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어디서 배우는 게 좋을까? 백 년 전의 고민 [청계천 옆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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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염색원료 자재판매, 전기치료원 소개, 사진학원 광고, 금산인삼조합 홍보, 도모예 호모 총판 등의 광고입니다.
맨 오른쪽 도모예 호모총판은 고무신을 메인 이미지로 사용했네요.
검색해보니 호모(護謨)는 고무를 뜻하는 프랑스어 'gomme'를 소리나는대로 사용하던 단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이후에 호모라는 표현 대신에 고무라는 원어 발음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설명도 검색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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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을 통해 오늘을 생각해보는 [백년사진]입니다.
이번 주 고른 사진은 보도 사진이 아니고 광고지면입니다. 1924년 2월 2일자 동아일보 2면 하단에 광고가 여러 개 실렸습니다.
▶여러 광고 중 백년사진을 통해 오늘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광고는 사진학원 광고입니다. 100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사진이 어떻게 보급되고 있었는지, 사진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서 배울 수 있었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광고입니다.
삼각대 위에 설치되어 있을 대형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보기 위해 암막 속에 머리를 집어넣은 카메라맨의 모습을 그린 그림과 함께 광고 문구가 길게 쓰여 있습니다.
사진술 속성 교수 |
실지 통신 속성 실지과 통신과 공히 1개월간 속성으로 양성하여 사진사 됨을 보증함. 신입 제 규칙서 송증함. 원산부본정 조선사진전문학원 강습 중에는 사진기 무료대부하는 특전이 있어 실습의 편리를 줌. 본원 졸업생으로 각지에서 단독개업자 오십여명인 데 모두 상당한 수익을 득하며 방금 강습생도 십여 명이 있어 나날이 발전의 영역에 도달하오니 제위는 주저치 말고 지금 속히 신입하여 만시지탄이 없게 하심을 희망함. |
강습 기간 중에는 카메라를 무상으로 빌려드리는 특전이 있으니 실습은 편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본 학원을 졸업해서 사진관을 개업한 사람이 이미 50명이 넘는데 모두 고수익을 얻고 있습니다. 현재 수강생이 10여 명 있으며 계속 발전할 블루오션 시장이니 여러분께서는 주저하지 마시고 빨리 신청하셔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아, 100년 전 서울에는 조선사진전문학원이 있어서 사진관을 개업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있었군요.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사진학원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이라는 카메라와 익숙한 세대에게 단기속성 과정으로 카메라 기술을 가르친다는 건 어울리지 않는 사업 모델이긴 합니다.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 시내에서 사진학원을 가끔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군대 사진병으로 가려고 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속성으로 사진을 가르친다는 학원이 서울 충정로에 있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 광고에서 제가 주목했던 점은 ‘통신과’라고 표현된 지금의 온라인 강의가 100년 전에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강의실에 직접 오지 않고 사진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었는지, 게다가 전화로 수업을 했다면 통신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가능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한반도에 사진이 도입된 시기를 1888년경으로 적시하고 있습니다. 한성순보 1884년 3월 14일자 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관은 김용원 씨가 개설한 촬영국이라는 상호의 사진관이 있었습니다.
