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실버’가 국가경쟁력···‘지속가능한 노년’에 인구재앙 해법 있다
국민통합위원회 ‘노년의 역할이 살아있는 사회 특별위원회’ 위원
“앞으로는 고령층의 노화 궤적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국가경쟁력이 달라질 겁니다. 장기적으로 모든 국가가 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이기 때문에 노년층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사회가 번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 내과 교수는 인구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저출생 대책 못지않게 ‘노년 정책’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인을 치료와 복지의 대상에서 사회 참여가 가능한 숙련 노동력으로 관점을 바꿔 제도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취지다. 정 교수는 “고령층의 건강한 경제 활동 참여 기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숙련 노동력의 공급이 늘어나고 의료·요양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줄어든다는 의미”라며 “개인 차원에서도 사회 참여를 지속해 노화를 막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은 활력있는 여생을 보내고 국가는 부양 비용을 최소화하는 길을 향해 나가자는 주장이다.
정 교수는 지난해 10월부터 ‘노년의 역할이 살아있는 사회 특별위원회’에서 특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년 특위는 고령층을 ‘부양’이나 ‘돌봄’의 대상으로 보는 데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세대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정책 도출을 위해 설치된 통합위 산하 특별위원회다.
◇노인층이 ‘인구 보너스’ 될 수 있다=정 교수는 100세 시대 삶의 패턴은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는 평균 수명이 60대였다. 20년 공부하고 30년 일한 뒤 10년 정도 여생을 보내는 구조”라며 “하지만 100세 시대에는 60대에 은퇴해도 30년 가까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과거와 달리 한 사람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간이 약 70년으로 그 기간이 두 배로 늘어났다”며 “이것을 ‘인구 보너스’라는 관점으로 접근하자”고 제안했다.
실제로 일본은 고령층의 사회 참여 기능을 보존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의 1인당 경제성장은 지난 30년간 정체했지만 생산가능인구(20~64세) 1인당으로 계산해보면 미국·영국·프랑스 등을 앞선다. 65세 이상 인구의 적극적인 경제 활동을 독려해 ‘고령화 비용’을 상쇄했다는 의미다. 정 교수는 “은퇴하면 쉬는 문화가 정착된 서구 사회와 달리 우리나라 고령층 역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늦게까지 일하는 편”이라며 “이 분들의 노쇠를 예방하면서 ‘역량 포트폴리오’를 유지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노년 인구의 사회 참여와 노쇠 예방은 별도의 개념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건강하게 사회 참여를 지속해야 노쇠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독거 노인을 대상으로 주기적 운동·충분한 영양 공급·주거 환경 개선 등 조치를 취한 뒤 추적 관찰한 결과 요양병원에 입원하거나 사망할 확률이 비교군에 비해 70% 이상 감소했다”며 “신체 기능 역시 10년 가까이 젊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속가능한 수준의 사회활동은 결국 신체활동과 인지능력 향상, 대인관계를 동반하기 때문에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부연했다.
◇맞춤형 의료로 ‘요양 예방’에 초점= 정 교수는 고령층의 활력있는 사회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현행 의료·복지 체계를 손보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쇠가 진행된 뒤 치료·요양하는 ‘사후 조치’ 중심의 제도를 ‘노쇠 예방’으로 전환하자는 내용이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는 연령 친화 의료 시스템이 약하다”며 “질병 중심 의료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고령 골절 환자가 오면 재활 치료를 겸해야 하는데 병원은 골절 치료만 생각해 침상에서 시간을 보내게 한다”며 “그러면 근육이 급격히 빠지고 욕창이 생겨 결국 요양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 교수는 노년 특위에서 ‘노인 통합 돌봄’의 개념을 적용한 의료 체계 구축을 제안해 관계 부처에서 의견을 수렴 중이다. ‘장애인 주치의’나 ‘치매 주치의’처럼 고령자의 건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치료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정 교수는 “‘노인 포괄 진료 수가’ 도입도 방법”이라며 “노년층을 대상으로 충분한 상담, 약물관리, 노인증후군 예방을 돕는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를 인정해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노년 내과 전문의가 매우 제한적이지만 내과·가정의학과·소아과 등 다양한 전문가들도 간단한 수료과정을 거치면 1차 의료 현장에서 훌륭한 노년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 교수는 ‘개호 예방’ 체계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개호 예방은 장기요양 대상자로 지정되는 시점 자체를 늦추는 것을 의미한다. 정 교수는 “통상 장기요양 수요는 85세 인구의 1.1배에 수렴한다”며 “이대로 베이비붐 세대 수백만 명이 80대에 진입하는 2040년이 되면 요양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막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요양 비용을 일부 부담한다”며 “각 지자체는 돌봄 수요를 줄이기 위한 정책에 많은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요양 비용을 지원하는데만 급급하다”며 “그보다 노쇠 예방을 통해 돌봄 수요 자체가 감소하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30은 ‘가속노화·만성질병’ 차단= 정 교수는 젊은 세대들 역시 ‘지속가능한 노년’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 교수는 “가속 사회가 가속 노화를 만들고 있다”며 “성공을 위해 N잡(본업 외에 2개 이상의 직업을 가지는 것)을 뛰고, 스트레스를 푼다며 마라탕·탕후루를 찾는다. 모두 건강하지 않은 삶의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채워넣기보다 덜어내는 삶이 중요하다”며 “자기를 몰아세우는 삶이 아니라 충분한 가처분시간을 즐겨야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현대인은 ‘도파민 디톡스’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뇌는 자극을 받으면 갈수록 더 큰 자극을 찾는다. 그래서 자꾸 자극적인 음식을 찾고 SNS에 중독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데 오히려 강한 도파민 자극을 받고 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온다”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 뇌 기능이 후퇴하고 결국 노화가 빠르게 진행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결국 인위적인 자극을 빼고 지속가능한 삶의 패턴을 형성하는 것이 노화 방지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주재현 기자 joojh@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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