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들이 서울 고척돔에 집결한다

김형준 SPOTV MLB 해설위원 2024. 2. 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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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개막전 3월 고척돔에서 열려…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맞대결 
고우석이 던지고 오타니가 타격하고 김하성이 수비하는 장면 연출될 수도

(시사저널=김형준 SPOTV MLB 해설위원)

1974년 11월2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고라쿠엔 구장이 들썩들썩했다. 미국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구단의 행크 애런과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구단의 오 사다하루(왕정치)의 홈런 대결이 열린 것이다. 그해 715호를 날려 베이브 루스를 넘어선 애런(40)과 애런의 홈런 수에 무섭게 따라붙고 있었던 오(34)는 양국 야구의 자존심이었다. 그날의 승자는 애런이었다.

1950년 프로야구 설립 때부터 미국을 이기는 것이 목표였던 일본 야구는 미국과 꾸준히 교류했다. 1986년부터 2006년까지 열린 미·일 올스타전은 노모 히데오를 비롯한 일본 선수들에게 메이저리그 진출이라는 꿈을 심어줬다. 격년으로 열렸던 미·일 올스타전은 이후 8년 동안 중단됐다. 하지만 2014년 일본 국가대표팀과 미국 올스타팀의 대결로 부활했고, 두 차례 미국과의 대결은 일본 내에서 국가대표 야구팀의 위상과 인기를 크게 높여줬다.

반면 한국은 테드 윌리엄스(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가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투기 조종사로 39번 출격한 것과 스탠 뮤지얼(메이저리그 타격왕 7회)이 세인트루이스를 이끌고 1958년 방문해 친선경기를 한 것 말고는 미국 야구와 교류할 기회가 없었다. 미국 입장에서 공들여야 할 나라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메이저리그의 고민은 야구가 축구, 농구 등 다른 종목에 비해 크게 뒤져있는 세계화다. 그동안 메이저리그는 멕시코, 일본, 호주, 영국에서 정식 경기를 했다. 하지만 시즌 중 경기가 아닌, 관심이 최고조로 집중되는 개막전이 열린 곳은 일본과 호주뿐이었다.

오타니 쇼헤이 ⓒLA 다저스 SNS

역대 해외 개막전, 일본·호주 이어 세 번째

2000년 최초의 해외 개막전이 일본 도쿄돔에서 열렸다. 하지만 당시 개막전을 펼친 뉴욕 메츠와 시카고 컵스에는 일본 선수가 없었다. 2004년 두 번째 일본 개막전은 좀 달랐다. 뉴욕 양키스에는 요미우리 4번 타자 출신 마쓰이 히데키가 있었다. 2008년엔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보스턴과 함께 방문했고, 2012년에는 스즈키 이치로가 시애틀과 함께 도쿄돔에 등장했다. 이치로가 공식 은퇴 경기를 한 2019년 개막전까지, 일본 도쿄에서는 총 5번의 개막전이 열렸다.

2014년 호주 시드니의 크리켓 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전은 일본이 아닌 곳에서 열린 최초의 해외 개막전이었다. 당시 LA 다저스의 원투펀치는 클레이튼 커쇼와 잭 그레인키였지만, 그레인키가 호주 원정 불참을 선언하면서 3선발인 류현진이 2차전에 나섰다. 류현진은 호주 교민들의 뜨거운 응원 속에서 5이닝 무실점 승리를 따냈다.

