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해결된다”…29년만의 우승 LG 차명석의 한강 ‘싱크로드’[이헌재의 인생홈런]
프로야구 LG 트윈스 차명석 단장(55)은 ‘걷기 마니아’다. 2018년 10월 LG 단장직을 맡은 후 그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집에서 사무실이 있는 송파구 잠실야구장까지 종종 걸어서 출근한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족히 1시간이 넘게 걸린다.
컨디션이 좋거나 좀 더 걸어야겠다고 생각할 때는 동호대교를 찍고 야구장으로 오기도 한다. 이렇게 걸으면 걸음 수로는 2만 보, 시간으로는 2시간 30분이 훌쩍 넘는다. 생각할 게 정말 많은 날에는 좀 더 멀리 한남대교까지 다녀온다.
건강 관리에 무심하던 그는 LG 투수코치로 일하던 2013년 신장암 진단을 받았다. 시즌 중 병원에 입원해 콩팥 하나를 떼어내야 했다. 그는 “의사 선생님이 ‘암에 걸린 건 불행한 일이지만 다행히 다른 곳으로 전이는 되지 않았다. 너무 몸을 혹독하게 다뤄 병이 일찍 터진 것 같다. 어찌 보면 천우신조’라고 하셨다”고 했다.
이후 몸을 소중히 다루기 시작했다. 틈나는 대로 걷고, 시간이 될 때는 청계산 등을 올랐다.
단장 부임 후에도 걷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시간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오전 6시에 일어나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시즌 중 프로야구 경기는 대부분 야간에 열리기 때문에 오전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기도 하다.
단지 건강만 생각해 걷는 건 아니다. 그는 걸으면서 단장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한다. 영어로 제네럴 매니저(General Manager)라 불리는 단장은 선수단 및 전력 구성부터 마케팅과 홍보 등 야구단 살림까지 모두 도맡아 하는 자리다. 그는 “‘솔비투르 암불란도(solvitur ambulando)’라는 말이 있다.
‘걸으면 해결된다’라는 뜻의 라틴어다. 정말 걸으니까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일이 많았다”며 “옛날 현자(賢者)들도 많이 걸으면서 생각했다고 하더라. 내게 한강 산책로는 ‘실크로드’ 못지않은 ‘싱크로드(Think Road·생각하는 길)인 것 같다”며 웃었다.
지난해 LG는 정규시즌 1위에 이어 한국시리즈도 제패하며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1994년 통합 우승에 이어 29년 만에 거둔 감격적인 우승이었다. 1994년 LG 선수로 우승을 차지했던 차 단장은 “당시엔 후반기에 팔꿈치를 다쳐 등판하지 못했다. 다른 멤버들의 활약 속에 조용히 우승을 바라보기만 했다”며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5년간 단장으로 일하며 지금의 선수단을 만들었다. 내가 공들여 구성한 선수단이 거둔 우승이었기에 더욱 기뻤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 LG 선수단 전력은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두터워졌다. 뛰어난 선수들을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데려왔고, 팜 시스템을 통해 유망주 선수들을 여러 키워냈다. 이 같은 신구 조화 속에 LG는 2000년대 초반의 암흑기를 뒤로 하고 매해 우승을 노크하는 강팀이 됐다. 그 과정에서 LG가 실행한 여러 가지 여러 아이디어는 차 단장의 한강 산책길에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단장은 한자로 무리를 이끄는 사람이란 의미의 ‘단장(團長)’이다. 그런데 예전부터 LG 단장은 워낙 힘들어 장을 끊어내는 아픔을 겪는다는 뜻의 ‘단장(斷腸)’으로 쓰이곤 했다”며 “내가 생각하는 단장은 팀을 만들어 가는 아키텍트(건축가)다. 팀을 만들어 성과가 났을 때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꾸기 힘들다”고 했다.
