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변명·후회·낙담 없는 '연기 외길 인생'[TF인터뷰]
'미나리'로 오스카 수상 후 '도그데이즈'로 설 연휴 극장가 출격
윤여정은 2월 7일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 '도그데이즈'(감독 김덕민)에서 한 성격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민서로 분해 오랜만에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그는 개봉을 앞둔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도그데이즈'는 성공한 건축가부터 MZ 라이더와 싱글 남녀 그리고 초보 엄마·아빠까지 혼자여도 함께여도 외로운 이들이 특별한 단짝을 만나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갓생' 스토리를 그린 작품이다.
윤여정이 '미나리'(2021) 이후 작품으로 '도그데이즈'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고 분명했다. '그것만이 내 세상'(2018)을 함께한 김덕민 감독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당시 현장에서 이렇다 할 취급을 받지 못하며 전우애를 쌓았다고 회상한 그는 "19년 동안 조감독 생활을 했는데 입봉 못하는 게 안타까웠어요. 감독님이 입봉하면 제가 꼭 하겠다고 생각했죠. 결심과 전우애가 뭉쳤어요"라고 덧붙였다.
김덕민 감독은 윤여정의 무조건적인 선택에 보답했다. 19년 동안 조감독 생활을 이어왔던 김덕민 감독은 철저한 준비를 거치며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모두 곤란할 만한 상황을 절대 만들지 않으며 군더더기 없는 현장을 구축했다고. 이에 윤여정은 "정말 효율적인 현장이었어요. '내가 사람을 잘 봤구나'라고 뿌듯했죠"라고 웃어 보였다.
윤여정은 '미나리'로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대한민국 배우 최초의 기록을 써 내려갔다. 하지만 그는 이날 뿌듯함과 성취감보다 씁쓸함을 먼저 언급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상을 받은 이후로 평소에 들어오지 않았던 주인공 섭외가 들어오면서 달라진 점을 느꼈다는 윤여정은 "전 여기서 쭉 살고 있었는데 상을 탔다는 이유로 이렇게나 달라지더라고요. 인간의 간사함을 느끼고 씁쓸했어요"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날도 해당 장면이 언급됐고, 이를 들은 윤여정은 "그건 작가가 잘 쓴 거죠. 작가가 저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이겠죠. 사실 저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놔라 배놔라 하지 않아요. 오지랖이죠. 충고나 조언의 말을 너무 싫어해요"라고 의외의 답변을 꺼내 모두를 놀라게 했다.
1966년 TBC 공채 3기 탤런트 출신인 윤여정은 '화녀'(1971) '충녀'(1972) 등 거장 김기영 감독의 작품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화려하게 스크린 데뷔를 치렀고, 데뷔작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돈을 벌기 위해 연기를 시작했던 그는 적령기가 되면 시집을 가야 하는 시대에 맞게 1974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 후 미국에서 시간을 보냈고, 1987년 이혼했다. 약 10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며 배우의 길에 공백이 생겼던 윤여정은 이혼과 함께 복귀하면서 '진짜 배우'가 됐다고 회상했다.
"옛날에는 적령기가 되면 시집을 갔어야 됐어요. 안 가면 손가락질받고 그랬죠. 그래서 시집을 갔고 자연스럽게 은퇴하는 거였죠. 어쩌다가 제가 다시 와서 배우를 할 때 일을 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삼성에서 잘나가던 여자가 공백기를 거쳤다고 다시 써줄 일이 없잖아요. 사실 첫 작품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타서 연기를 잘하는 줄 알았거든요. 38살쯤 배우를 다시 시작하면서 얻는 건 허명이라는 걸 잘 알게 됐죠."
"김수현 작가는 저에게 '넌 재능이 있으니까 내 도움 없이도 자립할 수 있다. 내 드라마를 하는 순간 네 것은 없고 내 덕이라는 말만 들을 거니까 도움을 주지 않겠다'고 했죠. 그런데 이혼하고 왔다고 아무도 저를 못 쓰게 하더라고요. 그때 김수현 작가가 '정말 촌스러운 놈들'이라며 약속을 깨고 저를 처음으로 써줬어요. 제일 고맙죠."
1946년생인 윤여정은 올해로 77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품의 텀이 짧으면 짧을수록 체력적인 부침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매 순간 배우의 길을 걷길 잘했다고 느낀다고.
'네가 번 돈만 네 돈'이라고 말씀하신 자신의 어머니처럼 살았고 살아가고 살 것인 윤여정은 이날 마종기 시인의 '이슬의 명예'라는 시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변명도 후회도 낙담도 아양도 없이. 한길로 살아온 길이 외진 길이었을 뿐'. 이 시인도 나 같은 삶을 살았구나 싶었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래오래 활동하고 싶어요"라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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