[最初로寫眞박힌 京城市街全圖 – 성곽이 아직도 튼튼하게 남아 있고 초가와 양옥집은 별로 없다 “조선에 사진술이 들어오기는 대개 사십년 전, 1888년 경인 듯 하다는데 수입되던 당시에는 일반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한편으로 무식한 사람들은 사진을 박히면 생면을 뺏어 간다하여, ‘렌즈’를 보면 도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에는 허가를 받지 아니하면 풍경사진도 마음대로 박지 못하였으므로 경성 시가의 사진도 부분적으로 박은 것은 있으나 전체 경성 시내의 사진을 볼 수 없었는데 경성부 부사편찬계에서는 최근에 모 일본인의 집으로부터 당시에 비밀리에 박아 두었던 경성 전경 사진을 구해 보관 중인데, 사진은 왜성대(倭城臺) 부근에서 박은 것인 듯하다하며 아직 성곽(城郭)이 튼튼히 남아 있고 지금과 같은 양옥도 보이지 않아 연대는 대략 35년 전으로 경성을 사진으로 박은 것은 이것이 최초인 듯하다 한다(사진은 35년 전의 대경성) |
화학원 안에 여자 사진부 설립 – 이는 여자에게 적당한 직업 |
시내 안국동(安國洞) 근화녀학교(槿花女學校)에서는 시대 요구에 의하여 조선에서는 처음으로 여자사진과(女子寫眞科)를 동교 안에 특설하고 지명의 기술자를 초빙하여 보통 학교 6학년 졸업 정도의 학생 50명을 모집하여 3개월 동안 가르친 뒤에 특히 연구과를 두어 보통과로 하여금 더욱 충실히 가르치기로 되어 한창 준비 중이라는데 오는 5월 10일까지 일반의 입학원서를 받고 이튿날인 11일부터 개학하리라는 바 이는 적어도 현재의 조선 여자들이 부르짓는 남녀평등과 여성의 권리를 어느 정도까지 확장함에는 여성의 경제적 능력이 필요한 이상 그 능력을 얻고자 함에는 무엇보다 실제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차츰 조선에서도 직업 부인들이 생기는 만큼, 직업 찾는 여성들도 많음으로 그에 응하여 무엇보다 여자에게는 합당한 사진술을 택하여 일반에게 주고자 그와 같이 설치하게 된 것이라더라. |
▶아래 기사도 흥미롭습니다. 서울시내 사진작가들의 모임에서 봄을 맞아 초보자들에게 사진 강습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1929년 2월 9일자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寫眞師協會講習 |
시내 경성사진사협회(京城寫眞師協會)에서는 신춘사업으로 견습생을 위하여 사진 강습원(講習院)을 설치하고 오는 이월말일부터 시내 관철동 조선사진관(朝鮮寫眞舘)에서 사진술을 가르친다는바 강사는 신락균(申樂均)리완근(李完根)씨 등 오씨라더라. |
▶ 박주석 교수가 집필한 “한국사진사”(문학동네, 2021)에 정리된 신낙균의 일대기를 잠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899년 무관 종2품이었던 부친 신택희 공의 차남으로 출생. 부친이 을사조약 체결로 관직을 그만두고 경기 안성으로 낙향. 인천공립상업학교에서 상업 실무 교육을 받았으나 적성이 맞지 않아 중도에 포기하고 낙향, 결혼 후 서울로 자리를 옮겨 ‘경성관립공업학교 염직과’를 1918년에 졸업. 이 과정에서 사진화학 즉, 현상과 인화를 정밀하게 습득. 1919년 3.1만세 운동 이후 안성에서 벌어진 3.29만세운동 사건에 가담해 수배 상태가 됨. 도피 도중 아마추어 사진가이던 매부 정욱진으로부터 사진술을 접함. 1922년 일본으로 유학. 동경정칙학교에서 1년간 영어 전공, 이후 동양대학교 문화학과에 재입학하여 2년간 문화사와 이론 공부. 1926년 동경사진전문학교 입학. 1927년 졸업 후 6년 만에 귀국. 그의 나이 28세에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YMCA) 초빙 사진과 교수로 취임. 당시 YMCA는 영어과, 일어과, 목공과, 철공과, 기계과, 염직과, 사진과 등의 실무교육을 하고 있었음. 1926년 경성사진사협회 결성. 1934년 동아일보 입사. 1933년 신설한 동아일보 사진부(당시 사진과)에 1934년 입사. 초대 과장 최복순에 이어 2대 사진과장으로 취임. 1936년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 사건’ 주도로 일제에 체포. 사진기자 서영호에게 일장기 말소를 직접 지시하고, 사진 제판 과정에서 동판에 청산가리를 뿌려 일장기를 완전히 삭제하도록 함. 백운선, 서영호 등 사진부 후배 기자들과 함께 구속. 사진수정의 발안자로 알려진 운동부 기자 이길용, 화가 이상범, 사회부장 현진건, 기자 장용서, 잡지부장 최승만 등도 구속. 1937년 9월 동아일보 퇴사. 안성과 인천 등지에서 취직 및 사업. 1955년 수원북중학교 화학과 공민 교사로 근무 중 교정에서 뇌일혈로 사망 |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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