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틴틴팅클〉, 유년 시절을 반추하는 하나의 방법 [K콘텐츠의 순간들]
얼마 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틴틴팅클〉의 사인회에 운 좋게 당첨되어 아이와 함께 다녀왔다. 초등학생인 아이는 〈틴틴팅클〉의 열렬한 애독자다. 단행본 〈틴틴팅클〉이 꽤 두꺼운 데다 몇 권이나 되는데도 그걸 여러 번 읽고 또 읽더니 이제는 〈틴틴팅클〉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의 이름과 성격을 줄줄 외울 지경이다. 원래는 내가 〈틴틴팅클〉을 좋아해 단행본을 구매했는데, 내가 사둔 책을 보다가 아이 역시 작품에 빠져들었다. 사인회에 줄 선 사람 중에는 우리 말고도 양육자의 손을 잡고 온 초등학생이 여럿 있었다. 20~30대 여성들이 가장 많았고, 나이 든 중년 남성도 종종 눈에 띄었다.
만화 〈틴틴팅클〉은 네이버웹툰, 카카오웹툰과 같은 주요 만화 플랫폼이 아니라 작가의 개인 SNS에 연재되는 작품이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이 주요 연재 창구다. 플랫폼 연재작이 아니지만 그 인기는 놀라울 정도다. 매번 신규 회차가 게시될 때마다 ‘좋아요’ 수만 개가 찍히는 건 물론이고 수천 번씩 공유되곤 한다. 지난해에는 카카오프렌즈와 협업해 서울과 부산 두 곳에서 〈틴틴팅클〉의 굿즈를 판매하는 팝업스토어가 열렸는데, 연일 매진 행렬이었다. 예약해둔 데다 나름대로 일찍 채비하고 나섰는데도 몇 시간이나 입장 대기를 해야 했다.
〈틴틴팅클〉을 향한 이 열렬한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고양이 모습을 한 귀여운 캐릭터들의 외형도 작품의 매력 중 하나다. 그러나 이 작품이 독자를 끌어당기는 진정한 힘의 원천은, 작품 전반에 은은하게 깔린 과거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어린이의 복잡미묘한 마음을 그려내는 섬세한 서사에 있다.
초등학생 ‘틴틴’과 ‘팅클’의 우정을 다루고 있어 제목이 〈틴틴팅클〉인 이 작품은 현대의 초등학생이 아니라 2000년대의 초등학생 이야기를 그린다. ‘틴틴’과 ‘팅클’이라는 이름도 그 당시 유행했던 초콜릿 과자 ‘초코틴틴’과 ‘팅클’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 시대를 풍미했던 과자이지만 둘 다 지금은 단종되어 구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이름들은 그 자체로 결코 돌아오지 않는 오랜 날의 기억, 어린 시절 친구와 나누던 달콤한 우정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틴틴팅클〉의 어린이들이 늘 초콜릿처럼 달콤한 시간만을 보내는 건 아니다. 오히려 어린이들은 매번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아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휩쓸려 다니는 혼란의 시간을 지나곤 한다. 부모가 이혼해 엄마와 함께 살던 틴틴은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아빠의 집으로 이사해 사랑하는 친구들을 떠나게 되고(〈전학 간 틴틴이〉), 외할머니 손에 맡겨졌던 ‘콩물’도 억지로 부모의 집에 들어오게 된다(〈적응〉). 익숙한 학교를 떠나 왜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지 아무도 틴틴에게 설명해주지 않고, 오랫동안 집을 나가 있던 아빠가 왜 갑자기 돌아왔는지 콩물 역시 모른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일방적인 결정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변화한 상황에 적응하려 애쓴다. 이 마음의 낙차 때문에 정작 그들의 내면은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어린이들은 멀리서 보면 모두가 그럭저럭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지만, 가까이에서 그 삶을 따라가면 저마다 아픔과 어려움이 있다. 매사에 쿨한 매력을 뽐내는 팅클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부모(어른들 역시 고양이로 그려진다)나 형제들과 몸의 무늬나 색이 다른데, 입양아여서 그렇다는 설정이다. 팅클은 기분이 좋지 않은 날, 괜히 엄마에게 안아달라 칭얼대며 “나 사랑해? 피가 안 섞여도?”라며 묻는다(〈무조건적인 사랑〉). 한편 틴틴은 자신 때문에 엄마와 아빠가 싸우다가 이혼한 게 아닌지 걱정하고, 콩물은 폭력적인 아빠가 두려워 집에서도 안심하지 못하고 작은 소리에 홀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틴틴과 팅클의 친구인 ‘베리’와 ‘미니’ 자매 역시 나름의 고충이 있다. 베리는 언니라는 이유로 매번 미니를 살뜰하게 챙겨야 하는 보호자 역할을 힘들어한다. 미니는 미니대로 언니를 너무 좋아하지만, 간혹 날카로운 언니의 반응에 상처 입는다. 이 외에도 쉬는 시간마다 숙제하고 공부를 따라가느라 신경이 예민한 반장 ‘석기’나 자꾸만 체형으로 놀림받아 눈치 보는 ‘마로’도 있다.
