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내려놓은 안재홍, 'LTNS'로 새로운 길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배우 안재홍(37)의 연기 변신은 넷플릭스 '마스크걸'(2023)이 끝일 줄 알았다. 당시 변태적 성향을 보이는 추남 '주오남'으로 등장해 충격을 줬다. 최근 공개한 티빙 'LTNS'(Long Time No Sex)에선 이솜(34)과 삶에 치여 관계마저 소원해진 부부로 분했다. 19금 신부터 불륜 커플을 쫓는 과정까지 현실적인 연기로 공감을 샀다. '마스크걸은 은퇴작, LTNS는 복귀작'이라며 '또 은퇴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까지 나왔다. 이제 '멜로가 체질'(2017)등과 같은 '로맨스물은 못 하는 게 아는가?' 싶을 정도로 수위가 셌는데, "솔직히 두렵거나 부담되지는 않았다"고 털어놨다.
"오히려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서 신났다. 주오남은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캐릭터라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고, 이번에 '사무엘'은 양파같은 인물이라서 설렜다. 일상부터 드라마적인 순간까지 다채롭게 표현하고 싶었다. 일부러 생경한 모습을 의도적으로 표현했는데,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느껴지길 바랐다. 특히 3회 엔딩에 중점을 뒀다. 사무엘이 '백호'(정진영)한테 얻어맞고 이빨까지 뽑히지 않느냐. '우진'(이엘)은 사무엘이 걱정돼 눈물을 흘렸지만,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처럼 디테일이 녹아있는 작업이었다."
이 드라마는 사무엘과 우진이 돈을 벌기 위해 불륜 커플을 협박하고, 그 과정에서 망가진 관계를 마주하는 이야기다. 영화 '소공녀'(2018) 전고운 감독과 '윤희에게'(2019) 임대형 감독이 함께 만들었다. 이솜과는 소공녀, 단편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감독 안재홍·2020)에 이어 세 번째 호흡이다. 19금 신이 많아 민망했을 법도 한데 "장면보다 대사 수위가 세다"고 짚었다. "극본 자체가 가진 말의 힘을 순화하거나, 수위를 윤화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힘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한 부부의 일상을 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와중에 툭툭 튀어나올 때 엣지가 사는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솜씨와는 촬영 전 대화를 많이 하거나, 토론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전작에서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어서 따로 뭔가를 만들기 보다 척하면 척이었다"며 "이번 작품은 설레임부터 경멸까지 다양한 감정을 보여줘야 해 새로웠다. 이제야 이솜씨를 알아갈 정도로 신선했다. 어떤 한 가정의 거실을 보는 듯한 생생함을 전하고 싶었다. 나와 이솜씨가 일단 풀어져서 생생하게 전달해야 '우리 이야기 같은데?'라고 할 것 같아서 리얼함보다 더 리얼함을 연기했다"고 돌아봤다.
사무엘은 기존 드라마 속 전형적인 남편상과 달랐다. "감독님이 현장에서 '사무엘라'라고 불렀다. 우진이 이 집의 가장이지 않았느냐. 사무엘이 가자미를 굽고, 우진이 설거지를 하고···. 새로운 남편상을 띄는 캐릭터로 차별성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부부가 집 안에서 비를 맞으며 싸우는 신도 신선했다. "본 적이 없다. 모든 스태프들이 '이런 장면은 처음'이라고 하더라"면서 "그 장면만 이틀을 찍었는데, 엄청나게 집중해 밀도있게 작업했다. 세트 안에 쏟아지는 비를 만들어보는 것도 처음이었는데, 어떤 변수가 있을지 예측할 수 없었다. 입술 뿐 아니라 무릎도 파래지더라. '진짜 이 부부가 끝까지 가는구나'라는 걸 보여줬다"고 풀이했다.
"1회에서 사무엘이 지쳐 소파에서 잠들어 있는데, 우진이 부부관계를 하려고 건드리지 않느냐. 원래 거실 바닥에 쭈그려 자고 있다가 하려고 했는데, '엣지있게 소파에서 하면 어떨까?' 싶었고 희한한 장면이 만들어졌다. 이 장면에선 다 내려놨다. '어떻게 하면 새롭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공감을 불러일으킬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시청자들이 깔깔 대며 웃으면서도 어느 순간 '내 얘기 같은데?'라는 생각이 훅 들게끔 감흥을 주고 싶었다. 블랙코미디가 주는 가장 큰 재미다."
