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세포의 배신? "암세포 간의 통신 도와"

한건필 2024. 2. 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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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신경망을 발판 삼아 소통하면서 면역체계까지 무력화시켜
암세포들은 스스로 먹고 자라기 위해 혈관을 끌어당기는 것부터 시작해 발병부터 확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인간의 신경세포에 의존하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암세포는 우리 몸의 신경세포 또는 신경세포의 전구세포인 신경아세포를 인질 내지 공범으로 삼아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삼을 뿐 아니라 우리 몸의 면역체계까지 교란시킨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2001년~2023년 발표된 여러 논문을 종합해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31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이다.

2017년 뇌암의 일종인 교종의 암세포들 사이에 푸른색 전기신호가 오가는지 컴퓨터 모니터로 관찰하던 암 신경과학자 훔사 벤카테시는 흠칫 놀랐다. 암세포 사이에 약간의 소통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는 교종 암세포 간에 엄청난 전기신호가 발생하는 것을 목격했다. 당시 스탠퍼드대 의대의 박사 후 연구원이로 지금은 하버드대 의대 교수가 된 벤카테시는 "신경세포도 아니고 암세포가 그토록 활발하게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암세포 간에 심지어 뇌에 있는 암세포에서도 그 정도의 전기적 의사소통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암세포들이 생존과 성장을 위해 엄청난 의사소통을 한다는 연구결과가 2019년 《네이처》에 발표되면서 종양학과 신경과학이 결합한 '암신경과학'이라는 새로운 분과학의 붐을 몰고 왔다. 암세포들은 스스로 먹고 자라기 위해 혈관을 끌어당기는 것부터 시작해 발병부터 확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인간의 신경세포에 의존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어떤 신경세포가 보내는 신호가 암과 관련돼 있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지만 여기에 암과 면역체계의 상호작용까지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훨씬 더 복잡해진다. 암과 신경계 사이의 관계를 더 깊이 파고들면서 그 연결을 표적으로 삼는 치료법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치료법의 일부는 기존 약물을 통해서 가능해지고 있다.

신경세포는 희생자인가 공범인가

과학자들은 거의 200년 전에 암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의 접촉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19세기 중반에 프랑스 해부학자이자 병리학자인 장 크뤼베이에는 유방암이 얼굴의 움직임과 감각을 담당하는 뇌신경에 침범한 경우를 기술했다. 암세포가 신경과 신경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퍼지는 신경주위 침윤에 대한 첫 번째 보고였다. 이 현상은 공격적인 종양의 징후이며 나쁜 건강 결과를 예고한다.

과학자들은 신경이 암과 그와 관련된 고통을 운반하는 수동적인 고속도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신경계를 "암에 의해 파괴되거나 암에 의해 손상되는 구조인 희생자"로 생각했다고 벤카테시의 지도교수였던 스탠퍼드대 의대의 미셸 몽제 교수(신경종양학)는 말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미국 텍사스대 휴스턴 보건과학센터(UT헬스 휴스턴)의 구스타보 아얄라 교수(비뇨기과 병리학)는 조금 더 면밀하게 그 상호작용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간의 전립선 암세포로 얼룩진 접시에 생쥐의 신경을 넣었다. 24시간 안에 생쥐의 신경들은 신경돌기라고 불리는 작은 가지들을 키우기 시작했고, 이것들은 병든 세포들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러다 접촉이 이뤄지면 암은 신경을 따라 이동해 신경세포체에 도달했다. 이는 2001년 국제학술지 《전립선( Prostate)》에 발표됐다.

신경은 그저 방관자가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암과 연계성을 추구했다. 아얄라 교수는 이 분야를 파고들었지만 학계로부터 '신경남(the nerve guy)'이라 불리며 괴짜 취급만 받았다. 2008년 그는 분위기 반전을 가져올 논문을 《임상 암 연구(Clinical Cancer Rerearch)》발표했다. 전립선암 종양 샘플에서 건강한 전립선보다 축삭이라는 신경섬유가 더 많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2013년 프랑스 국립보건의료연구소(INSERM)의 클레어 마그농 교수(암생물학) 연구진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은 그에 더해 획기적 전환을 가져왔다. 그들은 쥐의 전립선 종양 내부와 주변에 신경 섬유가 싹트고 있음을 보여줬다. 신경계에 대한 연결을 끊자 전립선암의 확산이 멈추는 것도 확인됐다.

