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얼굴을 다시 갈아 끼운다"…안재홍, 디테일의 마법 (LTNS)
[Dispatch=정태윤기자] '마스크걸' 주오남의 "아이시떼루!". 김의성의 "드럽고 좋더라"는 감상에 십분 공감했다. 추남 캐릭터에 감탄하게 한 건, 안재홍의 힘이었다.
19금 소재도 마찬가지. 외설이 아닌, 현실만 남았다. 안재홍이 하면 불편하지 않다. 옆집 문을 열면 있을 것 같은, 어느 가정의 한 남자였다.
"주오남은 듣도보도 못한 캐릭터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했어요. 이번엔 어떤 한 가정의 거실을 보는 듯한 생생함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이하 안재홍)
주오남은 국내 콘텐츠에서 보여준 적 없는 얼굴이었다. 사무엘 역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모습을 그려냈다. 모두 그의 계획대로 되고 있었다.
작품마다 얼굴을 갈아 끼우는, 안재홍의 연기 비결은 무엇일까.
◆ LTNS | 리얼하게
우진(이솜 분)과 사무엘(안재홍 분)은 짠한 현실에 관계마저 소원해진 부부다. 돈을 벌기 위해 불륜 커플들의 뒤를 쫓는다.
소재부터 새롭다. 아니, 파격적이다. 제목부터 'LTNS'(극본·연출 임대형, 전고운). '롱 타임 노 섹스'(Long Time No Sex)의 약자다.
대사 수위도 남다르다. 현실 부부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부부관계에 대한 진지한 대화도 거침없이 등장한다.
리얼보다 더 리얼하게 연기해야 했다. 목표는 하나였다. 그 어떤 부부가 봐도, '이건 우리 이야기'라고 느끼게 하는 것.
연인끼리의 대화와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감정이었다. 안재홍은 대본을 보고 "미지의 세계 같은 느낌이었다"고 떠올렸다.
"부부 연기의 특징은, 말 속에 칼을 쥐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웃음) '이건 칼싸움이다' 생각하고 임했어요. 그 긴장감이 굉장하더군요."
공격이 순식간에 오가는 펜싱 경기 같았다. 뉘앙스, 감정의 폭, 허를 찌르는 대사들이 오갈 때 어떻게 해야 아찔한 매운맛을 전달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수많은 부부가 볼 텐데, 그들에게 리얼함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깔깔대며 웃다가도 어느 순간 훅, '내 얘기 같은데?' 할 수 있게요."
◆ 사무엘 | 다채롭게
주오남 다음은 어떤 캐릭터일까. 전작을 넘어설 수 있을까. 주변의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안재홍은 부담 없이 임했다.
"두려움은 없었어요. 배우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났습니다. 이번 캐릭터가 정말 다채로운 인물이거든요."
사무엘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퇴사했다. 스타트업에 도전했다 말아먹고, 택시 운전사로 생업을 이어간다.
표면적으로는 다정한 남편이다. 아내의 셔츠를 다림질하고, 깍두기를 담그고, 집안일을 세심하게 하는. 그 저변에는 어두움이 깔려있다.
실패에 대한 열등감, 예민함, 자괴감 등…. 빙산의 일각처럼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누르고 있는 상태. 초반에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 점점 감정을 분출한다.
일례로 4회, 사무엘은 가자미를 굽다가 "겨울엔 가스비 올리고 여름엔 전기세를 올리냐. 돈 없으면 얼어 죽든 더워 죽든 뒈지라는 건가"라며 신경질을 낸다.
이어지는 우진의 미묘한 표정 변화. 사무엘의 생경한 모습 툭툭 드러내며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매회 그런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안재홍은 "이 장면은 뭘 의미하는 걸까. 하나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며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게 그거였구나' 떠오르며 영감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작품은 블랙코미디 장르지만, 범죄, 추적, 액션 등 여러 가지가 들어있어요. 오묘하죠. 저도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다양한 결,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 안재홍 | 디테일하게
안재홍의 재재재발견이다. 누가 봐도 5년 차 부부 같았다. 겉모습은 다정하지만, 신혼의 생기를 잃은 모습을 생활감 있게 표현했다.
그의 디테일은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했다. 표면적으로는 불륜커플을 쫓는 것 같지만, 그 화살은 우진과 사무엘 부부에게 돌아온다.
둘 사이의 감정 변화를 미묘하고 세밀하게 드러냈다. 마침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땐, 촘촘히 쌓아 올린 감정선을 와르르 무너뜨리며 폭발시켰다.
그가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언급한 말은 '디테일'이었다.
"(구체적인) 전사가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디테일이 필요했죠. 청소에 진심인 모습을 전하기 위해 헤어밴드를 하고 양말을 신었어요. 화면에 나오진 않지만, 유튜브로 골든 리트리버를 보고요. 누군가 열등감을 자극하면 눈빛이 순간 바뀌죠. 세밀한 차이를 담아내려 노력했습니다."
디테일로 호기심을 자극할수록, 시청자들이 작품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믿었다. 치열한 고민 덕분일까. 주오남에 이어 2번째 은퇴설까지 돌고 있다.
"(은퇴설이) 돌아보니 굉장한 칭찬이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이 작품을 마지막인 것처럼 연기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다음은 '닭강정'(감독 이병헌)으로 더 강력하게 돌아오겠습니다. 노란 바지를 입고 나옵니다. 하하."
<사진제공=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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