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습니다[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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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래스카 1212편, 비상사태입니다”
지난달 5일(현지 시간) 금요일 오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공항. 캘리포니아주 온타리오로 가는 알래스카항공 1282편은 주말을 앞두고 승무원과 탑승객 177명으로 만석에 가까웠다. 26열 왼쪽을 포함해 몇몇 좌석만 비어있었다. 기내는 조용했다. 좌석 등받이에는 스크린이 없었고 이륙을 위해 내부 조명은 어두워져 있었다. 1282편 여객기는 4시 52분 게이트를 떠나 5시가 조금 넘어 이륙했다.
10분 후, 비행기가 지상 약 4880미터 고도에 이르렀을 무렵 26열에서 ‘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비행기 옆면에 구멍이 뚫렸다. 벽으로 개조한 비상구 덮개가 뜯겨 나간 것이다. 당시 비행기는 시속 440마일(약 708km)로 운항 중이었다.
산소마스크가 승객들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한 승객이 “비행기 측면에 구멍이 났다”고 소리쳤고, 일부 승객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무원은 승객들에게 안전벨트를 매고 자리에 앉아있으라고 명령했다.
1282편 조종사는 항공 교통 관제소에 즉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비행기가 압력을 잃어 돌아가야 한다”고 전하고 회항을 결정했다. 이후 약 10분 동안 ‘죽음의 운항’이 이어졌다.
26열의 비상구 바로 옆 좌석 두 곳에는 승객이 없었지만, 인근에 앉아있던 10대 소년은 입고 있던 셔츠가 통째로 벗겨져 밖으로 빨려 나갔다. 27열에 앉아 있던 조시아 맥컬 군(12)은 자신이 놀라 떨어뜨린 휴대전화가 구멍 사이로 날아가는 것을 지켜봤다. 할머니가 캄보디아에 다녀와 선물한 연갈색 곰인형도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맥컬 군은 “1초 정도 고요했다가 얼어붙을 것 같이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어요”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히크먼 씨(44)는 원래 29석에 예약돼 있었다. 탑승 직전 함께 탈 어머니가 불편할까 봐 좌석을 업그레이드해 일등석 바로 뒤인 8번째 줄에 앉아있었다. 구멍에서 꽤 떨어진 자리였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비행기가 추락하면 좌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옆자리에 앉은 여성이 그에게 “손을 좀 잡아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히크먼 씨와 그의 어머니는 여성의 손을 꼭 잡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공포에 질린 승객들은 가족과 지인들을 찾았다. 니콜라스 호크 씨(33)는 “하얀 수증기나 구름 같은 것이 기내에 흘러 들어왔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스테파니 킹 씨도 “남자친구와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1282편은 인명 피해를 보지 않고 5시 27분 포틀랜드공항에 긴급 비상 착륙했다. 탑승객들에 따르면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뒤에도 기내는 한참 동안 조용했다. “잠시 자리에서 기다려 달라”는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오자 승객들은 그제야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 “여러분의 가족이 탔을 수도 있습니다”
미 연방항공청(FAA)은 다음날인 6일 1282편의 사고 기종인 ‘보잉 737 맥스9’의 운항을 전면 중단시키고 점검을 지시했다. 미국 내 171대의 737 맥스9이 4~8시간씩 점검받았다.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사고 원인을 찾기 위해 포틀랜드에 진상 조사단을 파견했다. 최우선 과제는 사라진 ‘비상구 덮개(도어 플러그)’를 찾는 것. 도어 플러그는 창문과 벽체로 이뤄진 일종의 덮개다. 더 많은 좌석을 넣기 위해 불필요한 비상구를 막는 데 쓰인다.
폭 66㎝, 높이 121.9㎝ 크기의 30㎏짜리 덮개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행기의 경로를 추적하고, 관련 지역 사람들에게 마당과 건물 옥상 등을 뒤져봐 달라고 요청해야 했다. 이틀 뒤, 과학 교사인 밥 사우어의 집 뒷마당에서 ‘문짝’을 발견했다.
NTSB는 도어 플러그에서 문을 비행기에 고정하는데 사용되는 볼트 4개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NTSB 관계자들은 볼트가 애초에 제대로 설치돼 있었는지를 파악 중이다. 737 맥스9의 도어 플러그는 볼트 4개와 12개의 고정용 부품으로 동체에 결합한다.