특히 그가 단장에 부임한 후 LG는 5번의 정규시즌에서 4위→4위→3위→2위→1위를 했다. 그는 “29년 만의 우승도 좋았지만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해가 갈수록 더 좋은 순위를 기록한 게 더욱 뿌듯했다”고 말했다.
차 단장이 걷기와 함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독서다. 선수 은퇴 후 코치를 맡은 후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읽은 책이 2000권에 가까워지고 있다. 차 단장은 “막상 코치가 됐는데 사실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선수들에게 부끄러운 지도자가 되고 싶지 않아 책에서 길을 찾기로 했다. 1년에 100권 독서를 목표로 삼고 실천했다”고 했다.
코치 시절에도 그는 라커룸에는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가득했다. 코치 생활 사이사이 야구 해설위원으로 일할 때는 여유시간이 늘어난 만큼 더 많은 책을 읽었다. 단장이 된 요즘도 한 해 50~60권을 책을 읽는다. 그는 “단장이 된 후 독서 할 시간이 줄어든 게 아쉽다. 그래도 매일 오전에 걷기를 마친 후 최소 한시간~한 시간 반은 책을 읽으려고 한다. 올해는 더 많은 시간을 독서에 할애하고 싶다”고 했다.
코치 시절 초창기 그는 독서와 함께 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올해로 일기를 쓴 지 20년이 되어간다. 일기를 쓰는 게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책을 통해서 알게 됐다. 그는 “어떤 책을 읽다가 ‘일기를 쓰는 사람은 성공에 다가선 사람이고, 일기를 1년 이상 쓴 사람은 이미 성공한 사람이다’라는 문구를 본 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에게 일기는 하루의 복기이자 나날의 반성이다. 그는 “요즘도 하루하루를 반성하는 마음으로 일기를 쓴다. 인기 팀인 LG 단장으로서 성적도 내야 하고, 팀도 잘 만들어야 하고, 팬들께는 만족스런 야구를 보여드려야 한다”며 “반성한다는 건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매일 반성하며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아니면 저렇게 해 볼까’ 하며 새로운 길을 찾는다”고 했다. 그는 “컴퓨터가 아니라 종이 일기장에 펜으로 꾹꾹 눌러서 일기를 쓴다”며 “일기와 독서는 일종의 공부다.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고도 했다.
2013년 신장암 투병 후엔 생활 습관도 크게 바꿨다. 이전까지 술을 좋아하고 즐겼던 그는 10년 넘게 절주를 하고 있다. 회식은 무조건 1차에서 끝내고, 술도 최대한 적게 마시려 노력한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술자리에 가긴 해도 다음 날에 방해될 정도의 양은 절대 마시지 않는다. 오늘 재미있게 놀면 내일이 힘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오늘이 무사히 지나가야 좋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청교도처럼 살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콜라도 딱 끊었다. 탄산음료를 지나칠 정도로 좋아했던 그는 선수 시절 목이 마르면 물 대신 콜라를 마셨다. 한창 더운 여름에는 하루에 캔 콜라를 15~20개를 마시는 게 일상이었다. 그는 “지금 돌이켜 보면 극심한 중독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큰 병이 난 데는 술의 영향도 있겠지만 과하게 마신 탄산음료의 영향이 더 컸던 것 같다. 수술 후 콜라는 딱 끊고 대신 커피를 하루에 한 잔 정도 마신다”고 했다.
단장 취임 후 작년까지 5년간 그는 하루도 휴가를 가지 못했다. 야구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도 구단 사무실에 나온다. 그는 “내가 생각해도 빵점자리 남편에, 빵점짜리 아빠”라며 “하지만 내게 야구는 정답을 찾아가는 끝없는 여정이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야구의 정답을 찾기 위해 일종의 ‘성지순례’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차 단장은 “언제든 단장직을 그만두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향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책에서만 읽은 40여 일 간의 순례가 어떤 것인지 직접 느껴보고 싶다. 다른 건 몰라도 걷는 것 하나만은 자신 있다”며 웃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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