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따위가 감히 벤츠를”…한국인이 더 심하게 욕했는데 통쾌한 반전[세상만車]
모방을 뛰어넘은 ‘창조적 어울림’
프로불편러와 빨리빨리의 시너지
8년 전 입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 2015년 제네시스 브랜드를 독립해 프리미엄·럭셔리 자동차 시장에 진출한다고 밝혔을 때 국내·외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습니다.
유머 시리즈까지 나왔던 대우자동차 티코가 연상됐을까요. 관련 기사에 “한국차가 럭셔리라면 파리는 독수리”라는 댓글이 적혀 있었던 게 생각납니다. 풍자와 해학의 민족답죠.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에 맞서기 위해 도요타자동차가 렉서스를 출범시킨 것에 빗대 ‘베끼기 전략’이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짝퉁 렉서스’라는 비아냥거림도 들렸습니다.
해외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인이 제네시스에 대해 낮은 평가를 한 이유는 있습니다. 성장제일주의와 수출제일주의에 묻혀 한국 소비자들을 섭섭하게 했거나 소홀히 여겼던 ‘업보’가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말뿐인 찬사가 아닙니다. 성적이 증명합니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사용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 자료입니다.
제네시스는 지난해 국내에서 12만8913대를 판매했습니다. 기아(50만15대), 현대차(47만1187대)에 이어 3위입니다. 4위인 KG모빌리티(6만3966대)보다 2배 가까이 많이 팔았습니다.
제네시스는 경쟁상대인 벤츠(7만6674대), BMW(7만7396대)도 압도했습니다.
차종별 실적도 좋습니다. 한국에서 대기업 임원차로 인지도를 높인 제네시스 G80(4만4571대)는 국산 승용차 판매 톱10에 포함됐습니다.
GV70(3만4656대)은 16위, GV80(2만8664대)은 19위로 20위권에 들어갔습니다. 회장·사장차로 평가받는 G90(1만3284대)도 1만대 넘게 팔렸습니다. G70(4528대)과 GV60(3210대)도 40위권에 포함됐죠.
G80(4만4571대)은 8년 연속 수입차 1위 자리를 차지한 벤츠 E클래스(2만3640대), 2위인 BMW 5시리즈(2만492대)를 합친 대수보다 더 많이 판매됐습니다.
G90(1만3284대)도 수입차 럭셔리세단 1위인 벤츠 S클래스(9414대)와 2위인 BMW 7시리즈(3487대)를 압도했습니다.
지난 2021년 G90(5234대)은 벤츠 S클래스(1만543대)에 참패했습니다.
벤츠가 중국과 미국 다음으로 벤츠 S클래스가 많이 판매되는 한국에 공들이면서 신형 S클래스를 투입하고 마케팅·서비스 총력전을 펼친 결과입니다.
모욕감을 느낀 G90은 8개월 뒤 이름 빼고 다 바꾼 ‘완전변경’ 4세대 모델로 명예 회복에 나섰고, 다시 1위 자리를 되찾았습니다.
제네시스는 해외에서도 벤츠, BMW, 아우디 등에 버금가는 럭셔리·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제네시스는 지난해 8월 글로벌 누적 판매 100만대를 돌파했습니다. 브랜드 독립 7년10개월, 누적판매대수 50만대를 넘어선 지 2년3개월 만에 일군 성과입니다.
지난해 8월까지 국내에서 69만177대, 해외에서 31만8627대 등 글로벌 시장에서 총 100만8804대를 판매했습니다.
제네시스는 브랜드 출범 첫해인 2015년에 384대에 그쳤지만 2020년에는 13만2450대를 판매했습니다. 처음으로 글로벌 연간 판매 10만대를 넘어서면서 존재감을 나타냈습니다.
2021년 20만대, 2022년 21만대 넘게 판매된 데 이어 지난해에는 22만대 팔렸습니다.
제네시스는 미국 시장조사업체 제이디파워(JD파워)의 자동차 평가 항목인 품질, 상품성, 신기술, 내구성에서 벤츠, BMW, 포르쉐, 렉서스 등 독일·일본 프리미엄 브랜드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에는 제이디파워 ‘4관왕’이 됐습니다. 제이디파워는 평가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시장조사 업체죠.
미국 자동차시장을 넘어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도 권위를 인정받습니다. 자동차 평가 분야 ‘오스카’로 여겨집니다.
TXI는 제이디파워의 주요 조사로 꼽히는 신차품질조사(IQS)와 상품성 만족도 조사(APEAL)를 보완해주는 신차 평가 지표입니다.