하지만 오는 3월20일과 21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리는 메이저리그의 역대 7번째 해외 개막전은 지금까지의 일본, 호주 개막전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주목도가 높은 개막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일정이 발표될 때까지만 해도 서울 개막전은 김하성의 소속팀인 샌디에이고와 박찬호와 류현진이 뛰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다저스의 대결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사이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만장일치 MVP를 두 번이나 차지한 것을 비롯해 2023 WBC 대회 MVP까지 차지하면서 WBC의 권위를 크게 높이며 일본과 메이저리그를 넘어 야구의 아이콘이 된 오타니 쇼헤이(29)가 전무후무한 10년 7억 달러 계약으로 다저스에 입단한 것이다. 앤드루 프리드먼 사장이 오타니 입단식에서 "모든 일본 팬을 다저 블루로 만들고 싶다"고 한 다저스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메이저리그에서 1구도 던지지 않은 야마모토 요시노부(25)에게 투수 역사상 최대 규모에 해당되는 3억2500만 달러의 계약 선물을 안겨줬다. 다저스가 두 선수에게 투자한 11억 달러는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일본 최고의 선수와 최고의 투수가 다저스에 입단하면서 개막전 장소를 도쿄로 옮겨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내려진 결정이 바뀔 리 없었고, 오타니의 다저스 데뷔전이자 야마모토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이 될 서울 개막전의 호스트는 김하성이 됐다. 키움 히어로즈 출신인 김하성에게 고척돔은 친정집이나 다름없다.

도쿄돔이 4만5600석인 반면 고척돔의 수용 규모는 1만6000석이다 보니 엄청난 티켓 예약 전쟁이 펼쳐졌다. 1차전 티켓 예약은 단 8분 만에 매진됐다. 한 일본 방송국은 예매에 도전했다가 '광탈'하는 장면을 내보내기도 했다. 야구를 하고 보기에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았던 고척돔은 메이저리그 기준에 맞는 인조잔디와 시설 보강을 위해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다.

김하성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SNS

다저스-샌디에이고 한일 선수만 6명

서울 개막전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2회), 무키 베츠, 프레디 프리먼은 도합 4개의 리그 MVP를 가지고 있으며 야마모토(3회), 다르빗슈(2회), 오타니는 일본에서도 6번 리그 MVP에 올랐다. 샌디에이고에는 7억 달러의 몸값을 자랑하는 매니 마차도와 페르난도 타티스가 있다.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메이저리그 개막전은 아시아 야구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알려주는 경기이기도 하다. 일본은 다저스에 오타니와 야마모토, 샌디에이고에 다르빗슈와 마쓰이 유키 등 4명이 있고, 한국은 샌디에이고에 김하성과 고우석 2명이 있다. 샌디에이고는 이정후 영입을 시도했다가 샌프란시스코에 빼앗겼지만, 현재 FA 신분인 류현진과 최지만이 입단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오타니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가 되고 김하성이 골드글러브를 따낸 최초의 아시아 내야수가 되면서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아시아 선수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이번 겨울에는 이정후(샌프란시스코), 고우석(샌디에이고), 야마모토(다저스), 마쓰이(샌디에이고), 이마나가(시카고 컵스), 우와사와(탬파베이) 등 6명의 한일 선수가 대거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고우석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SNS

이번 개막전이 가장 반가운 선수는 금의환향하는 김하성과 함께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한국에서 치르게 된 고우석이다.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고우석은 적어도 데뷔전만큼은 익숙한 고척돔 마운드에서 치를 수 있게 됐다. 고우석은 개막 두 경기를 서울에서 치르면 미국으로 돌아가 처남인 이정후와의 맞대결 4경기가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예정되어 있다.

메이저리그의 서울 개막전은 허구연 KBO 총재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2006년 1회 WBC 4강 진출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2회 WBC 준우승으로 르네상스를 맞이했던 한국 야구는 이후 우물 안 개구리가 됐다. 일본 야구에 도전하는 프로 선수들과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사라졌고, 한일 슈퍼게임은 수익성을 이유로 더 이상 열리지 못했다. 그사이 한국 야구의 국제대회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그럴수록 더 많이 세계 야구와 부딪쳐야 한다는 게 허구연 총재의 생각이다.

이번 서울 개막전은 한국 야구팬들이 메이저리그의 수준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전망이다. 자국 리그의 수준은 자국 팬들의 수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야구팬들이 국제대회 경쟁력 없이 자국 리그 흥행에 만족한다면 한국 야구의 실력은 계속 퇴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최초의 메이저리그 개막전, 역사상 가장 큰 관심 속에 열리는 그 개막전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다시 한번 세계 야구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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