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상황인 것 같다"…경고 쏟아진 삼성 반도체[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1) 흔들리는 '30년 1위' 신화
"상당한 위기 상태인 것 같다. 큰일이 난듯 싶다."
메모리반도체 권위자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재료공학부)가 전한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분위기다. 황 교수는 연구실로 학술연수를 오는 직원들, 평소 친분이 있는 임원들을 통해 삼성전자 내부 분위기를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학계 전문가다. 그는 "삼성전자 DS부문의 캐시카우가 D램이었는데, 이 사업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고 있다"며 "압도적인 경쟁력 우위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고 계속 나왔는데...10년 만의 최저 격차
'30년 메모리 1위' 삼성전자의 반도체가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 나오는 얘기나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잘 아는 사람들의 증언 뿐만이 아니다. 점유율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삼성전자의 D램 점유율은 38.9%, SK하이닉스는 34.3%로 격차는 4.6%포인트다. 2013년 2분기(2.7%P) 이후 최저 격차다. 보통 10%포인트 이상 났던 격차가 지난해부터 계속 좁혀지고 있다. 서버용 D램 시장만 따로 놓고보면 SK하이닉스는 이미 1위다.
실적만 놓고봐도 비슷하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346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DS부문은 지난해 4분기 2조1800억원의 적자를 냈다.
반도체의 사업 경쟁력은 △기술력 △양산 능력 △투자 규모 등으로 결정된다. 이 중 기술 개발 속도와 관련해선 2~3년 전부터 끊임없이 경고가 나왔었다. 3위 업체 미국 마이크론이 10나노미터(nm) 3세대 D램(1z nm D램)을 먼저 개발, 공개하는 사례가 있었고 10nm 5세대 D램(1b nm) 개발 경쟁에선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캐파'라고 불리는 양산 능력과 압도적인 투자를 통해 1위 자리를 굳건히했다.
이상 신호가 감지된 건 지난해 초부터다. 챗GPT로 인해 생성형 인공지능(AI) 붐이 불면서부터다. 생성형 AI에 활용되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AI 가속기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HBM은 D램을 쌓아 데이터 처리 용량을 높인 제품이다. 가격은 일반 D램보다 5배 이상 비싼 것으로 알려져있다.
HBM3, DDR5 등 첨단 제품에서 주도권 내줘
당시 한국경제신문은 '챗GPT發 글로벌 반도체 빅뱅'(2023년 2월13~15일자) 기획시리즈 2회에서 HBM 시장을 집중 분석했다. 놀랍게도 엔비디아에 제품을 납품하며 HBM 시장을 리드하던 기업은 SK하이닉스였다. 당시 삼성전자에선 "HBM 시장은 전체 D램 시장의 5% 남짓으로 크지 않다", "시장조사업체 자료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의미를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결론적으로 1년 전 삼성전자는 '잘못된 판단'을 했다. HBM은 D램 시장의 대세가 됐다. 올해 HBM 시장은 전체 D램 시장의 20%까지 커질 것이란 게 시장조사업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근 실적설명회에서 SK하이닉스는 13조원으로 추정되는 올해 설비투자(CAPEX)액을 HBM에 집중한다고 했다. 삼성전자도 HBM 캐파를 2.5배 늘릴 계획이다.
더 큰 문제는 삼성전자의 수세가 HBM 시장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응용 제품 경쟁력의 기본이 되는 범용 D램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최신 규격 D램인 DDR5(더블데이트레이트5)에 대해서도 시장에선 "SK하이닉스 DDR5의 성능이 낫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삼성 제품보다 비싸게 팔리는 SK하이닉스 D램
일반 소비자들의 반응만 봐도 그렇다. SK하이닉스로 빠르게 기울고 있다. 소비자들이 많이 쓰는 PC용 DDR5 D램 경쟁력 관련해선 서울의 PC 부품 도매상가에선 SK하이닉스 제품이 삼성전자 제품보다 약 20% 비싸게 팔린다. 사용 후기엔 '이번에 SK하이닉스를 D램을 써봤는데 잘 돌아가고 좋다', '비싼 게 이유가 있다', '비싸더라도 SK하이닉스가 좋다' 등의 평가가 다수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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