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과반의석인데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한 사연은? [대통령의 연설]

문재용 기자(moon.jaeyong@mk.co.kr) 2024. 2. 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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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0일 취임 후 다섯번째로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국회를 통과한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의 재의를 요구한 것인데요.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때마다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전서구갑에 도전장을 낸 이지혜 민주당 예비후보는 ‘거부권 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죠.

윤 대통령이 임기에 비해 거부권을 사용한 횟수가 많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그 배경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지난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결과 현재 압도적인 여소야대 정국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과거 대통령들의 거부권 행사 사례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6공화국이 출범한 뒤 거부권을 많이 사용했던 대통령은 노태우·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데, 여소야대 상황에 처했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해외사례(2023.03.31)>
여소야대 국면이 아니라도 임기말에 이르러 대통령이 여당으로부터 확실한 지지를 받지 못해 거부권을 사용하게 됐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당의 의석수가 부족하지도 않고, 임기도 절반이 넘게 남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가 눈에 들어오는데요.

바로 2015년 6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에 거부권을 쓴 일입니다. 당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53.6%의 의석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박 전 대통령의 임기도 2013년 2월에 시작해 채 절반(2년반)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죠.

대통령의 연설 이번 회차에서는 당시 여당이 왜 대통령에게 거부받을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 사건이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박근혜 “배신의 정치 심판해달라”
우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무엇인지 궁금하실텐데요. 이 법안은 국회가 정부 시행령의 수정 또는 변경을 요청하면 정부 기관장이 이를 처리토록 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정부 시행령은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가 가진 대표적인 통치수단인데, 이를 입법부가 제어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법안이었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2015년 6월 국무회의를 주재하던 모습<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은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킨 지 20여일만에 국무회의를 열고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는 “국회가 행정입법의 수정 변경을 강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법을 통과시킨 여와 야, 그리고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통일되지 못한채 정부로 이송됐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또 “행정업무를 마비시키고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부권 행사는 불가피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여야협상을 주도했던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향해 던진 “국민들이 배신의 정치인을 심판해줘야 한다”란 발언은 아직까지도 널리 회자되는 중입니다.

유승민 “공무원연금 개혁이 가장 절실했다 믿어...대통령에 송구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유승민 전 의원은 당시까지만해도 친박출신 원내대표지만 청와대에도 할 말은 하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한창 구축해나가는 중이었는데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를 공개적으로 내친 이후부터 정치여정의 내리막길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언뜻 유 전 의원이 박 전 대통령에게 대놓고 반기를 들었던 것으로 오해하실 수 있는데요. 이후 행보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의 의중을 잘못 해석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부권이 행사된 다음날 공개적으로 ‘반성문’을 발표할 정도였기 때문이죠.

요지는 박 전 대통령이 추진한 공무원 연금개혁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회법 개정안을 양보했다는 것입니다.

유 전 의원은 당시 “원내대표로서 가장 노력을 기울인 점은 훗날 박근혜정부의 개혁과제로 길이 남을 공무원연금 개혁이었고, 어떻게든 이 정부의 개혁 성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진심이었다”라며 “대통령도 100% 만족스럽지는 못하겠지만, 공무원연금 개혁 국회통과를 가장 절실히 원했던 것으로 믿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성평등 인식은?’ ‘이명박 대통령이 기억하는 현대건설은?’…<대통령의 연설>은 연설문과 각종 기록을 통해 역대 대통령의 머릿속을 엿보는 연재기획입니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에 남아 있는 약 9000개 연설문을 분석합니다. 기자페이지와 연재물을 구독하시면 매주 정치현안에 대한 흥미있는 기사를 접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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