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폐기물 사절”에도… 감시망 피해 매년 수만t 몰려 [이슈 속으로]

윤솔 2024. 2. 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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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로 신음하는 동남아 국가들
2018년 중국 폐기물 수입 금지 여파
원산지 위장 위해 경유국 거쳐 반입
해양 플라스틱 최다국가 90%가 아시아
필리핀, 폐기물 연 35만t씩 강서 바다로
인도네시아, 하천 59%가 ‘심한 오염’
소포장 제품 의존 ‘봉지 경제’ 한 몫
인도, 갠지스 대대적 수질정화사업
2014년부터 총 5조2800억원 투입
‘노상 배변 천국’ 오명 씻어내기 총력
“한국 쓰레기는 한국에서!”

필리핀 환경운동가들이 2018년 11월 현지에서 한국의 쓰레기 처리 문제를 지적하는 시위를 벌였다. 수개월 전 한국 폐기물 처리업체가 약 1만5000t의 쓰레기를 ‘재활용 폐기물’로 속여 필리핀에 불법 수출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폐기물 처리 규제의 허점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다. 국제적 망신을 당하자 한국 정부가 나서서 이를 전량 회수키로 하고 2020년까지 3년간 수차례에 걸쳐 쓰레기를 가져왔다.
2019년 인도 첸나이에서 소년이 쓰레기더미를 헤치며 수영하고 있다. 첸나이=로이터연합뉴스
불법 쓰레기는 필리핀과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9년 필리핀 정부의 강한 항의로 캐나다는 과거 5년간 이곳에 쌓아 둔 불법 쓰레기를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해 말레이시아도 불법 쓰레기 4000t을 프랑스, 영국, 미국 등 13개국으로 반송했다. 현지 운동가들은 “동남아시아가 선진국의 쓰레기 매립지로 사용되고 있다”며 각국의 자성을 촉구했다.

◆쓰레기로 고통받는 동남아시아

필리핀은 2019년 시행된 폐기물 수입 금지법에 따라 재활용 쓰레기를 포함한 모든 폐기물에 대한 수입을 금지했다. 여전히 감시망을 피해 매년 수만t의 쓰레기가 필리핀과 인근 동남아 국가로 모여들고 있다.

인터폴에 따르면 2018년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금지한 것을 계기로 전 세계에서 불법 폐기물 운송이 크게 늘었고, 원산지를 위장하기 위해 여러 경유국을 거쳐 대부분은 동남아에 도착하고 있다.
비영리 환경단체 오션클린업 연구팀이 2021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게재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강을 따라 바다로 배출되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매년 115만∼241만t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국가가 필리핀으로, 연간 35만t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제대로 수거되지 못하고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 그 뒤를 인도(12만6513t), 말레이시아(7만3098t), 중국(7만707t)이 잇는 등 세계에서 플라스틱 해양폐기물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10개 나라 중 9곳이 아시아에 몰려 있다.
필리핀에서 가장 오염이 심한 강은 수도 마닐라를 가로지르는 파시그강이다. 파시그강은 각종 쓰레기와 가축 분뇨 등이 무분별하게 버려졌다. 이미 1960년대부터 주민들이 강물을 빨래하는 데조차 쓰지 않았다. 1970년대에는 악취가 난다는 보고가 접수되기 시작했고, 결국 1990년 생물학적으로 ‘죽은 강’으로 판정받았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CCC)는 파시그강이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강’이라며 매년 이곳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플라스틱의 양이 6만3000t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불법 쓰레기 투기에 이어 빈곤층이 소포장 제품에 의존하는 생활 습관도 문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필리핀에서는 매일 약 1억6300만개의 ‘1회 분량’ 생활용품이 소비되고 있다. 세계은행은 “(필리핀의) ‘봉지 경제’는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 가정까지 널리 퍼져 있어 이 지역의 해양 플라스틱 오염 수준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리핀 현지 환경운동가들이 2019년 1월 자국에 불법 수출된 한국산 쓰레기 8000여t의 반송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에코웨이스트연합(EWC) 제공
비슷한 ‘봉지 경제’ 문화를 가진 인도네시아에서도 하천 오염이 심각하다. 인도네시아 환경부의 2021년 전수조사에 따르면 하천의 59%는 심한 오염, 26.6%는 중간 정도 오염, 8.9%는 약간 오염된 상태다. 2015년 전체 하천의 79.5%가 심한 오염 수준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개선된 숫자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유엔환경계획에 따르면 세계 해양폐기물의 약 80%는 하천 등 지상으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바다에 모인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매립되는 쓰레기를 줄여야 해양 오염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갠지스강 살리기’에 사활 건 인도

동남아의 강이 쓰레기로 고통받는 동안 인도 갠지스강에선 인류 위생학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질정화사업이 진행 중이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지휘하에 인도 정부는 14억 인도인이 신성시하는 갠지스강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2014년부터 ‘나마미 갠지스(갠지스강에 대한 순종)’ 프로그램에 3280억루피(약 5조2800억원)를 투입했다. 여기에는 170개 이상의 새 하수시설과 대서양을 건널 수 있는 길이인 5211㎞에 달하는 하수관 건설이 포함된다.

다만 노상방뇨와 폐수 투기가 일상이었던 국가에서 단번에 현대적 하수처리 시스템을 구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필리핀 마닐라베이 라스 피냐스 파라냐케 습지 공원에서 코이카 해양 쓰레기 관리 사업에 참가한 환경단체와 관계자들이 쓰레기를 수거하기 위해 모여 있다. 코이카 제공
2014년 모디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노상 배변 천국’ 오명을 씻기 위한 대대적인 공중위생 개선 캠페인을 열었고, 2019년까지 1억1000만개의 공중 화장실을 지었다.

문제는 새로 생긴 화장실을 처리할 하수시설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도시 하수 대부분은 공공 하수로를 통해 바로 갠지스강으로 방류됐고, 이곳에서 힌두교 신자들이 일상적으로 몸을 씻거나 심지어는 강물을 마셨다.

인도는 새로 지어진 하수 시스템에 대한 수용도를 높이기 위해 시민들에게 강과 배수구를 노상 배변이나 쓰레기로 오염시키지 말라는 인식 개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서벵골주 잘칼 공해관리위원회의 라구벤드라 쿠마르 총괄은 “지난 3~5년 동안 시민들 사이에 생활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이 많이 자리 잡았다”고 미국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캄보디아의 해변에 쌓여 있는 페트병. 유엔개발계획 제공
위원회에 따르면 잘칼에선 2016년부터 갠지스강으로 하수를 방류하던 23개의 배수구 중 20개가 차단됐고, 나머지도 하수 처리장으로 배관을 연결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쓰레기의 땅(Wasteland)’ 저자 올리버 프랭클린 월리스는 지난달 와이어드에 실은 기고문에서 인도가 겪고 있는 문제는 지난 20년간 중국이, 그리고 수십 년 전에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겪은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갠지스강 정화 사업은 인도에서 실용적이거나 정치적인 문제 이상으로 도덕적인 문제”라며 “수억명의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강조차 정화하지 못한다면 나머지 인류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냐”고 말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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