항공사들의 자체 조사 결과 미국 내 동일 기종에서 유사한 결함이 발견됐다. 미 유나이티드항공은 737 맥스9 79대 중 약 10대에서 도어 플러그의 볼트가 충분히 조여지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8일 발표했다. 알래스카항공도 65대 중 일부에서 비슷한 문제를 발견했다.
주말이 지나고 8일 뉴욕 증시에서 보잉 주가는 8% 넘게 하락했다. 미국 증시가 1월 내내 상승 랠리를 펼쳤지만, 보잉의 주가는 이후에도 하락세를 보였다.
여행객들이 737 맥스9 기종의 탑승을 피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항공사와 여행사에 비행기 기종과 좌석 배치를 묻는 전화가 이어졌다. 여행을 앞둔 이스트버그 씨(25)는 “제 좌석이 26열(덮개가 날아간)과 가깝다. 창가 자리라 더 걱정된다”고 전했다.
미 항공기 제작사 보잉의 데이브 칼훈 최고경영자(CEO)는 9일 미 시애틀 인근 737 공장에서 열린 직원 간담회에서 여객기 안전사고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는 손상된 비행기 사진을 떠올리며 “나도 자식이 있고 손자가 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일이 될 수 있으니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26일 검사 및 유지보수 절차를 거친 737 맥스9이 3주 만에 운항을 재개했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1282편 이후에도 일부 보잉 항공기가 말썽을 일으켰다. 17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탑승하려던 보잉 737 미국 공군기에서 산소 유출이 탐지되는 결함이 발견됐다. 20일에는 보잉 757 기종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미 항공사 델타항공 982편이 애틀랜타 하츠필드 잭슨 국제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중에 앞바퀴가 떨어져 나갔다. 당시 982편에는 170명 넘는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다.
미국 항공사 CEO들은 운행 지연 등 보잉 항공기 사고로 발생한 손실을 토로하면서 쓴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알래스카항공은 1282편 사고 여파로 2000억 원가량의 손실을 보았다고 밝혔다. 벤 미니쿠치 알래스카항공 CEO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좌절과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유나이티드항공은 보잉과의 계약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양사는 미국에서 737 맥스9 기종을 가장 많이 운용해온 주요 고객이다.
로버트 아이솜 아메리칸항공 CEO는 애널리스트들과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보잉 정말 정신 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우리가 성공하지 못하면 그들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일각에서는 보잉이 항공기 제조 비용을 줄이려고 과도하게 ‘아웃소싱’을 한 것이 결함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보잉은 10조 원이 넘는 비행기 개발비를 줄이기 위해 2000년대 중반부터 기체 주요 부분의 설계와 제작을 외부 업체에 맡겨왔다. 보잉이 최종 조립에 집중해 수익성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었다.
항공기 기체 부품 제조사인 ‘스피릿 에어로시스템’은 보잉의 핵심 공급사다. 2005년 보잉에서 분사돼 사모펀드사인 오넥스에 매각됐다. 1916년 보잉 창립 이후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품질 관리가 외부로 넘어간 것. 1282편의 추락한 덮개를 포함해 보잉 737 맥스9의 70%가량을 스피릿이 제작한다. 스피릿은 캔자스주 위치타 공장에서 알루미늄 동체 등을 제작해 워싱턴주 렌튼의 보잉 공장으로 보낸다.
보잉 737 맥스 같은 단일통로(Single-aisle) 항공기는 40만 개 이상의 부품으로 구성되는데, 배관작업(튜브)과 함께 날개와 꼬리 등을 볼트로 조여 조립한 뒤 내부를 장식한다. 현재 보잉은 매월 약 38대의 항공기를 생산 중이다. 내년엔 50대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외신들은 보잉의 압박과 스피릿의 과도한 업무 할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보잉의 결함 문제로 이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피릿의 전현직 직원들은 보잉이 생산 속도를 높이라고 무리하게 요구해 직원들이 과도한 업무에 허덕이고 있다”고 13일 전했다. 스피릿 직원들은 하루 2대 속도로 기체를 생산할 경우 한 달간 볼트와 패스너, 리벳 등을 조합해 채워야 하는 구멍이 1000만 개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코넬 비어드 국제기계항공노조 스피릿 위치타 공장 지부장은 “스피릿이 직원들에게 작업을 너무 재촉해 전 세계 곳곳에 문제가 있을 법한 비행기가 돌아다니고 있다”고 꼬집었다.