어린이의 구원은 대개 친구에게서 온다
누구 하나 평탄한 삶은 없지만, 어린이들은 그래도 웃는다. 〈틴틴팅클〉 속 어린이들의 ‘구원’은 대개 친구들에게서 온다. 냄새가 난다며 아무도 옆에 앉으려 하지 않는 콩물이 곁에 틴틴이 냉큼 앉아 교과서를 보여주거나, 하나하나 조심스러운 틴틴을 위해 팅클이가 틴틴에게 맞는 물건들을 준비해두는 등 〈틴틴팅클〉 속 어린이들은 서로서로 배려하고 챙기면서 위로하고 또 위로받는다. 때때로 어른들이 이들에게 내미는 도움의 손길도 있지만, 어린이들이 살뜰하게 어른을 챙기려 애쓰는 모습들도 자주 그려진다.
〈틴틴팅클〉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 중 우리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미니다. 다른 캐릭터에 비해 한두 살 어리게 나오는 미니는 언니인 베리를 ‘웅니’라고 부르며 졸졸 쫓아다닌다. 베리는 종종 다른 것에 신경을 쓰느라 미니의 말에 성의 없이 대꾸하기도 하고, 같이 놀고 싶어 하는 미니를 외면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 서운해하는 미니의 모습이 꼭 자신 같다고 했다. “엄마도 일할 땐 내가 말해도 잘 안 듣고, 놀자고 해도 잘 안 놀아주잖아.” 반면 나는 콩물이가 유난히 눈에 밟혔다. 가난했던 유년 시절이 콩물이에게 자꾸만 겹쳐 읽혔기 때문이다.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사인회의 차례가 오길 기다리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여기 있는 다른 이들은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을까. 〈틴틴팅클〉을 읽으며 저마다 어떤 어린 마음들을 떠올렸을까.
지난해 만화 〈반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북토크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에도 제일 첫 줄엔 초등학생들이 양육자와 함께 앉아 있었다. 1990년대 학교를 배경으로 한 만화여서 그런지 양육자는 과거의 향수에, 학생들은 지금의 상황에 몰입하여 책을 읽었다고 했다. 〈틴틴팅클〉이 선사하는 것과 유사한 만화 경험이다.
일반적으로 어린이 만화라고 하면, 어린이가 주인공이 되어 적을 물리치는 판타지물이나 어린이에게 교육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용 만화를 주로 떠올린다. 반면 〈틴틴팅클〉이나 〈반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는 독자들이 저마다 자신의 시절을 반추하고 위로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어린이 만화’다. 예전에는 양육자와 자녀가 만화로 인해 대립하기 바빴는데, 이제는 같은 작품을 함께 즐기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 모든 게 지금의 만화가 만들어가는 만화-문화의 새로운 풍경이다.
조경숙 (만화 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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