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빠졌던 의사, 중독을 해부했다…그가 내린 결론은 [Books]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2. 4.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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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그날, 뉴욕 경찰은 이 책의 저자에게 테이저건을 쏘았다.

아이비리그 의대를 졸업한 신출내기 의사였던 그가 '고작' 알코올 중독 때문에 환자 신세로 끌려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알코올, 담배, 약물 중독을 그냥 그러려니 놔두자는 이야기일까.

정상인과 중독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다는 망상을 지우고, 멀쩡한 정상인 가운데 그 누구라도 중독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라고 책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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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에릭 피셔의 ‘중독의 역사’
향정신성의약품인 신경안정제 디아제팜(하늘색)과 알프라졸람(흰색)의 모습. 신간 ‘중독의 역사’는 마약, 알코올, 담배 등 인간 중독의 역사와 그 대처법을 이야기한다. [사진 출처 = Wikimedia Commons·DEAN 812]
오래 전 그날, 뉴욕 경찰은 이 책의 저자에게 테이저건을 쏘았다. 쓰러진 두 손에 수갑이 채워졌고, 좁은 복도로 끌려나가던 순간엔 눈앞이 캄캄했다. 이제 다 끝난 것이었다.

도착한 곳은 밸뷰(Bellevue)란 이름의 한 정신과 병원이었다. 갈데까지 간 환자만 모이는 이곳에서, 옆자리 노인은 그에게 말했다. “난 마약을 훔쳤고, 전처가 쏜 총에 맞았으며, 욕조에 누워 ‘심장이 멈출 때까지’ 펜타닐을 입속에 때려 넣다가 이곳에 왔지.”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고 그는 느꼈다. 아이비리그 의대를 졸업한 신출내기 의사였던 그가 ‘고작’ 알코올 중독 때문에 환자 신세로 끌려온 것이었다. 밸뷰 병원은 그가 레지던트 근무를 희망해 오래 전 견학까지 왔던 바로 그 병원이기도 했다. 치료를 받고 퇴원한 그는 ‘중독 의학 전문가’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시간이 흘러, 그는 자신의 모교인 컬럼비아대의 교수가 돼 인생을 다시 살아가는 중이다.

신간 ‘중독의 역사’는 알코올 중독 환자였던 저자가 자신의 내밀한 경험을 고백하면서 인류가 걸어온 중독의 역사를 되짚는 책이다. 집필기간만 10년. 왜 인간은 중독되는지, 중독의 본질은 뭔지, 중독 대처법은 있는지를 파고든다. 세 풍경을 보자.

중독의 역사
#1. 1492년 11월 1일, 갑판 위 콜럼버스는 짜증이 난 상태였다. 뱃머리가 쿠바에 닿았고, 동료들이 닷새 후에 돌아왔는데, 황금도 향신료도 없기 때문이었다. 콜럼버스는 그곳이 중국 본토라고 믿었는데 제국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그때 콜럼버스는 원주민 타이노족이 식물을 말아 불을 붙여 연기를 흡입하는 모습을 보았다. 유럽인은 그때까지 흡연 경험이 없었다. 저 악마의 식물 이름은 ‘담배’로 훗날 세계인의 폐를 더럽히게 된다.

#2. 에드거 앨런 포의 1840년대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는 음주 때문에 망가지는 친절한 신사를 그린 유명 작품이다. 폭주(暴酒)한 주인공은 개, 토끼, 원숭이, 무려 아내까지 ‘두들겨 팬’ 뒤 포도주를 마시며 죄책감을 달랜다. 하지만 그는 불쌍한 고양이 플루토의 두 다리를 끈으로 묶어 나무에 매단다. 기이하고도 역겨운 이 소설은, 그러나 당시엔 흔한 ‘술꾼 이야기’였다. 당시 미국에서 발표된 소설의 12%가 술과 금주에 관한 책일 정도도로 술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3. 미국 전역의 도시 빈민들 사이에 위험한 마약이 유행병처럼 나돈건 1980년대 말이었다. 사람들은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정신을 잃고 쓰려질 때까지 ‘크랙 코카인’을 즐겼다. 뉴욕,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워싱턴 D.C. 로스앤젤레스 등 크랙 코카인이 없는 도시가 없었다. 중독된 여성들은 성매매까지 뛰어들어 약값을 마련했는데, 이 때문에 ‘크랙 매춘부’로 불렸다.

저자는 이쯤에서 중독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일단 중독은 뇌 질환, 정신의 질병이다. 하지만 중독은 언제나 인류와 함께 했으며, 수많은 접근법에도 불구하고 모두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고 책은 쓴다. 수백 년에 걸쳐 놀랍도록 발전했지만 이런 접근은 중독을 완전히 소멸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중독을 처벌과 법적 강제로 막으려 했던 ‘금지론적 접근법’은 인종주의와 계급적 편견 사이에서 ‘부도덕한 자’라는 낙인만 형성했다. 낙인 이후의 중독 치료는 소수만이 성공했고 다수는 통제 불가능으로 치달았다. 중독에 낙인이 찍히면 치료는 방해받게 된다.

중독을 치료할 질환으로 바라본 ‘치료적 접근법’도 좋은 치료약과 나쁜 약이라는 이분법 사이에서 중독 문제를 심화시켰다. 나쁜 약에 대한 음지의 관심만 증폭시켰을 뿐, 통제는 실패했다. 한국의 프로포폴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중독을 뿌리 뽑는 건 불가능하며, 중독을 완전히 없애는 꿈은 허상임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중독은 인간의 본성이다. 처벌하거나 강제적으로 통제해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알코올, 담배, 약물 중독을 그냥 그러려니 놔두자는 이야기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쓴다.

중독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면 ‘누구도 중독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 위에서 중독의 해결법이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중독은 치료될 수 있다’, ‘약물은 통제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중독 치료를 무화시킨다. 정상인과 중독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다는 망상을 지우고, 멀쩡한 정상인 가운데 그 누구라도 중독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라고 책은 말한다.

고대 그리스에 중독은 아크라시아(akrasia)란 단어와 유관하다. ‘의지박약’으로도 번역되는 이 단어는, 순간의 판단에 반하는 행동의 경험을 뜻한다. 풀어 쓰자면 ‘어떤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스스로 믿으면서도 그 일을 하고 마는 순간’을 뜻한다.

또 플라톤의 비유에 따르면 지성적인 인간은 ‘긍정적인 도덕적 욕구’와 ‘비합리적인 충동’이라는 두 마리 말을 모는 전차병이다. 누구든 아크라시아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점, 자칫하면 말(馬)머리를 비이성적인 쾌락의 방향으로 향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할 때 오히려 인간을 망친 중독의 역사는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라고 책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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