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사도였다가 책임 회피…비겁한 ‘검사 정치인’
한동훈 “대법원 의뢰로 사건 진행”
윤 대통령, 박근혜 만나 “면목 없다”
선거 앞두고 국정농단 수사 부정
검사들 출마 봇물…‘나쁜 롤모델’만
지난 1월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재판장 이종민)가 ‘사법 농단’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 고영한 전 대법관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선고 뒤 참여연대는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판결의 최정점으로 사법 역사에 수치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은 “1심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원론적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검찰이 항소하면 2심 재판이 시작될 것입니다. 항소심 결과에 대해 검찰이나 피고인들이 상고하면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유무죄를 가려야 할 것입니다.
사법농단 수사의 주체
이번 판결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도 크게 갈렸습니다. 다음날 조간신문 관련 사설 제목은 이렇게 달렸습니다.
“‘사법농단’ 양승태 1심 무죄…결국 검찰의 무리한 수사였나”(동아일보)
“문재인 김명수가 쓴 ‘사법 농단’ 소설, 이 엄청난 책임 어떻게 질 건가”(조선일보)
“5년 동안 나라 흔든 무리한 양승태 수사”(중앙일보)
“‘사법농단’ 양승태 47개 혐의 모두 무죄 내린 ‘제 식구 재판’”(한겨레)
“‘사법농단’ 정점 양승태 1심 무죄…국민 법감정 수긍할까”(한국일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검찰의 수사가 무리였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겨레와 한국일보는 “1심 선고가 법원의 제 식구 봐주기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조선일보 사설이었습니다. 사법 농단 혐의를 ‘소설’로 단정하고, 그 책임을 검찰 수사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묻고 있습니다. 검찰 수사는 사설 본문에 “이후 김명수 사법부는 법원 내부 자료를 검찰에 통째로 넘겼고, 검찰은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3차장 지휘 아래 검사 50여명을 동원해 5개월 동안 이 잡듯 털었다”고 나올 뿐입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3차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시키는 대로 한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식의 희한한 논리입니다.
국정 농단 수사를 지휘해 기소했던 당사자로서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번 판결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윤석열 대통령과 용산 대통령실은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한동훈 위원장은 1월29일 출근길에 기자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사건은 사실상 대법원의 수사 의뢰로 진행된 사건이었다. 아직 중간 진행 상황에 대해서 수사에 관여했다가 직을 떠난 사람이 말씀드리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여러 가지 생각할 점이 있었던 사안이고, 나중에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첫째, 수사의 성격을 ‘사실상 대법원이 수사를 의뢰한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둘째, 지금 검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판결에 대해 평가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답을 회피한 것입니다. 5년 전 사법 농단 수사 발표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입니다.
“국민이 판단할 것” 당당함은 어디로
한동훈 위원장은 2019년 2월11일 서울중앙지검 청사에서 수사팀장 자격으로 기자들 앞에 섰습니다. 특수 1부장부터 4부장까지 뒤에 세우고 회견을 했습니다. 사진을 보면 눈매가 무척 날카롭습니다.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2017년 3월 판사 블랙리스트 관련 언론 보도로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후 세 차례에 걸쳐 대법원의 자체 조사 결과 확인된 410개의 문제 문건 공개 등 과정이 있었고 그사이 검찰에 고발이 제기되는 등 진상 조사를 원하는 국민적 요구가 커졌다. 검찰은 2018년 6월 대법원의 수사 협조 발표 이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사건을 배당해 수사에 착수했다. 2018년 10월27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2019년 1월24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하여 수사했다. 수사 결과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재판 개입, 법관 인사 불이익 조치, 법관 비리 은폐 등 사건에 관련해 직권남용, 공무상 비밀누설,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직무유기, 특정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구속기소 하고….”
그리고 기자들과 이런 내용의 문답을 주고받았습니다.
―검찰도 중요한 사건을 수사하면 수뇌부가 수사의 방향을 잡아주는데, 법원은 개별 법관이 독립되어 있으니까 일절 다 허용이 안 되는가?
“사법 시스템은 절차와 내용이 직결되기 때문에 방향이나 내용에 대해서 개입하는 것은 위법이다.”
