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무슨 소용이냐고요? 후회 안 하려면 필독, '공연 주의문'

심영구 기자 2024. 2. 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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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글 : 황정원 작가)
출처 : Shakespeare's Globe 공식 유튜브


런던 글로브 극장에서 〈한여름 밤의 꿈〉 공연이 한창이었다. 요정의 왕 부부의 힘겨루기에 휘말린 인간 남녀가 격하게 싸우는 중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소리친다.

"꺼져, 이 난쟁이야."

헉. 놀란 관객들이 일순 숨을 들이마셨다. 긴장감에 터질 듯한 정적만이 이어졌다. 누군가 키 작은 사람을 '난쟁이'라 조롱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면 어떤 이들은 불쾌감을 느끼겠지만 웃어넘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고 비하하는 방식의 코미디는, 혹은 소위 '유머'는 우리 일상에서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연극에는 실제 왜소증―흔히 난쟁이라고 표현되는―을 가진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단지 키가 작은 정도를 넘어서 상대 배우의 허리춤에 간신히 닿는 여자에게 '난쟁이'에 이어 '염주알*', '도토리' 등의 조롱이 줄줄이 쏟아지자 외모 비하의 악의성은 더욱 두드러졌다. 관객의 시선은 재빨리 그녀를 향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녀의 표정에 관객은 한마음으로 남자에게 분노의 야유를 보냈다.

*'염주알'이란 표현은 민음사, 최종철 역의 〈한 여름밤의 꿈〉을 참조했습니다.

난쟁이와 염주알, 도토리는 모두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 여름밤의 꿈〉에 실제로 나오는 표현들이다. 1596년에 쓰인 이 작품에는 현대 관객의 시선에서 문제가 될 법한 주제와 표현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글로브 측은 이 작품에 대해 "이 연극은 폭력, 여성 혐오, 인종차별적 언어와 성적인 장면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라는 주의문을 제공해 왔다. 특히 작은 키로 묘사된 캐릭터에 왜소증 배우를 캐스팅한 이후로는 이에 더해 '장애인 차별적인 언사'라는 경고 또한 포함시켰다.

출처 : Shakespeare's Globe 공식 홈페이지

공연 주의문, 존재의 이유는?

공연 주의문은 제작사, 혹은 공연장이 제공하는 추가 정보다. '쾅'하고 천둥 치는 소리가 들리는 장면이 있다든지, 총이나 대포 소리가 들릴 예정이라는 등 갑작스러운 음향 효과를 미리 경고하는 것처럼 말이다. 번개나 번쩍이는 사이키 조명같이 특수 조명에 대한 주의도 일반적이다. 이런 주의문은 관객이 극을 감상하는데 필요 이상으로 놀라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

일부 관객에게는 꼭 필요한 정보가 되기도 한다. 깜박이는 불빛이 발작을 유발하는 감광성 간질 환자가 한 예이다. 마찬가지로 흡연 장면에 대한 주의문은 천식 등 호흡기 질환이 있는 관객뿐 아니라 어린이와 함께 할 관객에게도 간과할 수 없는 주요 정보가 된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이런 감각 자극뿐 아니라 공연 내용과 관련된 주의문을 미리 제공하는 관습이 있다. 영국 국립 극장은 이 같은 주의문에 각별히 신경 쓰는 극장이다. 공연 안내 페이지마다 한 줄의 짧은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며, 추가 정보를 클릭하면 아예 별도의 페이지로 연결된다. 거기서는 해당 공연의 주제와 소재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이 취할 수 있는 후속 행동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최근 막을 내린 뮤지컬 〈마녀들〉*이 좋은 예이다. 8세 이상 관람가인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사고로 갑자기 부모를 잃은 열 살 소년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함께 살게 된 할머니는 심장이 좋지 않다. 아이가 소화하기 힘들 수도 있는 설정에 이 공연의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주의문이 나온다.

"위협, 협박, 사별, 죽음에 대한 주제를 다룹니다."

이어 사별을 겪은 아이와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는 재단, 죽음으로 인한 상실을 경험한 아이가 읽으면 도움이 될 법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난민을 주제로 한 연극 〈친족〉의 페이지에는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강제 이주 그리고 폭력과 죽음에 대한 묘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라는 안내 문구와 함께 여러 난민 후원 단체들을 소개한다.

*뮤지컬 〈마녀들〉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등을 쓴 작가 로알드 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은 한국에서 〈마녀를 잡아라〉로 번역, 출판되어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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