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희순 "농촌 스릴러 '선산'…스산한 매력 넘치죠"

조은애 기자 2024. 2. 4.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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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희순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넷플릭스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선산'이 서늘한 미스터리로 연초 글로벌 시청자들을 공략 중이다. 1월19일 공개된 '선산'은 존재조차 잊고 지내던 작은아버지의 죽음 후 남겨진 선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불길한 일들이 연속되고 이와 관련된 비밀이 드러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앞서 '부산행', '지옥' 등을 선보였던 연상호 감독이 기획과 각본에 참여했고, '부산행'의 조감독이었던 민홍남 감독이 처음 메가폰을 잡았다. 선산, 상속, 가족의 뿌리, 무속신앙 등 한국적인 소재와 미스터리 스릴러를 엮은 독특한 이야기가 호평을 모은 가운데, 주연을 맡은 배우 박희순을 23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선산'은 농촌 스릴러"라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감독님과 첫 미팅 때 저를 선택하신 이유를 물었어요. 민 감독님께서 제 양면적인 얼굴이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가족의 아픔을 표현하는 찌든 얼굴, 형사로서 수사할 때 예리함이 공존하나봐요. 저는 '선산'의 장르를 농촌 스릴러라고 얘기해요. 오컬트는 아니지만 스산한 느낌이 매력이에요. 시골 배경인데 또 현대화된 형사들도 있고, 기존에 해보지 않은 복합적인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죠."

박희순이 연기한 성준은 남다른 수사 감각을 가진 형사다. 마을에 연달아 불길한 사건들이 벌어지자 그것이 선산 상속과 관련돼 있다고 직감한다. 본인만의 방식으로 수사에 전념하지만, 일련의 사고 이후 사이가 틀어진 상민(박병은)은 사사건건 탐탁지 않아 한다. 성준은 상민의 냉대 속에서도 끈질기게 사건을 쫓는다.

"대본받았을 때부터 성준은 시청자들을 인도하는 길라잡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야기를 한 단계씩 따라올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해설자 같은 기능을 하는 인물이죠. 특히 성준의 개인 서사를 잘 풀어내는 것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썼어요. 수사 과정은 한 단계씩 밟아서 풀어가는 것이라면 상민과 성준의 관계는 점점 꼬여요. 하나는 풀리고, 하나는 막히고 그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했어요. 예전엔 열혈 형사, 동적인 액션이 필요한 형사 역할을 많이 했는데 성준은 정석적인 형사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연기했어요."

박희순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얼굴로 어두운 가족사를 품고 있는 성준의 깊은 그늘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과 선산 상속에 얽힌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형사로서의 집요함부터 아들과의 엉킨 관계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버지로서의 모습까지 세밀하게 쌓아 올려 긴장감을 주도했다.

"내면에 아픔을 품고 있지만 일에선 프로고 베테랑이죠. 성준이 자기감정에 묶여있지 않길 바랐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서글서글하게 다가가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편하게 농담을 건네는, 말하자면 본인의 감정에 침잠하지 않는 인물로 표현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어요. 물론 이전에도 형사 역할을 많이 해봤지만 반복이라는 부담은 없었어요. 그거 다 피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그래도 장르물로 먹고 살았는데 계속 조금이라도 다르게 표현하고 부딪혀야죠."

김현주와는 지난해 종영한 SBS '트롤리' 이후 두 번째 호흡이었다. 당시 부부로 만났던 두 사람은 이번 작품에서는 형사와 상속자로 강렬한 드라마를 완성했다. 박희순은 "(김현주는)프로의식이 남다른 배우"라며 각별한 마음을 드러냈다.

"'트롤리' 끝나기 전에 이 작품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김)현주씨가 먼저 촬영을 시작했고, 제가 촬영장에 한번 놀러갔는데 '트롤리' 때 봤던 김현주가 아니었어요. 또 다른 사람이 돼있더라고요. 한편으론 서운하기도 하고, 정신이 바짝 들기도 했어요. 열흘 뒤에 처음 같이 촬영하면서 이미 서하가 된 현주 씨의 연기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굉장히 집중했던 기억이 나요. 근데 첫 촬영 잘 끝내고 현주 씨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놀라서 '내가 뭐 잘못했냐'고 물었더니 다른 건 완전히 잊고 '선산'에 빠져 있었는데 날 보니까 다시 감정이 올라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독하게 연기하더니 마음속엔 파도가 있었나 봐요. '역시 프로구나' 싶었죠."

주로 장르물에서 활약하며 날카로운 카리스마로 사랑받은 박희순은 최근 몇 년 새 배우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지난 2021년 '마이 네임'에 이어 '모범가족', '선산' 등 넷플릭스 작품들의 흥행을 이끌며 '넷플릭스의 아이돌',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애칭을 얻은 덕이다. 50대에 얻은 귀여운 수식어는 박희순에게도 활력이 됐다.

"'지천명 아이돌'이 제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죠.(웃음) 10대 팬들이 많이 늘었는데 '마이 네임'의 영향일 거예요. 아내 박예진 씨가 항상 피부에 신경 쓰라면서 팩도 주고 피부과에 데려가기도 해요. 저한테 '멜로 눈빛'이 있다는데 그러면서 정작 멜로물은 안 들어와요. 여전히 안 해본 게 많아서 멜로, 코미디, 휴먼드라마 다 욕심나죠. 그래서 저예산 영화도 하고, 나름대로 다른 느낌을 주려고 무던히 노력했는데 결국 인기를 얻고 회자되는 건 장르물이더라고요. 그럼에도 한 가지 이미지에 갇히지 않으려고 시도는 계속 하고 있어요. 연기자란 게 늘 도전해야 하니까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가치 있고 매력적인 직업인 것 같아요.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다 보니 겁나긴 해도 계속 나 자신과 싸워서 이겨야죠. 스스로의 한계를 끊임없이 뚫는 게 배우니까요."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eu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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