단을 집중 추진하기로 한 바 있다. 안전보건 경영방침·목표, 인력·예산, 위험성 평가, 근로자 참여, 안전보건관리체계 점검·평가 등 총 10개 핵심 항목에 대해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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