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요즘 우울하세요? '등산'을 처방해 드립니다
취향이란 참 변덕스럽다. 항상 좋아했던 일에 점점 무심해지기도 하고, 절대 관심 없던 것에 느닷없이 몰두하게 되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말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른다'였다. 내게 "산이냐, 바다냐?"라고 물으면, 당연한 듯 반문했다. "어차피 내려올 걸 왜 굳이 오르는가?" 내 생에 자발적 등산을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등산은 어느덧 가장 자주 하는 운동이자, 취미 활동이 되었다. 그렇다고 대단한 등산인도 아니고, 아직도 대청봉 한번 올라보질 못했다. 소소한 취미일 뿐이며, 여기에 과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산을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겼다. 주말이면 틈틈이 산에 오른다.
갈대 같이 변덕스러운 취향 때문이라고 하기엔, 이 극적인 변화를 설명하기 어렵다. 내가 왜 '굳이' 산에 오르고 있는지 이해해 보고자 글의 들머리에 나서본다.
산에 오르내림이 있듯이, 삶에는 변곡점이 있기 마련이다. 대학교 2학년 방학 때였다. 산악반 활동하던 동기 친구가 심심했는지 두세 명 모아서 북한산에 오르자 했다. 서울에 있는 산이니 다 고만고만한 줄 알았다. 테니스화 하나 신고 올랐다가, 당시 가드레일도 없었던 암벽을 타면서 거의 울 뻔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나누며 우정이 깊어졌다면 좋았겠다. 그 친구와 이래저래 연락이 뜸한 지 오래다. 이후 산은 철저히 내 삶에서 배제되었다.
그 후로 20여 년이 지난 여름이었다. 아내와 함께 설악산에 가서 케이블카를 탔다. 그래도 설악산인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호텔 데스크에 가장 간단한 산행에 대해 물으니, 울산바위를 추천했다. '산도 아니고 바위니까 간단하겠군' 싶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섰다. 중반 즈음 올랐을까?
등산이라면 질색인 짝꿍의 등산화 양쪽 밑창이 떨어졌다. 나는 다시 호텔로 내려가 운동화를 들고 올라왔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흔들바위를 지날 즈음,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돌아가고 싶었지만 또 내려가는 건 더 싫었다. 내던져버리고 싶었던 2kg짜리 카메라를 가슴에 안고, 마지막 구간 철제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울산바위는 보통의 산보다 더 크고 높았다. 성급한 산행을 후회하며 가까스로 정상에 올랐다. 줄지어 서있는 거대한 바위들이 위엄 있는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광각렌즈로 풍경을 담으며 카메라를 가져온 스스로가 대견했다. 바위 건너편을 보니, 햇빛 떨어지는 속초시 위에 커다란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난 깨달았다. 다시 산을 오를 운명임을.
등산은 인생과 같다
1) 가던 길은 다시 돌아서기 어렵다. 지금까지 올라온 게 어딘데 여기서 멈추는가? 나아갈 것인가, 멈출 것인가는 일생의 고민거리이다. 용감하게 올라가는 것도 좋다. 하지만 한계상황이 오면, 하산하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2) 스스로의 힘으로만 나아가야만 한다. 산행은 일상에서의 길과 다르다. 힘들다고 중간에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부를 수도 없다. 그렇다고 자전거, 킥보드, 휠체어 같은 다른 탈것도 무용하다. 오로지 자신의 두 다리로만 움직여야 한다. 길이 좁아지면, 나란히 갈 수도 없다. 홀로 가야만 한다.
등산은 중독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해서 산에 오른다. 미적 경험의 본질은 쾌감이다. 정상에서 보게 되는 풍경은 숭고미의 극단적 형태이다. 일상에서 거의 볼 수 없는 크기와 규모의 형상들을 바라보게 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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