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테러’, 강성 지지층에 기대온 결과물

송채경화 기자 2024. 2. 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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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죽여야 내가 산다’는 양극화 정치… “증오정치 멈추지 않으면 모방범죄 계속될 것”
연이어 정치인 대상 무차별 범죄가 일어나 정치권에선 ‘피습 포비아’가 퍼지고 있다. 사진은 2024년 1월2일 60대 남성에게 습격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1월25일 청소년에게 폭행당한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한겨레 자료

2024년 1월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0대 남성에게 피습을 당한 데 이어, 1월25일에는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십 대 청소년에게 가격당한 사건이 벌어지며 한국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범죄가 연이어 벌어지면서 정치권에선 ‘피습 포비아(공포증)’가 퍼지는 모양새다.

유튜버 문법의 알맹이는 기성 정치인에게서 나온 것

두 사건은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라는 점에서 같지만 범행 동기나 혐의자가 처한 환경 등에선 차이점을 보인다. 이 대표 피습범의 경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당원으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고 범행을 오랜 기간 준비해왔다는 점에서 목적이 분명한 ‘정치적 테러’에 가깝다. 배 의원 피습범은 아직 동기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점에서 ‘강한 정치적 의도’를 추정하긴 힘들어 보인다. 다만 혐의자가 15살 중학생이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병기 영남대 교수는 “중고등학교에서 민주주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극단적인 한국의 정치 현실이 걸러지지 않은 채 청소년에게 노출되다보니 이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결국 두 사건은 한국 정치가 극단적인 대립 구도를 형성한다는 점에 맞닿는다. 이런 범죄의 표면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음모론을 통해 증오를 퍼뜨리는 방식으로 돈을 버는 정치 유튜브 채널들이다. 내 편이 아니면 ‘악’으로 몰아붙이는 일부 배타적 팬덤 문화도 거론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들이 극단적 정치 성향을 표출하도록 한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는 정치권이라고 입을 모은다. 거대 양당이 정책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논리로 양극화 정치를 펼치다보니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 전체가 극혐의 대상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유튜버들이 활용하는 문법의 알맹이는 기성 정치인들이 하는 주장에서 나온 것”이라며 “정치권이 어떤 집단을 표적화해 ‘그 집단을 없애야 나라가 정상화된다’는 논법을 펼치니까 극단화된 신념을 가진 사람들 입장에서는 거기에 동조해서 그 집단을 상징하는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쉬워지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분석했다.

“정치권이 국민의 갈등 ‘조정’하는 게 아니라 ‘조장’”

증오의 씨앗을 퍼뜨린 정치인들은 이것이 유튜브를 통해 확산한 이후엔 또다시 이들의 극단적 의견에 동조하면서 지지층을 결집하는 행태를 반복해왔다. 거대 양당이 중도층을 견인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강성 지지층에 기대는 쉬운 선택을 해온 결과물이 ‘정치적 테러’인 셈이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정치 양극화 현상에 브레이크를 잡아주는 게 정치권의 역할인데, 정치권이 오히려 극단적 유튜브를 이용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혐오 발언을 쏟아낸다”며 “정치권이 국민의 갈등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조장’한다”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처럼 극화된 진영정치를 “정치적 내전 상태”라고 규정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죽어야 민주당이 살고, 이재명 대표를 죽여야 국민의힘이 산다는 진영정치가 한국 민주주의를 갉아먹는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을 제어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당장 정치권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여기에 신뢰를 보내는 사람은 드물다. 정치인이 증오를 양산하는 발언을 했을 경우 공천 심사에서 페널티를 주는 등 강한 징계를 하자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갈등을 증폭시키는 양당 체제에서 큰 효과를 발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당제가 안착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지난 몇십 년간 돌림노래처럼 반복됐을 뿐 제자리걸음이다. 2020년 총선에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정당지지율에 따라 의석수를 나눈 뒤,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이 그보다 적을 경우 절반을 배분하는 방식)는 거대 양당이 만든 위성정당으로 무력화됐고, 4년이 흐른 지금 이들은 또다시 선거를 앞두고 계산기를 두드리기에 바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예 한국의 권력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정치혐오를 해결할 수 없다”며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되 국방·외교·안보 등 외치를 맡고 다수당 대표가 행정을 맡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양당 간 합의 없이 무리하게 선거제도를 개편할 경우 위성정당 사태처럼 제도 자체를 무력화하거나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선거제 법안을 다시 바꿔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적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개헌이라는 큰 산을 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유권자를 만나야 하는데…

정치권이 길을 잃은 사이 모방범죄의 공포는 계속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나 배현진 의원처럼 직접적인 폭력이 가해지지는 않았더라도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예고성 글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리거나 협박 편지를 보내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경찰청이 정치인 신변보호 강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양당 대표에게 각각 10명의 경호인원을 붙이기로 했지만 이는 근본적 처방과는 거리가 있다. 무엇보다 정치인은 현장에서 유권자와 만나는 것이 중요한 업무다. 시민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정책으로 만들어 실현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임을 생각할 때 무작정 유권자와 떨어뜨리는 식의 방법은 오히려 시민과 정치의 거리를 더 벌어지게 한다.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엄정한 수사와 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 역시 단편적인 대책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4월10일 총선을 앞두고 수많은 예비후보가 한 명의 유권자라도 더 만나기 위해 현장으로 향하는 상황에서 경호의 틈을 노린 범죄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채진원 교수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매스컴을 타고 퍼져나가면서 범죄 혐의자에게 마치 독립운동가가 된 것 같은 자긍심을 심어주는 듯하다”며 “증오정치를 멈추지 않는 이상 모방범죄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한겨레> 영상센터 영상취재부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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