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옆 아파트 이름에 ‘더 파크’ 붙이나…철도 지하화 공약 실현 가능성은? [부동산 이기자]

이희수 기자(lee.heesoo@mk.co.kr) 2024. 2. 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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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이기자-20]
정부, 교통분야 3대 혁신전략 발표
‘철도·도로 지하화’ 추진 내용 포함
최근 국회서 지하화 특별법도 통과
철도 1순위는 경인선·경부선 거론
경부고속道 지하화도 빠르게 추진
최대 걸림돌은 단연 막대한 건설비
서울 구로구 구로역 일대의 전경. [매경DB]
‘지상철도 지하화’는 큰 선거를 앞두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 공약입니다. 지상철도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공약이기 때문입니다. 시끄러운 철도 소리, 흩날리는 먼지가 아무래도 싫을 수밖에 없겠죠. 철로가 동네를 가로지르면 생활권이 단절돼 버리기도 합니다. 거리상으로 가까운 곳인데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겁니다.

자연히 주변 부동산도 저평가 됩니다. 어렵게 마련한 내 집이 낮게 평가 받으면 속상하겠지요. 그래서 선거 때면 ‘지상철도를 땅 밑으로 묻어버리겠습니다!’라는 공약이 빠짐없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도 같은 공약이 곳곳에서 발표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하는 기대감이 엿보입니다. 1월 9일 이른바 철도 지하화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거든요. 1월 25일에는 정부가 교통 분야 3대 혁신전략을 발표하며 지상철도와 고속도로를 지하화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번 주제를 지하화로 잡은 이유입니다. 자세한 내용을 하나하나 알아볼까요.

서울 영등포 일대를 지나는 경부선 철로. [사진출처=영등포구]
지하화 성공 사례...美뉴욕 파크 애비뉴
지상철도 지하화 공약은 그간 헛된 약속이란 비판을 받았습니다. 철로를 땅 밑에 넣거나 인공데크로 상부를 덮는 공사를 하는데 사업비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기 때문이었죠. 그나마 최근 국회 문턱을 넘은 특별법에는 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에 대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철도를 지하에 넣으면 지상은 빈 땅이 되는데, 이 땅을 이용하자는 게 핵심입니다. 빈 땅을 개발해 나오는 수익으로 지하화 건설비용을 충당하겠다는 겁니다. 해외에는 이 같은 방식으로 세계적인 명소가 된 곳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 뉴욕의 파크 애비뉴와 허드슨야드 일대입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461m 빌딩 원밴더빌트. 바로 옆 그랜드센트럴의 공중권을 사들여 지었다. [사진출처=SL그린]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의 저서 ‘도시를 만드는 법’에 따르면 뉴욕에선 1900년대 초반부터 철도 지하화가 논의됐습니다. 맨해튼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철로와 철도 부지를 지하화하고 역사를 신축하고자 하는 계획이 진행됐죠. 당시 총 공사비는 4075만 달러로 책정됐습니다. 이는 현재 가치로 원화 1조 2000억 원에 달합니다. 공사 2년 후인 1906년에는 비용이 7180만 달러로 늘어났습니다.

엄청난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랜드센트럴역 주식회사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냅니다. 지하화 된 기존 철로 상부의 공중권(Air Rights)을 민간 사업자에게 빌려주고 건물을 개발하도록 한 겁니다. 토지에 대한 임대수익으로 공사비를 충당하고자 하는 계획이었습니다. 덕분에 맨해튼 42번가에서 54번가 사이 있던 철로와 철도 부지는 무사히 지하화 됐죠. 상부는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뉴욕의 업무 중심지인 파크 애비뉴로 탈바꿈 했습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복합공간 ‘허드슨야드’의 전경. 철도 차량기지 용지 약 11만3000㎡를 재개발해 조성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뉴욕을 대표하는 도심 재개발 사업인 허드슨야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하에 기존 철도 기능을 그대로 두고 그 위를 인공대지로 덮었어요. 공중권 등을 이용해 23조원에 달하는 비용을 조달했습니다. 이로 인해 지상에는 독특한 건축물과 공원, 광장이 조성됐습니다.
경인선·경부선 지하화 유력한 이유
앞으로 국내에도 이런 곳이 생길까요. 철도 지하화는 크게 △철도 존치+하부 개발 △철도 존치+상부 개발 △철도 데크화+상부 개발 △철도 지하화+상부 개발 등 4가지 방법으로 분류됩니다. 지역 특성에 따라 사업 모델이 달라질 수 있는 겁니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3월 종합계획을 세우는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안에 선도 사업 부지를 선정하는 게 목표입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6대 특별시, 광역시에 있는 지상철도 노선이 대상지가 될 수 있습니다.

지하화 대상으로 거론되는 수도권 철도 노선. [매경DB]
정부가 아예 예시를 들어주기도 했습니다. 서울역~구로역 구간을 ‘서울국제업무축’으로, 구로역에서 석수역은 ‘신산업경제축’, 청량리역에서 도봉역 구간은 ‘동북 생활경제축’으로 개발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대구의 경우 동대구역과 동대구벤처밸리 등을 연계 개발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부산은 가야역~서면역 일대를 새로운 광역 클러스터로 만들 수 있다고 했죠.

