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압류되면 구직 기회도 잃어” 제도적 ‘늪’에 빠진 신용불량자[미래를 저당잡힌 청년들⑦]

2024. 2. 4. 08: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용불량자들, 잦은 ‘통장 압류’에 취업처 제한
최저생계비 보장 규정에도 무분별한 통장 압류 계속
“변호사 비용까지 내야” 압류 변경 신청도 난관
“근로활동 위해 최저생계비·압류방지통장 보장해야”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총채무액 1500만원을 보유한 30대 남성 이모 씨는 3년 전 실직을 계기로 연체를 이어가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곧바로 통장 압류까지 진행되자, 그는 현금을 받는 소일거리를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2금융권에서 신규 통장 개설에 성공한 이씨는 한 철공소에 취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몇 달 후 다시금 급여 통장이 압류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홀로 사는 어머니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상황에서 남은 통장마저 완전히 압류됐다고 해, 퇴사를 고민하는 막막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신용불량자(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통장 압류가 잔액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진행되며, 정상 급여를 받을 수 없어 근로를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생계를 위해 보장돼야 할 최저생계비 기준마저 온전히 지켜지지 않으며, 추심 제도가 신용불량자들의 상환 활동을 막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정치권 안팎에서도 신용불량자들의 상환 능력 마련을 위한 ‘압류방지통장’ 도입을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수급자 아니면 돈 뺏고 봐” 최저생계비 185만원 보장도 미흡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압류방지통장은 기초생활보장법 대상자 등 특정 계층의 생계보장을 위해 급여가 입금되는 통장으로, 금융기관이 압류할 수 없는 게 특징이다. 여기에는 현행법상 ▷행복지킴이 통장(기초생활수급) ▷실업금여지킴이 통장 ▷국민연금 안심통장 ▷공무원연금 평생 안심 통장 ▷국방부 압류방지 통장(장병급여) 등이 포함된다.

문제는 이처럼 특정 계층이나 수급권자가 아닌 신용불량자의 경우, 사실상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통장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현재 금융사 연체가 3개월 이상 진행될 시, 은행 등 금융사에서는 법적조치로 통장·재산에 대한 가압류를 신청할 수 있다. 이는 채무이행을 위한 제도로, 경우에 따라 신용카드 이용 등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일괄 정지된다.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

다만 이 경우에도 민사집행법상 채무자의 통장잔액 185만원 이하의 금액 등 최저생계비, 급여채권의 2분의1에 해당하는 금액 등은 ‘압류금지채권’에 해당해 압류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금융사는 채무자의 통장 잔액을 확인할 수 없어, 모든 예금채권에 대한 출금을 정지하고 압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경우 임차료나 각종 공과금 등 생계유지를 위한 납부도 불가능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가용 가능한 통장 명의가 사라질 경우, 근로의 기회가 축소된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20년이 넘게 신용불량자 생활을 이어온 60대 A씨는 약 10년 전, 한 폐기물·재활용품 처리 업체에 취직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급여 수준도 나쁘지 않았지만, 근로를 오래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는 “건강보험 미납분이 있는 상황, 직장에서 4대 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하자 단돈 10만원이 든 통장도 압류됐다”며 “통장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니, 현금을 주는 일용직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압류 해제 절차도 복잡…“일반인도 압류방지통장 있어야”
[게티이미지뱅크]

만약 채무자가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해 185만원 이하의 예금채권을 보호받으려면, 법원에 ‘압류금지 채권 범위변경 신청’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필요한 서류 절차를 밟기 위해 법무사,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추가적 비용이 소요된다. 또 하나의 통장에 여러 압류 사건이 묶여있을 경우, 각각 신청 절차를 밟아야 하는 데다 신청이 기각될 가능성도 있다.

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는 “장기채무로 상담받는 현재 50~60대 또한 잦은 통장 압류와 추심 등으로 정상 근로를 포기하고, 결국 정부에서 부양하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경우가 많다”면서 “청년들이 근로활동과 세급 납부를 통해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최저생계비를 보장하고 채권자에 대한 압류해지 요청을 용이하게 하는 등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29일 특정계층에만 한정한 압류금지채권, 압류예금 등의 범위를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방향의 은행법 개정안을 내놨다. 국회에서 압류통장 방지 관련 법안이 발의된 건 처음이다. 현재는 소관위원회에 회부돼 심사를 앞두고 있다.

오기형 의원은 “실무상 압류 단계에서 특정 예금채권의 최저생계비 여부를 확정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압류가 이루어진 후 최저생계비 여부에 대한 다툼이 이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전 은행을 통틀어 압류하지 못하는 1개의 생계비계좌를 개설해, 채무자의 최저생계비를 보호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woo@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