―그동안 판사들과 마찰도 있었는데 소감을 말해달라.
“법과 상식에 맞는 최종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대형 수사였는데 이번 수사의 의의를 말한다면?
“의의는 국민 여러분이 판단하실 것이다.”
이처럼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던 한동훈 검사가 5년 뒤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자 변명을 하고 답변을 회피한 것입니다. 수사와 기소 당시의 당당함과 자신감이 한동훈 검사 본래의 모습이라면 이번 법원의 무죄 판결을 비판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깔끔하게 사과해야 옳다고 봅니다. 신분이 바뀌었다고, 서 있는 자리가 달라졌다고 비겁한 모습을 보여서야 되겠습니까?
한겨레는 1월31일치 “‘사법농단’ 수사가 ‘청부수사’였단 말인가”라는 제목의 사설로 한동훈 위원장을 비판했습니다.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하고,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법조계의 금언이 있습니다. 수사 결과를 담은 공소장은 검사의 얼굴입니다. 검사는 판사와 마찬가지로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법조 엘리트입니다. 그런 검사가 자신의 공소장을 깡그리 부정한 판결에 대해 답변을 회피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태도일까요?
검사가 정치에 중독되고 있다
저는 한 위원장과 비슷한 모습을 윤석열 대통령에게서도 본 일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2016년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검의 수사팀장이었습니다. 2017년 3월6일 박영수 특검이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윤석열 수사팀장도 뒷줄 맨 왼쪽에 서 있었습니다.
그랬던 윤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던 2022년 4월12일 대구 달성군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집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참 면목이 없다. 늘 죄송했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뭐가 면목이 없고, 왜 죄송하다고 한 것일까요? 자신의 수사와 기소가 잘못됐다는 것일까요? 어이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짐작건대 6월1일 지방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호감을 가진 대구·경북 표심을 얻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근 중앙일보가 보도한 회고록에서 “그분이 대선 과정에서 내세운 국민 통합의 메시지에는 공감하고 있었고, 보수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는 생각에서 지방선거나 총선과 달리 대선 때는 투표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찍었음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입니다. 윤 대통령이나 박 전 대통령이나 속이 너무 뻔히 들여다보입니다.
어쨌든 검사로서 국정 농단 사건과 사법 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은 참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수사하고 기소하는 공직자입니다. 개인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사나 기소가 잘못되면 공적으로 책임지면 됩니다. 범죄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따위의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유리할 때는 ‘정의의 사도’처럼 행세하고 불리할 때는 ‘정권의 하수인’처럼 행세하는 일부 특수부 검사들의 이중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저는 우리나라 검사들이 전부 다 윤 대통령이나 한 위원장처럼 비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부 수립 이후 수많은 검사가 독재 정권의 부당한 압력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맞섰고,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는 옷을 벗는 최후의 수단으로 저항했습니다. 특수부 검사로 명성을 날리다가 정치인이 된 홍준표 대구시장도 검찰 후배들의 당당하지 못한 처신이 못마땅했던 것 같습니다. 사법 농단 1심 선고가 나온 1월26일 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정의만 보고 가는 검찰이 아니라 정권만 보고 가는 정치 검찰이 남긴 폐해는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그러고도 부족했던지 1월29일 오전 이런 글을 또 올렸습니다.
“검사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수사를 하는 사람으로 그 결과에 대해 직과 인생을 걸고 책임지는 수사를 해야 한다. 나는 검사 11년 동안 중요 사건을 수사할 때는 무죄 나면 검사직 사퇴를 늘 염두에 두고 수사를 하였고, 그렇게 하니까 재직 기간 내내 중요 사건 무죄는 단 한 건도 받지 않았다.”
저는 홍준표 시장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검사들의 정계 진출에 봇물이 터졌습니다. 벌써 40여명의 전현직 검사들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공천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검사 출신들이 당선에 유리한 지역구에 속속 깃발을 꽂고 있습니다. ‘윤석열 사단’이 행정부 장악에 이어 국회까지 장악하려고 달려드는 모양새입니다.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가 정치에 중독되면 사법 정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나라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검사 출신으로 정권을 장악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답변해야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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