이 중 부동산 업계에서 지하화 1순위로 꼽는 노선은 경인선입니다. 이 노선은 서울 구로역과 인천 도원역을 잇는 총 22.8km 길이 노선입니다. 현존하는 국내 철도노선 중에 가장 오래 됐습니다. 오래된 만큼 시가지가 무질서하게 개발된 곳이 많습니다. 도로까지 단절돼 주민들의 지하화 요구가 높습니다. 수도권을 균형개발 하자고 명분을 내세우기도 좋습니다.

사업성 측면에서는 지하철 1호선 경부선이 유력한 지하화 후보입니다. 특히 서울역~용산역 구간이 많이 거론됩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알짜 땅이면 아무래도 비싸게 팔 수 있을 테니까요. 구로역~석수역 구간도 언급이 되는데요. 다만 정부가 서울 집값을 자극하는 걸 우려할 수 있습니다. 다른 수도권이나 지방에서 먼저 사업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거죠.

서울역~용산역 주변 경부선 지상철도 전경. [사진출처=용산구]
비용 마련...역사·차량기지 복합개발로?
문제는 첫째도, 둘째도 돈입니다. 2013년 서울시 용역 결과에 따르면 지하철 1·2호선 구간과 국철 경인선·경부선·경의선 등 86.4㎞ 구간을 지하화 하는 데 38조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2022년 ‘지상철도 지하화 추진전략 연구 보고서’에선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재원이 약 45조원 소요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은 비용이 더 높게 들겠지요.

하지만 철로가 직선이란 게 애로사항입니다. 좁고 길게 나 있는 철로를 지하화 한다고 해서 상부를 얼마나 활용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철로가 지나는 땅만으로는 개발이 어렵다는 취지입니다. 공원을 조성하는 거 말고는 딱히 활용 방안이 없을 수 있습니다.

철도 역사를 복합 개발해 나오는 수익으로 비용을 일부 충당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특히 여러 노선이 지나거나 유동 인구가 많은 용산역, 서울역, 구로역, 신도림역, 영등포역, 신촌역, 가좌역 등이 거점역이 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문차량기지 위치도. [사진출처=서울시]
서울시는 차량기지를 복합 개발해 얻는 이익을 투입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차량기지 부지는 그나마 넓은 땅이니까요. 이미 서울 시내 여러 차량기지에 대한 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성북구와 동대문구에 걸쳐 있는 이문차량기지(약 20만㎡)입니다. 이곳을 개발하며 나오는 수익의 일부를 경원선 지하화에 쓸 수 있는 거죠.
경부고속道 지하화...상부는 공원 조성
차라리 고속도로 지하화가 더 빠를 수 있단 얘기도 나옵니다. 나들목(IC)이 곳곳에 있기 때문에 더 넓은 땅을 확보하기 쉽거든요. 정부는 이번에 고속도로 지하화도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기존 지상 구간을 지하화 하고 지상에는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이나 상업·업무시설을 배치하겠다는 구상입니다.

가장 주목 받는 구간은 경부고속도로입니다. 현재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는 서울시와 국토부가 각각 구간을 따로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남IC~양재IC 구간은 서울시·서초구 등이, 양재IC~용인기흥IC는 국토부가 개별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구상 구간 [매경DB]
한남IC~양재IC 구간은 지하에 중심도(5~40m)로 지하도로를 건설하는 내용입니다. 기존 상부 도로는 최소 차로만 남겨 주변 생활도로와 평면 연결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 구간에 길게 뻗은 선형공원을 조성하는 방안이 언급됩니다. 이 사업은 최근 한국지방행정연구원 타당성 조사를 마쳤습니다. 올해 상반기에 서울시 투자심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르면 2026년 착공한다는 목표입니다.

양재IC~용인기흥IC 구간은 기존 노선 아래 40~50m 깊이의 대심도로 왕복 4~6차로를 건설하는 내용입니다. 지금보다 도로 용량을 대폭 늘리겠다는 취지입니다. 이 사업에 대해선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국토부는 타당성 평가와 설계를 거쳐 2027년에는 착공하는 게 목표라는 입장입니다.

“10년 이상 걸린다”...여전히 난제 많아
지상철도·고속도로 지하화가 추진되는 건 주변 부동산엔 분명 호재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조사하고 설계하고 준비하는 데만 10년 이상 걸리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집값에 호재지만 단기적으로 오르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 구로구 구로역 일대의 전경. [매경DB]
사업이 제대로 되려면 법적 기반을 더 탄탄하게 다질 필요도 있습니다. 이번에 마련된 특별법은 기본적인 내용이 위주입니다.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철도나 도로가 지하화 되는 토지 상부에 민간이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사용·수익권을 완전하게 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법적 기반이 잘 안 돼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지하화 (비용 마련)의 핵심은 민간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사업·수익권을 주는 것”이라며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데 50년으로 택도 없을 수 있다. 이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이 밖에도 지하 공간에서 화재나 사고가 날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등에 대한 대책도 꼼꼼히 세워야 합니다.

‘부동산 이기자’는 도시와 부동산 이야기를 최대한 쉽게 풀어주는 연재 기사입니다. 어려운 용어 때문에 생긴 진입 장벽, 한번 ‘이겨보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초보 투자자도 이해할 수 있게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루겠습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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