2018년, 2019년 추락 사고 이후에도 비슷한 지적이 있었지만, 보잉은 아웃소싱 관행을 크게 손보지 않았다. 737 맥스8 기종은 2018년 인도네시아, 2019년 에티오피아에서 운항 중 추락한 바 있다. 당시 탑승자 전원(총 346명)이 목숨을 잃었다. FAA는 2019년 3월 맥스8의 운행을 중단시켰다가 결함 보완 후 2020년 12월 운항을 재개했다. 737 맥스는 크기에 따라 7, 8, 9, 10(7이 가장 작음)으로 구분된다.
보잉과 스피릿은 지난해 4월과 8월에도 결함으로 737 맥스의 납품을 일시 중단했다. 4월에는 수직 꼬리날개를 동체와 연결하는 부품이 말썽을 일으켰고, 8월에는 기내 압력 유지 부품에서 의도치 않은 구멍이 발견됐다.
대형 사고와 각종 결함에 대한 화살이 부품 제조사에 날아오자 스피릿 CEO가 나섰다. 팻 샤나한 스피릿 CEO는 지난해 가을 한 인터뷰에서 “우리가 성공하지 못하면 그들도(보잉) 성공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비행기 품질 문제가 단순히 스피릿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 의도치 않았던 ‘737 맥스’ 개발
보잉은 비용과 생산 속도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비판을 수년간 받아왔다. 보잉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이 기종을 개발하면서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737 맥스’다.
2011년 초 보잉에 위기가 찾아왔다. 10년 넘게 보잉에서만 여객기를 받아온 아메리칸항공이 유럽연합의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에 신형 제트기 수백 대를 주문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에어버스는 2010년 단일통로형 항공기 A320의 연료 효율을 높인 업그레이드 버전 A320네오(neo)를 선보였는데, 아메리칸항공이 이 기종을 눈여겨본 것이다. 당시 항공사들의 여객기 선호도도 초대형에서 에어버스 A350, 보잉 787 같은 쌍발 광동체 여객기(통로와 엔진이 각각 2개인), A320 등의 단일통로형으로 바뀌는 시기였다. 가격이 비싸고 연료 소비가 큰 초대형 비행기의 효율성이 떨어져서다. 항공 수요에 따라 수익 변동성도 컸다. 손님을 가득 채우지 못하고 뜨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2008년 에어버스는 483대 비행기를 인도했지만, 보잉은 375대에 불과했다”며 “에어버스는 2011년 파리에어쇼에서 약 730대를 주문받았는데, 연료 효율성이 높은 신형 기종 A320네오가 인기를 끌었다”고 2019년 전했다.
에어버스에 주문량을 추월당한 보잉은 A320네오의 경쟁 모델인 737을 완전히 새로운 기종으로 바꾸려는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737을 빠르게 업그레이드(737 맥스)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혁신보다 수익성을 택한 셈이다. 한 전직 보잉 임원은 “보잉이 맥스를 제작하기로 한 이유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쉽고, 저렴하며, 항공사(고객)에는 연료 절감 효과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1년 아메리칸항공이 737 업그레이드버전 100대를 주문하기로 하면서 같은 해 8월 맥스 개발이 시작됐는데, 보잉은 에어버스를 따라잡기 위해 개발에 속도를 냈다.
보잉 직원들은 촉박한 일정에 압박이 심했다고 털어놨다. 보잉의 전직 직원들은 “엔지니어들이 평소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기술 도면과 설계를 제출해야 했다”고 NYT에 전했다. 배선 조립을 담당했던 한 엔지니어는 “몇 달 동안 개발자들이 엉성한 청사진을 전달했다”며 “배선 관련 사항은 개발 후반부에 정리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청사진에는 복잡한 지침들이 전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 파멸로 이끈 속도전
아이러니하게도 737 맥스 개발의 핵심은 전작인 737과 동일한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FAA 등으로부터 인증을 빠르게 받기 위해서였다. 이는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중요했다. 기존과 다른 모델로 인증을 받게 되면 조종사들이 추가로 훈련받아야 한다. 항공사들에는 제법 큰 비용이다.
