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에 숨어있더라"…서울 38세금징수과, 그들의 별별 사연[인터뷰]

권혁진 기자 2024. 2. 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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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출범…추징 세액만 4조659억원
밖에서 '세탁기 돌려볼까' 하니 바로 나와
체납자가 밀쳐 3~4m 뒤로 날라가기도
1억 체납 교수, 가보니 펜트하우스 살아
"언젠간 우리가 간다. 미리 납부하시라"
생계형 체납자들에겐 재기 기회 주기도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영등포구청, 38세금징수과 관계자들이 지난해 3월3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시내 한 아파트단지에서 체납차량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2023.03.30. kch0523@newsis.com

[서울=뉴시스] 권혁진 이재은 기자 = '38기동대'로 통하는 38세금징수과는 2001년 전국 최초로 출범한 서울시 체납세금 징수 전담조직이다. '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징수한다'는 강령 아래 지금 이 순간에도 쉼 없이 뛰고 있다.

지난달 30일 뉴시스와 만난 임채선 조사관은 출범 초기인 2003년 처음 38세금징수과와 연을 맺었다. 중간에 다른 보직을 맡았던 시기를 제외해도 경력 10년 이상이 넘는 베테랑이다. 임 조사관은 "38세금징수과는 일반 자치구에서 징수하지 못한 1000만원 이상 고액체납자들을 인수해 집중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4일 서울시에 따르면 그동안 38세금징수과가 받아낸 세금은 총 4조659억원. 서울시 1년 예산 10% 수준으로, 한 해 1800억원 가량을 징수한 셈이다.

공평과세를 위한 이들의 노력은 각종 영화와 드라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배우 마동석 주연의 드라마 '38사기동대'(2016년)는 당시 OCN 자체 제작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국세청과 타 지자체 전담조직 신설도 38세금징수과의 영향이 컸다.

38세금징수과는 총 5개팀으로 구성된다. 징수를 전담하는 4개팀과 이들의 활동을 기획하고 지원하는 총괄팀이다. 25명의 체납 조사관은 일단 타깃이 정해지면 다양한 방법으로 징수 활동을 진행한다. 사업장 명의와 위장 여부, 거주지 및 명의 확인은 기본이다. 채권, 분양권, 출자증권, 특허권 등 체납자의 모든 재산 관련 정보를 일일이 들여다본다.

서류 만으로 은닉 재산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임 조사관은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은 한계가 있다. 동산은 서류에 잘 나와있지 않아 현장 조사가 필수다. 재산이 없는 것으로 적혀 있어도 좋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가서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부유한 형편임에도 고의로 체납하는 경우엔 동산압류를 실시한다. 조세정의를 실현하려는 조사관들과 한 푼도 내놓지 않으려는 악질 체납자들과의 본격적인 대결이 막을 올리는 것도 이때다.

임 조사관은 "단골메뉴는 위장이혼과 현금을 집에 두고 있는 경우다. (고액 악질 체납자들은) 보통 금고를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그 경우에는 금고가 아닌 싱크대 밑이나 이불장, 화장실 환풍기 등을 살펴본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임채선 서울시 38세금조사관이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서울시서소문청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1.30. photocdj@newsis.com

임 조사관과 같은 2003년 38세금징수과 업무를 시작한 김현중 조사관은 "한 대학교수는 집에 가보니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78평짜리 여의도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더라. 금목걸이, 명품 가방 등을 압류하는데 남편이 '다 가짜'라고 하니 아내가 '무슨 소리냐. 전부 진짜'라고 발끈하더라"며 웃었다.

결국 이 교수는 체납액 1억1600만원을 1주일 만에 완납했다. 김 조사관은 "만일 우리가 가서 압박하지 않았다면 계속 조금씩 내면서 납부를 회피했을 것"이라고 떠올렸다.

주변인들의 제보는 체납자를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임 조사관은 "집에 갔는데 위장 거주지인 것 같아서 철수한 적이 있다. 나중에 그 사람이 '세탁기에 숨어 있었는데 바보 같은 놈들이 못 찾더라'고 말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면서, "이야기를 듣고 다시 갔는데 그때도 세탁기에 숨어있더라. 찾는 척을 하다가 우리끼리 '세탁기를 한 번 돌려보자'고 말하니 잽싸게 나오더라"고 말했다.

물리력을 사용해 끝까지 저항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은 언제나 곤혹스럽다. 체납자의 과격한 행동은 경찰에 신고를 요청할 여유조차 없는 찰나에 발생한다.

김 조사관은 "구청장 선거에 출마했던 이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간단한 가택수사를 한다고 했더니 '나는 당신과 말할 레벨이 아니다'라며 흥분하더라. 야구배트로 식탁을 치고 유리창을 깨기 시작했다. 나를 밀치는 바람에 3~4m 뒤로 날라가기도 했다. 나중에는 가위로 가스밸브를 끊으려고 해 한바탕 난리가 났다. 결국 자기도 좀 미안했는지 세금을 일부 납부했다"고 말했다.

모든 체납자가 악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38세금징수과는 가족들의 돈을 모두 끌어 썼는데 사업에 실패했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불법을 저지르게 된 '생계형 체납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임 조사관은 "이런 유형의 소액 체납자들은 재기의 가능성이 있기에 압류를 해지해주거나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들을 연계해준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김현중 서울시 38세금조사관이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서울시서소문청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1.30. photocdj@newsis.com

징수 수법이 교묘해지면서 대응책 역시 진화하고 있다. 지자체 최초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압류 및 징수, 전국최초 교정시설 수감 비양심 고액체납자 영치금 압류, 서울시 최초 고액 자기앞 수표 교환 체납자 조사 모두 38세금징수과의 작품이다. 조사관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믿고 있고, 실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초창기에 비해 시스템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각 기관 간 협조가 물 흐르듯 이뤄지는 구조는 아니다. 법원과의 업무 공유는 아직이고, 은행들은 개인정보를 이유로 협조에 소극적이다. 김 조사관은 "우리 입장에서는 원활한 협조가 필요하다. 기관들이 공익성을 갖고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조사관들을 지탱하는 힘 중 하나는 '사명감'이다. 한때 38세금징수과에서 유행했던 '남들이 안하면 우리가 한다'는 건배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임 조사관은 "동산 압류를 할 때는 악성 체납자들도 '이제 올게 왔구나'라고 인지하고 있다. 부서의 강령처럼 우리는 끝까지 추적한다. 언젠가는 우리가 가니깐 미리 세금을 납부하시고 마음 편하게 사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조사관은 "내가 한 번 이 나라의 새 역사를 써보자는 자부심과 끈질기게 한 번 더 보자는 마음으로 근무했다"면서 "후배들이 잘 배우고 있어 노하우가 잘 전달될 것이다. 앞으로 (후배들이)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jkwon@newsis.com, lj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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