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까지 살 빼"…단장이 숙소까지 기습 방문, LG 출신 이적생의 혹독한 신고식
[스포티비뉴스=시드니(호주), 김민경 기자] "나도 처음 겪는 일이라 그때는 놀랐다."
두산 베어스 포수 김기연(27)은 호주 시드니 스프링캠프 첫날인 지난 1일. 훈련을 마치고 숙소에 누워 있다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룸메이트인 신인 외야수 전다민(22)이 야식거리를 잔뜩 싸 들고 들어왔는데, 그 앞에 김태룡 두산 단장이 서 있었다. 단장이 선수의 숙소까지 방문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김기연으로선 무슨 일인가 싶을 수밖에 없었다.
사연은 이랬다. 김 단장은 훈련장에서부터 김기연을 주시하고 있었다. 몸이 무거워 보인다고 판단해서였다. 김 단장이 김기연에게 몸무게를 묻자 "108㎏"이라고 답했다. 김 단장은 "조금 더 좋은 플레이를 하려면 지금보다는 날렵해져야 한다. 100㎏까지는 빠져야 한다"며 다이어트를 주문했다.
김 단장은 선수단이 저녁 훈련을 마친 시간에 팔에 야식을 한 아름 들고 숙소로 가는 전다민을 포착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다민의 룸메이트는 김기연이었다. 살을 빼야 한다고 선수에게 말한 당일 야수 막내가 야식을 잔뜩 들고 가고 있으니 김 단장은 김기연이 시켰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김 단장은 전다민에게 "방에 같이 가자"고 했고 그렇게 숙소 기습 방문이 이뤄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기연은 억울했다. 김기연은 2016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로 LG 트윈스에 지명을 받고 프로 생활을 하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2차 드래프트에서 두산에 1라운드 지명을 받아 이적했다. 스프링캠프 첫 훈련이기도 하고, 새로운 팀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여러모로 신경을 쓸 게 많을 수밖에 없었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와 잠시 누워 있다가 봉변 아닌 봉변을 당했다. 전다민 역시 그저 자신이 먹을 야식을 챙겼을 뿐인데 본의 아니게 김 단장을 숙소로 초대하게 됐다. 서로서로 난감한 상황에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김기연은 "처음 겪는 일이라 그때는 조금 놀랐다. 제가 간식을 가져오라고 한 게 아니었다. 나는 조절이 필요해서 요즘 간식을 안 먹고 있었다. 나는 몰랐는데 (전)다민이가 간식을 들고 들어오고 단장님도 같이 들어오시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어 짧은 기간에도 "훈련하면서 몸무게가 2~3㎏ 정도는 빠진 것 같다"며 목표인 100㎏까지 감량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 단장은 이렇듯 김기연에게 큰 관심을 쏟고 있다. 두산에 차기 주전 포수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고, 김기연이 빨리 팀에 적응하고 녹아들면서 편하게 자기 기량을 보여주길 바라서다. 김기연을 2차 드래프트에서 뽑은 건 김 단장의 의사가 많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두산은 보강 포지션을 포수로 정해두고 움직였고, 처음에는 다른 포수를 1라운드에 지명할 계획이었는데 김 단장이 지명 직전 김기연으로 가자고 설득하면서 이번 지명이 이뤄졌다. 포수로서 가장 중요한 2루 송구가 강하고, 큰 타구를 칠 수 있는 자질도 충분히 갖췄다고 판단해서였다. 두산은 LG에 1라운드 양도금 4억원을 지불하면서 김기연이라는 포수 유망주를 품었다.
김기연은 김 단장이 어떤 마음으로 매일 말을 걸고 살을 빼라고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3일 호주 시드니 블랙타운 블랙타운야구장에서 만난 김기연은 "나에게는 단장님께서 그렇게까지 직접 이야기를 해주시니 감사한 일이다. 살을 빼라는 것도 다 내가 잘되라고 해 주시는 말씀이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그러진 않는다. 감사한 만큼 실망시켜드리지 않게 내가 잘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팀 분위기에는 조금씩 적응해 나가고 있다. 김기연은 "완전히 새로운 팀에 왔으니까 신인 때 처음 캠프 갔을 때 느낌도 살짝 난다. 그런 마음가짐과 느낌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형들과 동생들이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지금은 많이 편해진 것 같다"고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리그 최고 포수이자 광주진흥고 선배인 양의지(37)와 한 팀인 것도 김기연에게는 큰 기회다. 양의지는 "김기연을 챙겨 주고 있긴 한데, 옆에서 보이는 게 있으면 한번씩 이야기해 주는 정도다. 누구만 챙겨주고 이럴 수는 없지 않나. 하는 건 선수 본인이 해야 하는 것"이라면서도 "진흥고는 모 아니면 도다. 잘되면 나성범(KIA), 문동주(한화)처럼 아주 잘된다. 기연이도 학교를 좋은 데 나왔으니까 잘할 것"이라고 덧붙이며 후배의 기를 살려줬다.
김기연은 "(양)의지 선배, (장)승현이 형, (안)승한이 형이 다 많이 도와주시고 알려주셔서 정말 잘 적응하고 있다. 나는 (장점인) 타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코치님들과 의지 선배가 옆에서 많이 알려주신다. 내 배팅의 문제점을 알려주시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려주시니 도움이 된다. 고등학교 때부터 롤모델이었는데 이렇게 같이 팀에서 야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영광이다"라며 더 많이 보고 배우고 싶다고 했다.
세리자와 유지 두산 배터리코치는 김기연이 투수들의 공을 받고 난 뒤에는 꼬박꼬박 피드백을 주고 있다. 김기연은 "코치님께서는 송구할 때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들이나 캐칭할 때 생각해야 할 것들과 같은 큰 틀을 잡아 주신다. 세세한 것은 내가 생각하면서 만들어 나가야 된다고 이야기를 해주시더라"며 앞으로 하나씩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남은 캠프 목표는 투수들을 더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불펜 피칭을 하면서 이영하, 김호준, 박신지 등의 공만 받아봤다. 그중 이영하의 공이 단연 가장 좋았다고. 김기연은 "(이)영하는 첫 피칭에 그렇게 강한 공을 던지는 투수가 없었던 것 같은데, 거의 완성이 돼서 왔더라. 준비를 정말 잘해서 온 것 같았다"고 했다.
김기연은 "앞으로 팀 투수들을 전부 다 파악해야 될 것 같고, 타격을 조금 더 끌어올려서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능력치는 다 보여드리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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