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기다림의 미학’인 이유 [박영순의 커피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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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가 커피 품종마다 맛과 향을 다르게 만든다"는 견해는 커피 애호가를 깊은 사유로 이끈다.
이탈리아 우디네대 연구팀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최근호에 게재한 논문은 "염색체 이상과 교환이 아라비카 커피의 유전적 다양성을 만드는 원인임을 염색체 수준의 유전자 서열 분석을 통해 알아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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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가 커피 품종마다 맛과 향을 다르게 만든다”는 견해는 커피 애호가를 깊은 사유로 이끈다.
도대체 어느 부분이기에 다양성이 증가한 것일까? 유전자 패턴을 분석한 결과, 다양성의 원인은 ‘염색체 이상’과 ‘이종 간 교배’였다. 염색체 이상은 일부가 손실 또는 추가되거나 뒤집어지는 등의 방식으로 발생한다. 달라진 외부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생존전략의 하나로 돌연변이가 유발된다.
이종 간 교배는 1927년 동티모르에서 발견된 ‘티모르 하이브리드’를 일컫는다. 아라비카종과 카네포라종이 기적적으로 자연 교배해 탄생했다. 염색체의 수가 다른 아라비카(44쌍)와 카네포라(22쌍)의 교배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티모르 하이브리드는 병충해에 강하면서도 향미가 좋아 순식간에 세계로 퍼져 많은 신품종의 모체가 됐다.
월드커피리서치(WCR)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야생 커피의 종(Species)이 125개이고, 상업 재배를 위해 개발된 품종(Variety)은 60개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전 세계 밭에서 재배되는 커피가 60종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옥수수가 6종이지만 품종이 2만개에 달하고, 사과가 62종이지만 품종이 7500개에 달한다는 것과 비교하면 커피의 다양성은 미약하다. 다양성이 작은 개체는 급격한 변화에 종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대목이다.
연구팀은 업그레이드한 아라비카 염색체 지도를 토대로 맛이 좋거나 병충에 강한 형질을 담고 있는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증폭시켜 빠른 시간 유익한 품종을 만들어낼 길이 열렸다고 자평했다.
예를 들어 맛이 좋은 커피를 가늠하는 지표인 리모넨(Limonene)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맛이 떨어지지만 병에 강한 로부스타에 이입하거나 녹병에 강한 유전자를 파나마 게이샤의 유전체에 들어가게 하는 방식으로 고품질 커피의 생산을 늘릴 수 있다.
요긴한 품종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배를 통해 원하는 유전자가 잘 발현되는지 재배를 통해 가려내야 하고 원하는 형질을 지닌 돌연변이를 자연에서 찾거나 재배지에서 선택하는 노력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 성급한 마음에 실험실에서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신품종을 만들었다가는 ‘괴물’이 나올 수 있다.
커피의 미덕은 기다림이다. 한 잔의 좋은 커피를 위해 자연적으로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백년의 세월을, 교배를 거쳐 키워내고 선별하는 수십년의 시간쯤은 기다려야 한다. 인간에게 커피 맛이란, 커피가 생명체로서 고군분투하며 변화무쌍한 환경을 살아나가는 과정에서 부여되는 ‘부산물’인 까닭이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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