신경세포가 암에게 안전한 항구까지 제공

이후 몇 년 간 전립선뿐 아니라 위, 췌장, 피부에 발생한 암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연구가 쏟아졌다. 절단된 신경 중 일부는 암과 관련된 통증을 수반한다는 것도 밝혀졌다. 과학자들은 췌장암 환자의 경우 이러한 경로를 차단하면 통증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다는 것도 이미 말고 있었다. 미국 피츠버그대의 브라이언 데이비스 교수(신경과학) 교수는 "별들이 정렬되기 시작했다"면서 "그동안 무시되어 왔던 종양 미세환경의 구성요소로서 신경계의 역할이 확실해졌다"고 설명했다.

암세포가 신경세포로 변하거나 적어도 신경세포와 같은 특징을 획득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그농 교수 연구진은 2019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암세포에 의해 유용도는 새로운 세포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신경세포의 전구세포에 해당하는 신경아세포가 혈액을 통해 생쥐의 전립선 암세포로 이동한 뒤 그곳에 정착해 신경세포로 변하는 것이 발견됐다.

어쨌든 암은 이러한 세포가 포함된 뇌 영역, 즉 뇌실하대(subventricular zone)라고 불리는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생쥐에서 이 세포는 뇌졸중 같은 특정 뇌 질환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생각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부 증거는 같은 영역이 인간 성인에게 신경세포를 생산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2020년에는 암이 신경세포의 정체성을 바꾸도록 강요할 수 있다는 것이 발견됐다. 생쥐의 구강암에 대한 연구에서 감각 뉴런이라고 불리는 감각을 뇌에 전달하는 신경 그룹이 구강에서 일반적으로 드물게 나타나는 교감신경의 특징인 '투쟁 또는 도피' 반응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논문의 주저자인 텍사스대 MD 앤더슨 암센터의 모란 애미트 교수(암신경과학)는 "교감신경은 특정 암에 도움이 되기에 이러한 변화는 암세포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암세포에 미치는 영향과 신경의 종류 사이의 관계는 복잡하다. 예를 들어 췌장에서는 종양에 미치는 영향이 반대인 두 종류의 신경 사이에 밀고 당기기가 존재한다. 교감신경은 암 발생을 돕는 악순환에 관여한다. 이들은 병든 세포에 신경 성장인자라는 단백질을 분비하도록 지시하는 신호를 내보내 더 많은 신경섬유를 끌어들인다. 반면 부교감신경은 '휴식과 소화' 반응을 담당하는 화학적 메시지를 보내 질병 진행을 방해한다.

위암에서는 부교감신호가 반대로 작용하여 종양이 자라도록 촉진한다. 전립선암에서는 두 종류의 신경이 종양을 돕는다. 암 발생 초기에는 교감신경이 도움을 주고, 후기에는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돼 전이된다.

미국 콜롬비아대 티모시 왕 교수(소화기내과)는 "모든 암은 그것이 신경계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있어서 조금씩 다르다"라고 밝혔다. 치료 대상이 암의 종류와 암이 신경계와 어떻게 연결되거나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구체적이어야 함을 뜻한다.

신경세포는 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암세포와 효과적으로 싸울 수 없도록 면역 체계를 약화시킴으로써 간접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2022년 《네이처》에 발표된 캐나다와 미국 연구진의 논문은 그러한 메커니즘 중 하나를 암시한다. 감각 신경에 의해 방출되는 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티드(CGRP)라고 불리는 화학 물질은 특정한 면역 세포의 활동을 잠재우고, 암을 물리치지 못하게 한다.

신경세포는 자신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면역세포의 활동을 억제할 수 있다. 면역세포의 활동으로 인해 염증이 너무 많이 생기면 신경세포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피츠버그대의 제이미 살로만 교수(암신경학)는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신경세포가 암의 확산 경로와 발판뿐 아니라 안전한 항구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약물은 신경에 침투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면역계와 약물로부터 모두 보호받게 되기에 암세포가 신경에 달라붙게 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암 세포는 생물학 및 화학 요법의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목숨을 부지하다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신경을 넘어 중추신경까지

가장 공격적인 암 중 일부는 뇌에 영향을 미친다. 벤카테시 교수와 다른 이들이 발견한 바와 같이, 암세포는 심지어 그 신호가 그들의 성장을 돕는 신경과 직접적인 시냅스를 형성한다.