제네시스(643점)는 캐딜락(584점), 벤츠(539점), BMW(516점), 렉서스(491점), 포르쉐(439점) 등을 제쳤습니다. 프리미엄 브랜드 1위는 물론 전체 브랜드 순위도 1위도 기록했죠.
여기에 국내에서는 성공이라는 이미지가 ‘집토끼’를 잡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국내 소비자들은 제네시스를 ‘성공하면 타는 차’로 여깁니다. 성공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고 평가받는 한국인들의 구매욕을 자극합니다.
벤츠·BMW·포르쉐도 ‘성공’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제네시스에는 비교하지 못할 수준입니다. 제네시스에는 사회적·경제적 성공, 다른 차종에는 경제적 성공 이미지가 있을 뿐입니다.
한국인들은 단순하게 베끼는 모방 수준을 넘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탁월한 재능을 지녔습니다. 고려청자, 금속활자, 신기전, 거북선 등 찬란한 문화유산이 이를 증명합니다.
음식 문화에서도 모방을 뛰어넘는 창조적 어울림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김밥, 비빔밥, 부대찌개죠.
김밥과 비빔밥은 넣는 재료에 따라 맛도 모양도 달라집니다. 베이컨, 마요네즈, 버터, 돈까스 등 우리 것이 아닌 재료와도 잘 어울립니다. 요즘에는 불고기를 넘어 ‘음식 한류’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김치찌개도 미군 부대에서 나온 염도가 높은 햄과 소시지와 만나 부대찌개라는 같지만 다른 음식으로 거듭났습니다.
요즘에도 이질적인 재료로 우리 입맛을 넘어 세계인의 입맛에도 맞는 ‘퓨전요리’를 계속 창조해내는 한국인들의 ‘손맛’은 탁월합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자화자찬 수준을 넘어 ‘힙’한 오감만족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손재능이 좋은 한국인들은 미국과 일본차에 영향을 받았던 한국차에 독일차, 영국차, 프랑스차, 이탈리아차의 특성을 잘 버무렸습니다.
제네시스에서도 처음에는 벤츠, 아우디, 벤틀리, 포르쉐, 렉서스, 링컨 등의 흔적이 많이 엿보였습니다.
이제는 모방 수준을 넘어 이제는 제네시스만의 새로운 디자인 정체성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프로불편러 때문에 발생하는 불편이 자주 등장합니다. 지하철에서도 그리 덥지 않은데도 “에어컨 켜라”, 춥지 않은데도 “꺼라”라는 민원 때문에 방송이 나오기도 합니다.
최근에도 “아파트에서 김치찌개 냄새가 나니 집에서 해먹지 마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싶어해서죠.
한국인들의 행복만족도가 낮은 이유도 불편함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불편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습니다. 프로불편러들이 많은 한국이 세계인들이 감탄하는 ‘편한 나라’가 된 게 이를 증명합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로불편러들의 활약(?) 덕분에 한국차는 다른 나라 차들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편의성의 제왕’이 됐을 겁니다.
제네시스 차종을 타본 뒤 수입 경쟁차종을 시승하면 성능에서는 만족해도 편의성 측면에서는 불편한 게 많이 보입니다.
해당 브랜드가 길게는 100년 넘게 쌓아온 노하우, 신뢰도. 인지도를 이제 10년도 채 되지 않은 브랜드가 따라잡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빨리빨리의 부작용 ‘대충대충’이 일으킨 역효과도 있습니다.
다만, 제네시스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성장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제네시스 급성장은 위기 때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한국인들의 장점 덕분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밟아도 뿌리뻗는 잔디풀, 때릴수록 강해지는 강철 성향을 지녔죠.
한대 맞으면 쓰러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때려보라며 대듭니다. 욕을 먹거나 무시당하면 위축이 되기보다는 “그래, 두고보자”라며 칼을 갈고 닦습니다.
마찬가지로 프로불편러와 욕설·무시가 오히려 제네시스 성장에 훌륭한 자양분이 됐다고 확신합니다.
앞으로도 한국인의 특성인 프로불편함, 빨리빨리, 어울림이 잔디·강철 성향과 ‘긍정적’으로 버무려지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시너지 효과가 창출될 겁니다.
버금가는 수준을 뛰어넘어 대등한 브랜드로, 결국엔 으뜸가는 브랜드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 프로불편러와 비난꾼들을 불편하게 여기거나 비난하는 대신 오히려 글로벌 명차 브랜드로 거듭나고, 자동차 한류도 만들 발판으로 여겼으면 합니다.
아울러 글로벌 시장에서 급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된 ‘집토끼’도 더욱 잘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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