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공약 비교]② ‘철도 지하화’ 공약 내건 與野… “미래형 도시 재창조” vs “주거복합 플랫폼 구축”
野, 수도권도시철도·GTX 지하화·랜드마크 조성… 이재명 “추진해야 할 때”
與野, 철도 지하화 공약 재원 조달 관련 구체적 언급 없어… “민간 유치”만 거론
전문가들 “철도 지하화 희망 고문 끝날지도… 관건은 실현 가능한 재원 마련”
4·10 총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야 모두 총선 공약에 승부수를 거는 모양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이번엔 ‘철도 지하화’ 공약으로 맞붙었다. 국민의힘은 철도 지하화로 생기는 상부 공간과 주변 부지를 통합 개발하는 이른바 ‘미래형 도시공간’ 재창조에 방점을 찍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철도 지하화로 지역 성장을 견인할 뿐만 아니라 그 특성까지 살린 ‘주거복합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다만 양당 모두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은 언급하지 않아 총선을 겨냥한 ‘표(票)퓰리즘’ 공약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철도 지하화’ 공약을 발표했다. 공약의 대상이 되는 철도 구간과 부지 개발 관련 청사진 등 종합적인 계획에서 차이가 있지만, 두 공약 모두 핵심은 주요 도심을 지나는 철도를 지하화하고 그 부지를 개발하겠다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번 철도 지하화 정책을 통해 노후화된 구도심도 정비하고 지역 활성화 정책까지 연계한 ‘미래형 도시공간’을 재창조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31일 경기 수원을 방문해 ‘구도심 함께 성장’ 공약 발표와 함께 “이번 총선에서 격차 해소를 국민들께 드리고 싶은 선물로 준비하고 있다. 의도치 않았지만 수원 동서 간 고착화된 격차를, 철도 지하화로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라면서 “이는 비단 수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슷한 문제를 겪는 다른 도시들에도 똑같이 말씀드리겠다. 저희가 잘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철도 지하화 사업 재원에 대해 “민자 유치로 이뤄져 재원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 위원장이 공약을 발표한 곳인 경기 수원 장안구는 복복선(複複線·복선을 이중으로 놓은 4개 선로)인 경부선 철도로 인해 도시가 동서로 갈린 지역이다. 국민의힘이 이번 철도 지하화 정책 대상으로 ‘경기 수원역~성균관대역’ 구간을 꼽은 이유다. 이 구간을 시작으로 국민의힘은 전국 주요 도시 중 도심을 나누는 철도를 지하로 옮기고 지하화 과정에서 확보한 상부 공간과 주변 부지를 통합 개발할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지상 철도에 막혀 단절되고 노후한 구(舊)도심은 용도규제 특례를 적용해 ‘15분 생활권’으로 정비·개발하기로 했다. 도심의 기능 회복을 위해 건축 규제 프리 존(Free zone)’ 도입 등 특례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또 국민의힘은 주거·문화·생활·상업·업무시설을 규제 없이 효율적으로 재설계하는 이른바 ‘융·복합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대표적으로 청년·신혼부부가 많이 사는 거주지에는 ‘돌봄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장년층을 위한 ‘병품아(병원을 품은 아파트)’와 ‘실버스테이’ 조성할 계획이다.
이외에 ▲전국 주요 권역 광역급행 열차 도입으로 ‘1시간 생활권’ 조성 ▲도시별 문화·스포츠 공간 지원 ▲지역 특색을 살린 공간 조성 ▲워케이션(Worcation·원하는 곳에서 업무와 효과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근무제도) 맞춤형 공간 마련 ▲해당 공간 조성을 위한 세제 지원 등 민간투자 활성화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와 도시철도 도심 구간을 지하화해 그 부지에 주거복합 시설을 짓고 지역 내 랜드마크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지침을 개선하고 철도 부지를 국가가 출자해 건폐율·용적률 특례를 주는 방안을 마련했다. 민주당은 총선 후 제22대 국회에서 도시철도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을 방문해 ‘철도 도심구간 지하화 정책’을 선보이면서 “과거에는 철도 근처가 발달했는데 요즘엔 쇠락하는 경향이 있고, 지상 시설들이 주민들에게 소음·분진 피해를 주면서 도시를 양쪽으로 절단하는 문제가 있다. 철도·역사 지하화를 추진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발표한 공약 대상은 ▲수도권(경인선·경의선·경의중앙선·경춘선·경부선) ▲부산(경부선) ▲대전(경부선·호남선) ▲대구(경부선) ▲호남(광주선·전라선) 등의 도심 구간이다.
