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 분쟁에도 원유 가격은 왜 내렸나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한국의 산업 및 경제에 미칠 영향도 폭넓게 살펴야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홍해를 둘러싸고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홍해는 세계 선박 이동의 12%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특히 컨테이너선 30% 이상이 이 지역을 통과하는 세계 해상물류의 핵심 지역이다. 예멘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후티 반군이 최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한 보복을 천명하면서 홍해를 운항하는 선박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진행하고 있다. 드론과 미사일을 이용한 공격으로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기 위해 홍해로 진입한 선박들이 타격을 입으면서 홍해를 운항하는 선박에 대한 보험료가 급상승했다.
보험료 상승과 피격 위험 증가에 따라 많은 선박이 홍해와 수에즈 운하 이용을 포기하고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으로 우회하면서 희망봉 통과 선박이 평년에 비해 200% 이상 증가했다. 홍해 대신 희망봉 노선을 이용함에 따라 물류비용 상승은 물론 운송기간 증가로 인해 겨우 한숨을 돌리고 있는 공급망이 다시 위태로워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급망 문제로 인한 비용 상승은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화는 미국의 원유 생산 증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사이에 위치한 홍해는 입지 조건으로 인해 세계 원유 운송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홍해와 수에즈 운하를 이용해 운송되는 원유의 양은 하루 550만 배럴에 이르고 있다. 호르무즈해협, 말라카해협과 더불어 세계 3대 원유 수송로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러한 홍해 지역의 분쟁으로 인해 원유 가격이 상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달리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1월31일 기준으로 두바이유 가격은 79.97달러를 기록했다. 12월13일 74달러까지 하락한 이후 후티 반군의 공격이 이어지면서 1월26일 82달러까지 상승했지만, 얼마 안 가 하락세로 전환했다. 사실 세계 원유시장은 2023년 12월부터 가격 하락세가 뚜렷했기 때문에 후티 반군의 공격이 아니었다면 더 큰 폭의 하락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이와 같은 원유 가격 안정세는 원유시장을 둘러싼 공급 구조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원유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미국의 대폭적인 생산량 증가였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하루 1324만 배럴을 생산하면서 역대 최고 생산량을 기록했다. 미국이 하루 1300만 배럴 이상을 생산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현재 세계 1위의 원유 생산국인 미국은 2024년에도 더 많은 원유를 생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는 1350만 배럴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1400만 배럴 생산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의 대폭적인 원유 증산에 따라 2023년 미국과 캐나다를 합한 원유와 가스 생산량은 중동 지역 생산량을 초과했다. 미국이 세계 원유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2023년 초반 미국의 원유 생산 전망은 어두웠다. 미국 원유 생산의 부활을 가져왔던 셰일의 쇠퇴가 본격화된다는 분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생산성이 양호한 셰일층의 생산이 끝나가면서 신규 개발 셰일 유정의 생산량이 감소했고, 시추비용도 상승함으로써 셰일의 원가경쟁력이 취약해질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원가 상승을 극복하기 위한 셰일 업계의 기술 향상 노력이 성과를 보이면서 생산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셰일 생산을 위해 설치하는 리그 한 곳에서 파고 들어가는 수평굴착 길이가 대폭적으로 늘어난 것이 핵심이었다. 2010년의 경우 수평굴착 한계는 약 1200m로 여겨졌는데, 2023년에는 3300m 이상으로 증가했다. 추가적인 생산을 위해 리그를 더 설치하지 않아도 됨으로써 비용 절감이 가능해진 것이다. 여기에 더해 굴착 과정에 대한 세밀한 조정이 일반화됨으로써 과거 19.5일 걸리던 유정 개발기간이 11.5일로 단축되면서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게 됐다. 미국 셰일 업계는 생산비용 감소를 위한 20가지 이상의 기술 개발 및 향상이 진행되고 있어 셰일 손익분기점을 종전의 배럴당 45달러에서 조만간 30달러 이하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대폭적인 원유 증산에 따라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곳은 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이 결성한 OPEC+다. 특히 OPEC를 주도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네옴시티 건설을 포함한 대규모 재원을 필요로 하는 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원유 가격의 하락은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OPEC+는 원유 가격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2023년 11월 사우디와 러시아가 주도해 하루 220만 배럴 규모의 감산을 시도했다. 하지만 OPEC+의 감산량보다 더 많은 원유를 미국 및 남미의 신흥 원유 생산국인 가이아나가 생산하면서 감산의 영향력을 상쇄시켰다.
2014년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산 셰일로 인한 가격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대폭적인 증산을 단행했다. 그 결과 65% 이상의 가격 하락을 유도하면서 미국 셰일 업계에 큰 타격을 주었고 원유시장의 주도권 역시 되찾아왔다. 당시 미국산 셰일이 배럴당 80달러 이상 돼야 손익을 맞출 수 있다는 점을 공략한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 셰일 업계의 기술 발전을 통한 원가 절감으로 인해 이러한 방법을 다시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감산은 힘든 상황이다.
갈수록 축소되는 OPEC 영향력
2023년 12월에는 OPEC 회원국이었던 아프리카의 앙골라가 탈퇴하면서 OPEC의 영향력을 더욱 위축시켰다. 인도네시아(2016년), 카타르(2019년), 에콰도르(2020년)에 이어 하루 110만 배럴을 생산하는 앙골라가 탈퇴하면서 세계 원유시장에서 OPEC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34%에서 27%로 감소했다.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OPEC의 힘이 빠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세계 최대 원유 매장국인 베네수엘라도 미국의 제재가 일부 완화되면서 세계시장에 복귀하고 있다. 올해 원유시장을 수급 관점에서 보자면 상승보다는 하락할 가능성이 더 크다. 여기에 더해 올해 말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더욱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향후 몇 년간 원유 가격은 약세를 이어갈 것이다.
중동과 러시아가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던 세계 원유시장은 미국과 남미의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석유는 매장량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원유 생산량은 감소하고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제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전기차로 대표되는 기후변화 대응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단순히 가격이 하락하면 좋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원유 가격의 하락이 우리 산업과 경제에 미칠 영향을 폭넓게 점검하고 적절한 변화와 대응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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