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美 대통령 첫 경선지에서 압승, 트럼프 대 바이든 ‘리턴 매치’ 국면
민주당 ‘집토끼’로 여겼던 흑인들 “경제 어려워” 이탈 조짐
바이든과 참모들 잇따라 ‘흑심 구애’
“여러분의 목소리를 낼 준비가 됐나요?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저는 당신들만 믿습니다!”
지난 2일 오후 5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야외 공연장에서 민주당 소속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이렇게 외치자 200여 명의 흑인 유권자가 “우리만 믿으라”며 환호했다. 해리스는 이날 연설에서 11월 대선 본선에서 바이든과 대결이 유력한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했다. 해리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과 정치 게임을 위해 증오와 편견,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의 불을 지폈다”며 “그(트럼프)는 이민자들이 우리 민족의 피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는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이라는 아픈 역사를 상징하는 전통 흑인 대학(HBCU)이다. 미 역사상 첫 유색인종·여성 부통령인 해리스도 워싱턴DC에 있는 명문 흑인 대학인 하워드대 출신이다.
다음 날인 3일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민주당의 첫 경선(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개표율 95%를 기준으로 바이든은 96.2%를 얻어 작가 매리앤 윌리엄슨 후보(2.1%), 딘 필립스 연방하원 의원(1.7%)을 큰 격차로 제치고 승리했다. 바이든은 성명을 통해 “여러분이 우리를 재선에 성공시키고, 트럼프를 다시 패배자로 만드는 길로 인도해 줬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미 언론들은 “이날 승리는 사실상 민주당 대선 후보를 결정짓는 ‘대관식’을 연상시켰다”고 했다.
민주당 대선 레이스가 바이든의 독주로 시작했지만, 바이든 캠프에서는 특히 ‘집토끼’에 해당하는 흑인 유권자의 마음을 얻고자 고심하고 있다. 지난해 11~12월 AP와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 여론조사에서 흑인 성인 50%만이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다. 2021년 7월 조사 때의 86%와 비교해 36%포인트 급락했다. 이번에 바이든은 중서부 아이오와주에서 대선 경선을 시작했던 민주당의 전통도 바꿨다. 첫 경선지를 흑인이 다수 거주하는 남부 주들을 가리키는 ‘딥 사우스(Deep South)’의 하나인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변경했다.
기자가 2~3일 이틀간 컬럼비아·렉싱턴·오렌지버그 등 사우스캐롤라이나 도심과 외곽 지역의 흑인 지지자들을 만나본 결과 연령대별로 바이든 호감도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주로 50~70대 중년층은 바이든 지지가 확고한 반면, 20~40대 청년층에선 ‘바이든 이탈’ 조짐이 감지됐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에서 만난 졸업반 학생 코리 코트니(22)는 “바이든의 공약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많다. 실망했다”고 했다. 그는 학사 학자금 대출을 탕감받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학자금 대출 탕감은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어 임기 초부터 최우선 사안으로 추진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연방대법원이 “행정부가 이런 막대한 자금(4300억달러·약 575조원)에 대한 대출 탕감을 할 권한이 없다”며 제동을 걸었다.
장기간 이어지는 고물가·고금리는 저소득층이 많은 흑인에게 더 타격이 됐다는 분석이다. 렉싱턴 시내에서 만난 토니 보우(45)씨는 “집 사기가 힘들다. 바이든 대통령은 좋은 사람이지만 먹고사는 게 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생 숀 드숀(22)도 “요새 물가가 많이 올라 부모님이 걱정이 많다”고 했다. 반면 목사인 로버트 존슨(60)씨는 “교육을 중시하고, 평등을 중시하고 배려심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우리가 뽑아야 할 사람”이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바이든을 괴롭히고 있다. 컬럼비아 도심 지역 렉싱턴에 마련된 사전 투표장에서 만난 토니 부톤(71)씨는 “왜 바이든 행정부가 (가자지구의) 죄 없이 피해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50대 제이크씨는 “이스라엘이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전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말하는 건 소수 민족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걸로 보인다”고 했다.
AP는 “흑인 유권자들의 지지율은 바이든에게 대선 승패의 핵심”이라며 “조지아, 미시간, 위스콘신 등 가장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경합 주에서 흑인층 지지율을 많이 잃게 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NBC 뉴스는 “바이든 캠프가 흑인들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흑인 유권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별도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바이든은 지난 2020년 대선에서 흑인층의 몰표를 받았다. 이를 보답하듯 바이든은 임기 초 국방장관(로이드 오스틴), 유엔 주재 대사(린다 토머스그린필드), 백악관 대변인(커린 잔피에어)을 비롯해 차기 합참의장(찰스 브라운) 등 흑인을 요직에 대거 기용했다. 임기 중 임명한 첫 대법관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첫 흑인 여성’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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