뇌의 암세포가 뇌세포처럼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방법은 아직 더 많다. 지난해 11월 《네이처》에 발표된 몽제 교수 연구진의 논문은 교종이 전형적인 뇌 신호 전달 방법을 사용해 신경세포 침투를 강화한다고 보고했다. 교종 암세포가 신경세포의 성장을 돕는 '신경 영양 인자'라는 단백질에 노출되면 신경세포로부터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수용체를 더 많이 생성해 반응하게 된다. 몽제 교수는 "이는 건강한 신경세포가 학습과 기억에 사용하는 메커니즘과 정확히 같다"면서 "암은 실제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미 존재하는 프로세스를 탈취할 뿐"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일부 신경교종 세포들은 신경망처럼 그들 자신의 리듬감 있는 전기 활동의 파동을 발생시킬 수 있다. 독일 암연구센터의 신경종양학자인 프랑크 빈클러 박사는 "그것들은 작은 심장이 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전기 박동은 '종양 마이크로튜브'라고 불리는 얇고 끈이 많은 네트워크를 사용해 암세포 전체에 퍼진다. 이런 활동은 심박 조율기 뉴런이 신경 회로를 형성하는 동안 활동을 조율하는 것처럼 암세포의 증식과 생존을 조율한다. 빈클러 박사는 "또 한번, 암은 신경 발달의 중요한 신경 메커니즘을 탈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뇌암은 심지어 전체 신경 연결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해 5월 《네이처》에 발표된 몽제 교수 연구진의 논문은 교종이 뇌의 전체 기능 회로를 재구성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음성 생성과 관련된 뇌 영역에 암세포가 발생한 사람들에게 음성영역을 활성화시키는 질문을 던지자 음성영역 분 아니라 암세포가 침투한 뇌의 전영역의 활동이 급증하는 것이 관찰됐다. 몽제 교수는 "암세포가 스스로를 먹여 살리기 위해 기능적인 언어 회로를 개조했다"면서 데이터를 처음 본 순간 "소름이 끼쳤다"라고 말했다.

기존 약물을 통한 암치료법 모색 중

이러한 연구결과는 잠재적인 암 치료법을 시사한다. 기존 암치료법이 왜 뇌에 타격을 주는지도 설명해준다. 벤카테시 교수는 항암치료를 위해 화학 요법을 받는 많은 사람이 인지 기능 저하, 즉 '화학적 뇌'와 신체의 다른 곳에서 신경 섬유의 퇴화를 겪게 된다고 말했다. 암세포를 공격하다보면 신경세포도 파괴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한 가지 전략은 신경계의 특정 부위를 표적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치료법들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애미트 교수는 "우리는 신경계의 거의 모든 분야를 표적으로 삼는 약물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약물 대부분은 매우 확립된 안전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베타 차단제는 유방, 췌장, 전립선 등의 암 진행을 유도하는 교감신경의 신호를 교란시킬 수 있다. 1960년대부터 고혈압, 때로는 불안감과 같은 심장 질환을 치료하는 데 이 약들이 사용됐다.

호주 모나시대의 에리카 슬론 교수(암생물학) 연구진은 유방암 환자 대상 베타 차단제 프로프라놀롤을 테스트하는 2상 임상 시험결과를 2020년 발표했다. 단 일주일 동안의 이 약은 암이 전이될 가능성의 징후를 줄였다. 또 다른 2상 임상 시험은 유방암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들에게 화학 요법과 프로프라놀롤을 결합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슬론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이 약이 일반적인 화학 요법 치료법을 향상시킨다는 것도 보고했다.

다른 연구자들은 발작과 편두통을 위해 개발된 약물을 포함하여 신경 통신을 방해하는 약물을 항암치료에 적용하고 있다. 과흥분성 세포를 진정시키는 항압출 약물을 사용하여 신경세포와 암세포 사이에 형성된 시냅스를 교종에서 차단하는 임상시험도 진행 중이다.

피부 또는 두경부암으로 면역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편두통 약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임상시험도 계획되고 있다. 편두통은 암의 일부 면역 세포의 활동을 둔화시킬 수 있는 분자인 CGRP의 수치가 높을 때 유발될 수 있다. 따라서 CGRP 수용체를 차단하는 약물은 면역세포가 다시 암과 싸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벤카테시 교수는 암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상호 보완적인 효과를 가진 약물 칵테일이 필요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는 "사실상 만병통치약은 없다"면서 교활한 암의 전술이 이제 막 파악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갈 길이 멀다고 밝혔다.

한건필 기자 (hanguru@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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