보잉은 A320네오의 연료 효율성을 넘어서기 위해 (A320네오보다 연료 소모를 4% 낮추는 것이 목표) 737 맥스에 새 엔진을 장착했는데, 공기 역학이 달라지는 바람에 기체가 기울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보잉은 항공기의 기울기가 적당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기수를 조정하는 소프트웨어(MCAS·기동 특성 증대 시스템)를 추가했다. 하지만, 보잉은 이러한 변화를 조종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NYT는 “이 시스템은 백그라운드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보잉은 조종사에게 이 시스템에 관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규제 당국도 이에 동의했다. 조종사는 시뮬레이터로 훈련할 필요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맥스의 새로운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총 346명을 사망하게 만든 2018년, 2019년 추락 사고의 원인이 됐다. 데니스 뮬렌버그 당시 보잉 CEO는 소프트웨어 센서의 오작동이 737 맥스 추락 사고의 원인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뮬렌버그 CEO는 2019년 10월 물러났고(사실상 해고), 칼훈 현 최고경영자가 자리를 이어 받았다.
규제 기관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미 연방항공청(FAA)이 비행기 제조사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01년부터 보잉은 자체 안전 테스트를 더 많이 수행하기 위해 로비를 활발히 했고, FAA가 2005년부터 이를 허용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한 전직 보잉 고문은 이를 두고 “어린아이에게 과자 가게를 맡긴 것과 같다”고 평했다.
NYT에 따르면 보잉은 737 맥스 사고로 2019년 80억 달러(약 10조600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2021년에는 추락 사고와 관련해 미국 법무부와 25억 달러(약 3조3300억 원)의 벌금을 납부하는 데 동의했다.
● “아이디어는 달러로 측정된다”
보잉의 추락사고와 각종 결함은 속도와 비용 등을 우선시한 데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737 맥스의 실패는 속도와 비용, 무엇보다도 주주 가치에 중점을 둔 결과”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뮬렌버그가 2015년 CEO에 자리한 뒤 공급업체(스피릿 같은)에 가격 양보(마진 축소)를 요구하고 엔지니어에게 더 많은 부담을 안겼다. 더 많은 비행기를 생산하면서 인력을 7% 감축한 뮬렌버그의 지휘 아래 효율성 추구가 가속했다”고 꼬집었다. 보잉 전 엔지니어는 “회사의 끊임없는 비용 절감에 안전이 희생됐다”라고도 했다.
737 맥스의 연료 시스템 기술자는 아담 딕슨은 보잉에서 30년 근무했다가 2018년 11월 회사를 그만뒀다. 그가 “회사의 이윤과 맞닿아 있는 성능 목표에 도달하려면 안전을 희생해야 했다. 이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회사를 나왔다”고 했다.
전직 보잉 직원에 따르면 엔지니어의 설계 비용은 연례 성과 평가에 반영됐다. 한 관리자는 한 엔지니어의 연례 평가에서 “아이디어는 달러로 측정된다”고 말했다.
보잉은 이에 대해 강하게 부정했다. 보잉은 “비용을 우선시한다는 일각의 우려에 동의할 수 없다. 안전을 성과나 목표와 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보잉이 혁신보다 지나치게 주주 가치에 신경 썼다는 비판도 있었다. 보잉 경영진은 2010년부터 400억 달러(약 53조4000억 원) 이상을 자사주 매입에 쏟아 부었다. 블룸버그는 “이 전략으로 보잉은 월스트리트를 열광시키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에서 한동안 최고의 실적을 기록했지만, 불황과 새로운 경쟁 위협에 대한 대비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보잉은 추락사고와 결함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품질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기존의 경영 방식을 크게 바꾸진 않았다. 오히려 공급사에 책임을 떠넘겼다는 주장도 있었다.