여기에 수도권 도시철도는 ▲2호선(신도림~신림, 한양대~잠심, 영등포구청~합정, 신답~성수 구간) ▲3호선(옥수~압구정 구간) ▲4호선(금정~대야미, 상록수~초지, 동작~이촌, 쌍문~당고개 구간) ▲7호선(건대입구~청담 구간) ▲8호선(복정~산성) 등이 대상이다.
또 GTX-A 노선(운정~동탄)·GTX-B 노선(인천대입구~마석)·GTX-C 노선(덕정~수원) 지하화도 추진하고, GTX-D·E·F 노선은 제5차 국가철도망계획(2025년 이후)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이개호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총연장은 약 260.2㎞ 정도 추정되고, 이 중 80%에 지하화가 필요하다. 사업비는 일단 ㎞당 약 4000억원 정도로 추산해 전체 80조원 안팎”이라며 “사업비는 대부분 민자 유치를 통해 하고 현물이 국유 철도이기 때문에 국가의 현물 투자를 통해 재원이 투입된다. 별도의 예산 투자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철도 지하화’ 공약만 수십년째 이어진 가운데 정치권 안팎으로는 이번에야말로 ‘희망 고문’을 끝내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상철도 지하화 사업은 역대 정권이 선거철 때마다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번번히 관련 부처 간 이해가 상충하면서 무산돼 왔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부터 공약으로 내세웠고, 오세훈 서울시장도 새로운 서울도심 정책을 내놓으면서 착공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국회에서는 관련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경부선 서울~당정 구간 ▲경인선 인천~구도 구간 등의 지상 철도가 지하화되고 그 지상 부지가 복합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여야가 모두 총선 공약으로 ‘철도 지하화’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철도 지하화 실현도 함께 급물살을 탈 거라고 전망한다. 관건은 재원 조달 방안에 있다. 그간 역대 선거 때마다 철도 지하화 사업은 공약으로 늘 언급돼 왔지만 총선이 끝난 직후 이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 결국 양당이 모두 공약을 내걸었지만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 없이는 한낱 ‘뜬구름 잡는’ 추상적 수준의 공수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미 김영삼·김대중 정부 때부터 숱하게 나왔던 공약이다. 그만큼 국민들이 염원하는 국책 사업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라며 “양당 모두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만큼 이번에는 정말 될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평론가는 “철도 지하화 사업은 해당 지역 거주민들에게는 현실 그 자체다. 이때 재원은 세금이 대표적인데, 이건 잘못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총선 전 ‘여론 역풍’을 맞을 수 있으니 ‘하겠다’는 의지만 표명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총선 이후로 미룬 것”이라면서 “국책 사업임에도 민간 투자 유치나 수익자 부담 얘기가 나오는 건 그런 이유”라고 덧붙였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구가 과밀한 서울·수도권, 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철도를 지하화할 필요가 있다는 국민 의견은 늘 제기돼 왔다. 이번에 나온 공약들도 그런 염원을 반영한 것”이라면서 “관련 특별법도 국회에서 통과한 만큼, 법적 근거도 마련됐으니 안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어 석 교수는 “현실적으로 보면 사업성 있는 구간에 민간 자본을 투자·유치하자는 건 맞는 말”이라면서도 “다만 사업성 혹은 수익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지하화 작업이 필요한 구간에 대한 재원 마련 방안은 고민해야 한다. 이게 양당이 내놓은 공약 중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유권자가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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