'결혼에 관한 환상이 깨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엔 "'미지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혼자 역은 처음이었는데, 연인들간 감정과 완전히 다른 수준이었다"고 답했다. "연인과 부부 연기에서 가장 다른 건, 말 속의 칼을 쥐고 있는 것"이라며 "(부부 싸움은) 말로 하는 칼싸움이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지는데, '고수들이 검을 빼냐 마느냐' 하는 긴장의 기류를 느꼈다. 펜싱 경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부연했다.
이솜은 '안재홍이 블랙코미디의 정점을 찍었다'고 극찬했다. "너무 과찬"이라며 "LTNS는 블랙코미디물을 강하게 띄지만, 코미디, 범죄, 추적 액션 등 다양한 장르가 혼재 돼 오묘하다. 해상펜션에서 오픈섹스하는 상황극도 아슬아슬하고 수위가 세지 않았느냐. 부부가 할 장난처럼 느껴지면서도 애잔하더라. 다양한 감정이 느껴지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다. 힘을 뺀 것처럼 보이게 연기했는데, 배우가 정말 힘을 빼면 못 본다. 연기하지 않는 것처럼 연기해야 해 오히려 더 생각을 많이 하고, 디테일을 좀 더 살렸다"고 설명했다.
결국 사무엘과 우진도 불륜을 저질렀다. 실망 섞은 반응도 나왔는데 "사무엘이 바람을 피운다는 설정이 굉장히 화 날 것 같다. 사실 음악도 좀 샤랄라 해서 더 열 받을 것 같다"며 공감했다. "사무엘과 우진의 불륜은 예상하지 못했다. 극본으로 봤을 때도 놀랐다"며 "사무엘은 정서적인 외도, 우진은 육체적인 외도를 하지 않느냐. 이솜씨, 감독님과 처음으로 같이 밥을 먹을 때 이 부분에서 다 경멸하더라. 누가 옳고 나쁜 게 아니라, 둘 다 외도한 건데 '이 대립이 치열할수록 재미있겠다. 던지는 메시지가 묵직해지겠다' 싶었다 정신·윤체적 사랑이 하나일 때 완벽한데 툭 떼 놓고 '뭐가 사랑일까요? 뭐가 더 잘못했을까요?'라고 반문하지 않느냐. 떼려야 뗄 수 없는데, 양립했을 때 갈등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마스크걸과 LTNS 캐릭터 존재감이 큰 만큼 차기작 부담감도 크지 않을까. 이병헌 감독과 멜로가 체질에 이어 넷플릭스 '닭강정'에서 호흡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이 작품이 마지막인 것처럼 연기하겠다"며 "닭강정에서도 완전히 다른 느낌의 인물을 보여줄 것"이라고 귀띔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캐릭터는 뭐냐고? 주오남이라고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캐릭터와 싱크로율은 골고루 낮다. 다 캐릭터이면서 실존하는 것처럼 느껴지길 바란다. 그 인물이 하나의 캐리커쳐가 돼야 한다"며 "난 재미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코미디뿐만 아니라 굉장히 무서운 걸 볼 때도 재미있다고 하지 않느냐. 그런 작품을 만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했다.
"아직 안 본 분들은 1~6회 한 번에 보기 위해 추진력을 모은 게 아닐까. LTNS는 6시간 짜리 영화다. 몰아서 보면 아주 재미있는 디테일을 맛볼 수 있다. 가급적이면 집에서 보고, 공공장소에선 참아 달라.(웃음) 난 집에서 혼자 TV를 볼 때 작품의 재미가 발동되면 행복하다. 앞에 놓인 음식보다 맛있게, 귀하게 느껴지더라. (LTNS도) 좋은 안주처럼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사이 안 좋은 부부가 함께 보면 모 아니면 도인데, 그래도 온기가 생기길 바란다. 손가락질 하면서 낄낄 때며 보다가 손가락이 나한테 올 때 약간 뜨끔하면서도 재미있지 않느냐. 누군가의 이야기이고 대리 범죄도 저질러 주니 쾌감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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