스피릿의 전직 품질 검사관인 조슈아 딘은 보잉이 2018년, 2019년 사고 이후 공급사들에 결함을 줄일 것을 요구했고, 이는 품질 제고가 아닌 결함 축소 보고로 이어졌다고 폭로했다. 그는 “스피릿 직원들은 품질 관련 우려가 관리자에 전달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품질 검사관들은 문제를 많이 지적할 경우 보복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스피릿 노조는 다수의 결함을 발견한 검사관들이 계약직으로 바뀐 것에 대해 회사에 항의했다. 딘은 자신이 기체에 잘못 뚫린 구멍을 지적한 뒤 해고됐다고 주장했다.
● 추락만큼 무서웠던 팬데믹
2020년 말 737 맥스의 운항이 재개됐지만,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거치면서 보잉은 최근까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보잉은 한 분기에만 수천억 원의 손실을 보았다. 2020년부터 6개 분기 연속 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보잉은 (추락 사고에 따른) 737 맥스 운항 중단, 팬데믹 등 두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 약 390억 달러(약 51조9000억 원)의 순부채를 재무제표에 기록하고 있다”고 최근 전했다.
매출의 대부분을 보잉의 737에 의존해 온 스피릿(보잉 기체 납품사)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2019년 말 미국 내 4개 공장에서 1만59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던 스피릿은 팬데믹으로 수천 명을 해고했다.
리오프닝 이후 여객, 화물 등 항공 수요가 급증했지만, 이번에는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인재들이 아마존의 블루오리진이나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같은 돈 많은 우주탐사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WSJ은 “단순히 직원을 잃은 개념이 아니다. 스피릿은 수년간 쌓아온 전문성을 잃었다”며 “숙련된 정비사나 작업 품질을 검사할 수 있는 전문가도 부족했다”고 전했다.
이는 보잉도 마찬가지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737 맥스 추락사고 이후 3200명 이상의 엔지니어가 보잉을 떠나 아마존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보잉과 스피릿의 재정적 위기와 공급망 문제, 인력 부족 사태 등은 항공기 생산 지연으로 최근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일부 고객사들이 크게 반발했다.
저가 항공사인 라이언에어의 마이클 오리어리 CEO는 “머리 없는 닭처럼 (생각 없이) 뛰어다니고 있다”며 지난해 보잉 경영진을 비판했다. 블룸버그는 “같은 업계에 있으면 한 다리 건너 아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CEO 해임을 요구하는 경우는 드물다. 설사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어도 공개적으로 비난하진 않는다”며 보잉에 대한 비판이 이례적이라고 평했다.
● 737 맥스, 가장 성공적인 ‘실패작’으로 남을까
일각에서 737 맥스를 ‘실패작’으로까지 깎아내렸지만, 추락사고 이전까지만 해도 이 기종은 보잉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보잉이 처음 737 맥스를 내놓았을 때 주문이 5000대 넘게 들어왔었다. 이 기종의 가격이 약 1억 달러(약 1300억 원)부터 시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수익이 확보됐던 셈이다. 보잉이 2017년부터 현재까지 인도한 737 맥스는 1370대 수준이다.
최근 미중 관계가 개선할 여지를 보이면서 보잉은 지난달 중국남방항공에 737 맥스의 인도 재개를 준비하고 있었다. 2019년 추락사고 이후 4년 넘게 기다려온 인도였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지난달 737 맥스 기종에서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결함이 발생했다. WSJ은 “결함에 따른 추가 검사가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 없지만, 베이징에 의해 수년간 동결된 인도 시점에 불확실성을 더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향후 20년 동안 전 세계 항공기 인도량의 5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시장으로 꼽히는 곳이다.
보잉은 지난달 문짝이 떨어지는 결함은 2018, 2019년 추락사고에 비하면 굉장히 경미한 문제라고 판단할지 모른다. 일단 인명 피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보잉이 ‘문짝 이탈’ 결함을 추락사고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뢰가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브룩 서덜랜드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지난해 737 맥스에서 결함이 발견됐을 때 이렇게 말했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보이면 더 많은 바퀴벌레가 있을 수 있다’는 진부한 표현이 있다.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이제 문제는 얼마나 더 많은 바퀴벌레가 남아있느냐는 것이다.”
보잉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품질 관리를 개선하고 과거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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